노르웨이의 빈 의자
중국 공산당은 인권유린과 부정부패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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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를 보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온통 노르웨이로 쏠리고 있다.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아니다, 노르웨이의 빈 의자!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마련한 2010년 VIP석에는 끝내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각 어쩌면 유효파(劉曉波 류샤오보)는 주노르웨이 중국 대사가 비실비실 웃으며 공수(空輸)한 노르웨이산 나무(Norwegian wood)로 얼렁뚱땅 만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반성문 쓰기를 강요당했을지 모른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모택동의 가르침에 따라, 유효파는 반성문을 쓰지 않아서 하루 동안 강제단식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11년 복역을 마친 후에도 그가 노르웨이로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 공산당이 유효파에게 불러 주는 반성문은 이러하다.

 “저는 국가 반역죄를 지었습니다. 서구의 음험한 음모와 악의적인 모략과는 달리, 중국은 표현의 자유도 있고 신앙의 자유도 있습니다. 중국은 민주주의도 있습니다. 중국의 안정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서구의 무질서한 야만적 민주주의를 한 단계 뛰어넘은 21세기형 새 모델입니다. 수백 년간 서구 제국주의의 수탈을 받아 발전이 지체된 전 세계의 개도국은 장차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중국의 성숙한 정치체제도 본받을 겁니다. 중국은 어떤 나라보다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제국주의의 업보로 옛 식민지에서 유입된 인종의 테러와 폭동에 시달리는 유럽과 달리, 중국은 한족이 90%를 차지하는 민족국가이자 소수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는 문명국가입니다. 저는 나이만 먹었지 철이 덜 들어서 아버지 국가와 어머니 당의 배려와 은혜를 몰랐습니다. 저는 간첩죄도 지었습니다. 저는 어리석게도 미국과 EU의 사주를 받아 그들의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도구가 되어 G2로 떠오른 조국의 국익을 해치고 국법을 어겼습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매년 2천억 달러가 넘는 무역흑자의 지렛대로 세계의 경제판도를 뒤집고 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약 10%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한다. 여세를 몰아, 중국은 세계의 정치판도도 바꾸려고 한다. 전통과 효율성을 앞세워 공산당 일당 독재를 서구와 차별되는 민주주의로 합리화한다. 유효파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세계의 상식에 뻔뻔히 맞서 그것은 범죄자를 표창하는 것이라며 수상식에 참여하지 말라고 각국에 돈 주머니의 압력을 넣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19개국 외에는, 그러나, 중국의 궤변을 싸늘하게 흘려듣고 유효파의 법정 진술에 일제히 옷깃을 여미었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요구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힘은 결코 없다. 중국은 결국 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며 인권이 최고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중국 고유의 사회주의라고 강변하지만, 중국의 역대 왕조시대에도 이원체제는 없었다. 이원체제는 모택동이 50년대말에 도입한 정책으로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가로막는 제도이다. 개혁개방 이후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농민이 도시에서 일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이들 2억 2600만(2007년 기준) 농민공은 신분증이 3개 필요하다.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진짜 신분증에 임시 신분증인 임시거주증과 회사취업증이 필요하다. 그들은 시민이 아니므로 시민의 권리가 박탈된 채 도시 변두리에서 짐승처럼 살아야 한다.

 

 자녀를 데려올 수도 없다.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데려오면 학비를 비싸게 내야 하고 아파도 의료보험을 못 받아 감기 치료에도 한 달 봉급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자녀는 고향에 두고 부모가 거지같이 살면서 번 돈의 절반을 고향으로 보낸다. 부모자식도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만난다. 남편이나 아내 한 명이 도시로 가면, 고향에 남은 아내나 남편은 밤이 허전하여 십중팔구 바람이 난다.

 

 고향의 토지를 팔고 도시로 나가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전 가족이 도시로 나가는 순간 영구 경작권이 보장된 농지는 바로 환수된다(강탈당한다). 그러면 농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것도 위대한 주석 모택동의 이름으로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농지는 담보권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에도 중국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농촌의 학생은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 북경의 예를 들면, 세계적 명문 청화대나 북경대는 북경시민에게 40%의 할당을 준다. 나머지 60%는 다른 지역에서 뽑는다. 인구 1%에게 40배의 가중치를 주는 셈이다. 그런 식이면 한국은 서울이 인구의 20%나 되니까, 800%의 할당을 받는다. 단 한 명도 서울 이외에서는 뽑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지역할당제는 한국의 지역균형선발과는 정반대되는 입시전형이다.

