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일본과 2010년대의 중국
중국은 거품경제와 인권유린과 북한편애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 노릇조차 힘들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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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가 일본의 시대였다면, 2010년대는 중국의 시대다. 1990년대부터 일본이 걸어간 길과 현재 처한 상황은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이 장차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대체로 장밋빛 전망이 우세하지만, 주식시장에서 황소가 맹렬히 날뛸 때는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곰도 뿔 없는 황금송아지로 보이듯이 중국의 경제성장률과 무역흑자에 눈이 부셔서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도무지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숫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중국에 관한 한, 중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온통 가슴이 머리를 대신하고 있다. 주관적 희망이 객관적 전망의 날개를 달고 승리의 V자를 그리며 21세기의 창공을 날고 있다. 세계의 시계 바늘이 런던의 표준시에 맞추다가 뉴욕의 표준시로 맞추었듯이, 바야흐로 북경의 표준시에 맞추는 것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방송도 떠들고 책도 외치고 스마트 폰도 울부짖는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의 뜨거운 일본 찬양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약과다. 잠시 1980년대의 누런 달력을 끄집어냈다가, 2010년대의 하얀 달력을 펼치기로 한다.

 

 1980년대 일본호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가 오대양에 휘날렸다. 그것은 미국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함대가 진주만을 기습하고 태평양 상공에 욱일승천기를 내걸던 것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일본의 태양이 미국의 별을 대신하여 세계를 비추는 일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세계1위 일본 Japan As Number One, 1979>>,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1989>> 등은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이러한 충격과 자신감과 예상을 잘 드러냈다. 거대한 지구가 시속 1700km로 돌아감에도 누구의 귀에도 그 소리가 안 들리듯이, 큰일일수록 소리 없이 진행되는 법이다.

 

 1985년 9월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5개국의 재무장관이 넥타이를 풀어 제치고 머리를 맞댔다. 며칠 후 1대 250이었던 미국 달러 대비 일본 엔화가 급속히 절상되기 시작했다. 2년도 안 되어 사무라이의 키는 두 배로 자랐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995년에 80까지 내려갔다. 달러 환산 일본의 GNP가 가만히 앉아서 2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아우성이었지만 1억 중산층의 일인당 소득은 달러 기준으로 3배까지 늘어났던 것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태국과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소득이 순식간에 반 토막 나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는 것과 일본의 증시가 불붙듯 달아오르고 일본의 부동산이 마이더스의 손에라도 닿은 듯 금덩어리로 변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그 상황에서도 일본의 제조업은 짠 수건을 짜고 또 짜고 거의 무이자로 돈을 빌려 무역흑자의 행진을 계속했다. 소쿠리 엔을 가마니 달러로 바꾸어 일본의 대명(大名 다이묘)들은 미국의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고 동남아에 일본의 본사에 수직 계열화된 부품 공장을 마구 지었다. 이때 뉴욕의 월가총잡이들이 주식선물지수(stock index futures)로 동경의 칼 찬 사무라이를 유혹했다. 미래 어느 시점에서 니케이지수가 올라가면 사무라이가 먹고 ‘그럴 리 없겠지만’ 내려가면 카우보이가 먹기로 하자, 이것이 총과 칼의 대결이었다. 당시 니케이지수는 1987년 대폭락한 다우존스지수와는 달리 올라가기만 했기 때문에 사무라이들은 이중으로 일확천금할 생각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칼 한 번 안 휘두르고 대국을 접수할 수 있다니!

 

 거품은 꺼지게 마련이다. 1989년 12월 29일 니케이지수는 3만8915를 기록했다. 그리곤 터졌다. 2010년 12월 24일 현재 니케이지수는 1만279이다. 21년이 지났지만, 사꾸라가 만발하던 시절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때 일본의 동경과 그 일대만 팔아도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었던 땅값도 곤두박질쳐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흐느적거리고 있다.

 

 일본의 치명적 약점은 크게 3가지였다. 1980년대에 세계 10대 은행 중 8개를 차지했지만, 일본의 은행은 재벌의 경리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독립된 사업이 아니라 본가인 제조업에 미국이나 유럽 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비해 월등히 싼 금리로 독점적으로 돈을 대 주는 무수익 출혈사업이었다. 따라서 무역흑자로 덩치만 컸지 일본 은행의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더군다나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자기자본비율 8%를 강요하자, 일본은행은 제조업에 융통해줄 자본마저 부족해졌다. 이리저리 모든 부실이 금융에 집중된 것이다. 제조업과 은행을 한데 묶으면 부실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분식회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의 시장은 높은 비관세장벽으로 외국의 상품이 도무지 상륙할 수 없었다. 무역흑자는 선(善), 무역적자는 악(惡)이라는 중상주의 정책으로 일본의 1억 3천만 소비자는 높은 물가에 허리를 졸라 맬 수밖에 없었고, 일본 제조업은 출혈 수출로 수출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지속되었다.

