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의 ‘해’는 김일성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모시고 그 은총(햇볕)을 받기 위해 충성경쟁을 벌이는 것, 그것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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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은 명분 싸움의 대가였다. 그는 한국이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사는 나라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국에선 명분을 선점하면, 무조건 100점 만점에서 51점 이상을 따고 들어간다. 누구든 일단 명분을 선점하면 언행이 전혀 상반되더라도 상관없다. 아무리 무능해도 상관없다. 아무리 독선적이고 위선적이어도 상관없다. 민심은 일제히 그에게 쏠린다. 특히 그가 권력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법의 심판을 받으면, 비장하게 그를 따르는 국민은 대뜸 법을 권력의 자의적 잣대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모든 물증과 증언을 조작이라고 확신하고 수군수군 음모론을 퍼뜨린다. 이윽고 그는 국민의 마음속에 탄압 받는 시대의 양심으로 깊이 새겨지고 미래의 지도자로 떠오른다.

 

 김대중은 처음에 민주의 명분으로 국민에게 다가왔다. 그러면 자연히 박정희는 독재의 몽둥이요, 김대중은 민주의 횃불이 된다. 박정희는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2년 만에 사회혼란을 바로잡은 후 군복을 벗고 어떤 후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공정한 선거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았다. 그때 민주의 명분을 내세운 이는 윤보선이었다. 그러나 윤보선의 민주는 정권을 담당했던 민주당의 무능과 부패로 푸른색이 허옇게 바래졌다. 민주는 무법천지, 자유는 방종으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김대중은 김영삼과 더불어 박정희와 연배가 비슷한 덕을 톡톡히 봤다. 여당의 젊음에 맞서는 야당의 젊음이란 정가(政街)의 그림이 당원과 국민의 눈에 멋지게 보였던 것이다. 40대기수의 패기(覇氣) 더하기 민주의 명분, 이것은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국민이 슬슬 명분을 중시하기 시작했던 것도 김대중에게 크게 유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역부족이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아무리 민주의 명분을 화려하게 포장해도 박정희의 정치는 옛 민주당 시절과 비교하면 독재라기보다 정치안정과 법의 지배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명분을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김대중은 은연중에 미래의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호남 지방과 수도권과 지식인 사이에서 그러했다.

 

 김대중이 두 번째로 들고 나온 명분은 햇볕정책이다. 1987년 6.29선언으로 노태우는 민주를 둔 명분 싸움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에게 동시에 묵직한 좌우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양김(兩金)은 다리가 풀려 비틀비틀 흐느적흐느적했다. 그들은 뇌신경도 헝클어져서 단일 후보를 내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민주의 명분이 추잡한 권력욕으로 비쳐졌다. 필생의 라이벌인 김영삼에게도 지자, 김대중은 충청도의 유신잔당 김종필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독재체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민주의 명분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이회창에게 ‘너는 독재, 나는 민주’라는 말은 도무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명분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민주와 독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민주를 택할 수밖에 없고, 이솝 우화에서 나오는 햇볕과 바람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햇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명분의 함정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반공정책은 바람정책이요, 김대중의 용공(容共)정책은 햇볕정책인 셈인데, 김대중은 머리가 비상하여 절대 용공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햇볕정책을 내세움으로써 대번에 명분을 선점했고, 유신잔당과 손잡음으로써 실리를 얻었다.

 

 한국인은 명분에 사로잡히면 사고가 정지되어 버린다. 햇볕정책을 곰곰이 따져보지 않는다. 우화에서처럼 햇볕정책이 성립되려면 북한의 김정일 일당이 엉뚱하게 불쌍한 나그네가 된다. 북한은 김정일의 독재권력과 그 독재권력에 신음하는 북한주민이 있는데, 햇볕정책에서는 북한이라는 말로 이 둘을 하나로 묶고 2000만 개의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북한주민(나그네)은 슬그머니 제외하고 권력과 말을 독점한 김정일 일당(바람)은 불쌍한 나그네로 보고 그들에게 햇볕을 쪼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은연중에 미국(햇볕)과 한국(나그네)은 싸잡아서 바람으로, 제국주의자로, 나쁜 나라로, 원수로 둔갑한다. 남북분단은 미국과 이승만 책임으로, 6.25도 미국과 한국 책임으로 바뀐다. 반공정책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인사를 탄압한 음모로 바뀐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은 제일 나쁜 나라, 한국은 그 다음으로 나쁜 나라가 된다. 간첩사건은 무장간첩이 아닌 한 모조리 조작이다. 국가보안법이 원천무효이므로 그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은 민주인사로 훈장도 받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 대학과 언론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도 대법원도 51% 이상 김대중의 햇볕에 세뇌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도, 자유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모를 것이다.