 

 중국에서 이주를 일시적으로 금지한 것은 만주를 성지(聖地)로 여겼던 만주족의 청나라가 청조 중엽까지 만주로 이주하는 것을 금한 것밖에 없다. 그 후에 주로 산동성의 주민들이 배를 타고 발해만을 거쳐 만주로 대거 이주하여 오늘날처럼 1억 명으로 늘어났다. 중국 고유란 말, 중국 전통이란 말, 말짱 거짓말이다. 서양 못지않게, 아니 봉건 영주가 다스리던 유럽과 달리 중국은 칼의 시대든 붓의 시대든 거대한 중원에서 원하면 마음대로 돌아다녔고 이사했다. 마차를 타고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를 생각해 보라. 그게 2500년 전 일이다. 중국에선 예로부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업도 가내수공업도 매우 자유로웠다.

 

 유럽의 예를 들면, 19세기초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독일이 300여개의 봉건국가로 나눠져서 나라마다 관세를 매겼다. 상업이 발달할 수가 없었다. 이런 한심한 상황에서 벗어나 욱일승천하는 영국과 프랑스에 맞서기 위해 독일의 300여 봉건국가가 맺은 조약이 관세동맹(1834년)이다. 르네상스 이후 도시가 발달할 때도 각 도시는 성곽 중에 관세벽이란 걸 만들어 거기로 드나드는 모든 물품에는 남김없이 관세를 매겼다.

 

 중국에서는 일부 왕조에서 무역에 대한 규제가 심했을 따름이다. 중국의 백성들은 왕조시대에도 거의 오늘날의 서구처럼 자유로웠다. 선거권만 없었을 뿐이지, 1949년 이래 지금까지처럼 공산당과 공안(公安 경찰)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처벌하고 잡아가는 만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중국의 유학자는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더라도 황제에게 얼마든지 상소할 수 있었다. 요새 그랬다간 유효파처럼 바로 잡혀 간다. 외국 신문에 안 나면 바로 사형시켜 버리거나 평생 감옥에 갇혀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오늘날과 달리 왕조시대에는 혹 용의 비늘을 건드려 반역죄로 처벌되면, 중국의 백성이 구름같이 모여 추모했다. 누구도 그 추모 행렬을 막을 수 없었다. 일체 보도도 않고 외국에까지 외환보유고의 힘으로 노르웨이에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중국 공산당의 횡포는 중국의 역대 황제도 부끄러워할 일이다. 오늘날처럼 신문도 방송도 인터넷도 일일이 검사하고 통제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횡포일 뿐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효율성은 또 어떤가. 그것은 국유재산이란 미명 하에 거대한 국영기업을 공산당 서열 순으로 가족에게 위탁경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그대로이다. 이들 이른바 태자당(太子黨)의 부정부패는 상상을 불허한다. 따라서 누구든 권력다툼에서 밀려나면 그걸 빌미로 바로 사형될 수 있다. 걸면 안 넘어가는 자가 없다. 1995년 북경시 당서기 겸 시장 진희동이 국가주석 강택민에게 밉보여 단칼에 날아간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중국의 법치지수는 100점 만점에 개혁개방 30년이 지났지만 40점 정도밖에 안 된다. 유효파의 말대로 중국에서는 도무지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 권력과 부만 있으면 안 통하는 데가 없다. 그것을 일러 꽌시(관계 關係)라고 한다. 이건 중국의 전통이 맞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당독재의 정치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된 적은 없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는 인터넷과 전화까지 마음대로 통제하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폭력이다. 오히려 이 꽌시는 중국 화교들이 꽃을 피웠다. 그들은 정치권력이 없으므로 외국에서 화교끼리 서로 도우며 산다. 그건 부러워할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중국 본토에선 다르다. 공산당 내의 권력 서열이 최우선이다.

 

 중국에서는 재산권 분쟁과 노사갈등, 부정부패, 인권유린, 종교 탄압 등으로 매년 10만여 건의 폭동이 발생한다. 무자비한 탄압과 철저한 사전검열과 엄격한 보도통제 탓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노벨상 수상자 유효파가 원하는 것은 서구 수준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저 옛날 왕조시대만큼의 자유, 오늘날 동남아 수준의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것마저 원천 봉쇄하는 것이 G2의 일원이라는 중국의 공산당이다.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에서도 인종차별과 자원착취와 대량 이민과 현지인 고용배제 등으로 원성이 자자하다. 독불장군식 중화주의를 새로운 세계 질서로, 보편주의로 강압적으로 내세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중국식 조공(朝貢)제도를 수립하려고 한다. 그것을 일러 대국굴기(大國崛起)라고 한다. 가소롭다. 그러다가는 나라가 다섯 개 이상으로 분열할 것이다.

      (2010. 12. 13.)

 

[ 2010-12-13, 18: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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