 

 햇볕정책이란 명분은 말 자체로는 너무나 그럴 듯하여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속았다. 심지어 정통우파를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도 속았다. 반공정책은 노태우 정부에 의해 북방정책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잊었다. 북방정책에 의해 중국과 러시아마저 한국 편이 되자, 김일성 부자 일당(바람)은 시베리아에서도 만주에서도 더 이상 찬바람의 원기를 못 받자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강제로 쫓겨나고 남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북한주민에게 쪼이기 직전이었다. 이런 호기를 바보 김영삼이 걷어찼다. 스스로는 반공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도 김대중이 주장하는 햇볕정책에 홀라당 넘어가서 중국과 러시아를 다 놓쳐 버렸다. 일본마저 놓쳤다. 그러자 바로 김정일이 핵바람을 일으켰다. 그 다음부터는 전전긍긍 완전히 김정일과 김대중의 손에 놀아났다. 김대중이 집권하자, 반공정책은 독재와 동격이 되어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북방정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개꿈으로 잊혔다.

 

 만약에 햇볕정책이 말 그대로 한국이 북한에게 쪼이는 햇볕이라면, 한국이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은 바람을 몰아낸 ‘해님’이시다. 한국은 구세주이시다. 한국은 자랑스러운 나라다. 정통성도 한국, 풍요도 한국, 자유도 한국, 민주도 한국, 진실도 한국! 반면에 북한은 수치스러운 반국가단체다. 정통성도 없고 풍요도 없고 자유도 없고 민주도 없다. 빈곤과 억압과 독재와 거짓만 난무한다. 북한은 자연히 둘로 나눠서 김정일 일당은 바람이요, 북한주민은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김정일 일당에게는 1달러도 주어서는 안 되고, 초코파이 하나, 라면 하나라도 북한주민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 임금도 관광비도 마찬가지다. 실은 정반대였다. 현금이든 수표든 모조리 김정일의 비자금 관리 담당자에게 주었다. 개성공단에서는 지금도 그러하다. 초코파이와 점심 때 주는 국물 외에는 직접 주는 게 없다.

 

 이명박 정부도 51% 이상 햇볕정책에 세뇌되어, 개성공단을 통하여 이미 같은 집권 기간으로 따지면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보다 많은 8억 달러의 현금을 올려 보냈고, 46명을 수장시키고도 김정일이 노여워할까 효과가 8억 배인 풍선전단 하나 못 날리고 여리고성 밖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내지른 고함소리보다 효과적인 대북 확성기 한 번 못 튼다. 민간인 포함 4명을 대낮에 잃고도, 수백km 수천km 사정거리의 미사일을 마음대로 쏘는 김정일이 협박하자, 한 달이 다 되도록 바람을 탓하며 북서쪽도 아니고 그저 남동쪽으로 10km도 안 나가는 포 한 방 못 쏘고 미적미적한다. 아마 한 방 쏘고 나면, 그걸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듯이 엄청 떠벌일 것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따르면, 한국은 온통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을 빼면 부정적인 것밖에 없다. 아니, 그런 부정적인 나라가 찬바람을 불어 제쳐야지 어떻게 따뜻한 햇볕을 쪼인단 말인가. 김대중이 정권을 잡자, 바람이 해로 바뀌었다고? 북풍한설이 어떻게 ‘해’가 된단 말인가.

 

 속았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에서 ‘해’는 김일성이다. 김정일이다. 인간은 감히 ‘해’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6.25에 대해서도, 핵에 대해서도, 미사일에 대해서도, 정통성에 대해서도, 세습독재에 대해서도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고개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입을 자물쇠처럼 채우고, 알아서 무엇이든 태양신에게 갖다 바쳐야 한다. 일단 바친 것은 거룩한 신의 제단에 바친 것이니까, 어떻게 쓰이는지 절대 물어봐서는 안 된다. 더더구나 반대급부를 바라다니! 그것은 태양신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에서 햇볕은, 그러니까, 김일성의 은총이요, 김정일의 은총이다. 그 은총이란 칭찬 받는 것이다.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간도 쓸개도 다 바쳐야 한다. ‘해님’은 무오류의 절대자니까, 절대 의심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 북한의 신문과 방송에서 나오는 말은 무조건 믿어야 한다. 그 말들이 이전 것과 모순되느니 안 되느니 그따위 말을 하는 자는 반민족주의자로서 증오해야 한다. ‘민족의 태양’에게 털끝만큼도 누가 되는 말을 하는 자는 철천지원수다. 그런 자는 이를 갈고 거품을 품으며 욕하고 저주해야 한다.

 

 서해5도를 중심으로 김대중 정권에서 일어난 2번의 전쟁도발과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3번의 전쟁도발은 모두 ‘해님’을 잘 모시지 못해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업보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첫 번째 잘못(국군이 여반장으로 북괴를 물리침)을 뉘우치고 두 번째는 종아리를 걷고 맞았으므로(김대중의 지시에 따라 참수리호의 옆구리를 대 주어 6명이 전사하고 참수리호는 침몰했음) ‘민족의 태양’이 은총을 내려 주셨다. 용서해 주셨다. 김대중은 서해 인당수의 인신공양에 흐뭇해진 김일성 태양신이 끄덕끄덕 자애로운 미소를 짓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싱글벙글 잔칫집으로 놀러갔다.

 

 민주당이나 민노당이나, MBC나 KBS나, 한겨레나 경향신문이나, 네이버나 다음이나, 한나라당 안의 위장보수나, 그들은 이심전심 김일성 태양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그것이 바로 햇볕정책의 정체이다.

    (2010. 12. 18.)

[ 2010-12-18, 23: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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