일본의 정치도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이른바 족(族)의원은 자기 선거구에 이익만 되면 무슨 수를 쓰든 국가 예산을 끌어갔다. 예를 들면 농촌지역에 기반을 둔 농촌족의원은 각종 농촌보조금을 100여 가지나 만들었다. 노무현이 재미 좀 본 균형개발이란 것도 일본에서 크게 실패한 정책인데, 이것도 족의원들의 작품이었다. 전국의 부동산이 수요와는 관계없이 모조리 파헤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폭락, 증시폭발, 부동산급등이 계속된 것이다. 거대한 거품 속에서 희희낙락하던 일본은 결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누른 단추와 뉴욕의 월가에서 쏜 레이저 총에 의해 칼 한 번 못 휘두르고 초토화되었다. 세계제일의 일본 제품은 그 후 싸구려 중국제와 전통의 명품 독일제와 새 명품 한국제에 의해 쇼윈도의 구석으로 점차 밀려났다.

 

 중국은 일본의 화폐절상(환율하락)과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외환위기(화폐절하/환율상승)로 크게 학습효과를 얻었다. 미국과 유럽의 요구에 따라 외환시장을 전면 개방하여 환율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무역흑자국(일본)이든 무역적자국(동남아시아와 한국), 부자 나라도 가난한 나라도 국부가 금융강국으로 광속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중국은 2006년 금융시장을 개방했지만, 위안화는 달러에 사실상 연동(페그)하여 외환투기꾼이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위안화를 절상해야 한다고 아무리 오바마가 강력하게 주장해도 중국은 시늉만 낼 뿐 외환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급격한 위안화절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일본과 달리 소비시장도 많이 개방되어 있다. 무엇보다 일본과 달리 외국 자본의 투자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이들은 중국 수출의 50% 정도를 담당한다. 자연히 이들 다국적기업들은 생산하기 위해 수입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수출 세계1위, 수입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수출만 하고 수입은 안 하는 일본과는 다르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2030년이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현재 중국에는 십이오(十二五) 곧 제12차경제개발5개년계획(2011~2015)이 최대의 화두다. 십일오(十一五) 곧 제11차경제개발5개년계획(2006~2010)의 성과는 중국 스스로 놀랄 정도다. 2006년에서 2009년까지 4년 동안 평균경제성장률이 10.7%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9%로 잡아도 <십일오>의 평균경제성장률은 10.36%가 될 것이다. 세계금융위기 와중에 이룩한 성과가 이렇다. <십이오>도 자신만만할 게 틀림없다.

 

 시선을 중국 내부로 돌리면, 화려한 겉옷에 가려진 지저분한 속옷이 드러난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다. 경제만 잘하면 될 것 아닌가, 경제가 발전하면 다른 것도 자연히 발달하는 것 아닌가, 공산당 일당 독재면 어떠냐? 그것은 일당 독재라기보다 중국의 전통적인 유교적 체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가 유일한 정치체제의 정답이라는 것은 독선이 아닌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미국과 유럽과 한국의 좌파들이 그러하다. 서구 민주주의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가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보편적인 체제라는 주장이나 중국 전통의 유교적 통치체제라는 강변은 좌파의 궤변일 뿐이다.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체제는 어디까지나 독일의 마르크스와 소련의 레닌에게서 빌려온 외래사상이자 외래체제이다. 절대 전통적인 유교 사상과 유교체제가 아니다. 전통적인 요소는 운영과정에서 일부 가미되었을 따름이다. 하여간 여기선 우선 경제문제에 국한해서 말하면, 경제에도 공산당 일당체제는 자원과 자본의 배분에서 심각한 왜곡을 낳았다.

 

 일본은 재벌의 금융이 모든 부실을 떠안고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이 그것을 떠맡고 있다. 공산당은 전화 한 통화로 국영기업에 절대 갚지 않는 부실대출을 밑도 끝도 없이 대 준다. 부실채권의 규모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계를 조작하기 때문에 중국 자체에서도 아무도 정확한 것은 모른다. 공산당의 지시와 명령이 국가의 법률과 시장의 규칙을 우선하는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은 사실상 고위 당간부의 가족(태자당)이 사유화했기 때문에 대출 명목으로 국민의 높은 저축을 거의 싹쓸이하여 끝없이 부실을 키우며 과실을 뜯어간다. 각 성(省)은 각 성대로 성 단위 거대기업을 좌지우지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합세하여 정부 주도의 투자로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한다며 사회간접자본시설과 건축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일본의 대규모 부동산 투자나 미국의 정부 보증 부동산 투자에 조금도 나을 게 없다. 환율주권은 쥐고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실채권과 수요 없는 부동산 과잉투자는 자체적으로 거대한 거품을 안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터지게 되어 있다.

 

 모택동이 만든 이중체제에 의해 농촌 사람은 농민공으로서 도시에서 값싼 노동력만 제공할 수 있을 뿐 시민으로서 권리는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도, 3억에 달하는 이들 현대판 노예 문제도 공산당의 강압으로 언제까지 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는 사치고 이들이 ‘노예해방’을 부르짖고 중산층이 인권에 눈을 떠 이들에 동조할 때, 중국은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가난할 때는 독재권력이 얼마든지 생존권을 위협하여 진압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가 되어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생존권을 위협할 수 없기 때문에 인권 문제는 불거지게 되어 있고, 그것은 절대 물리력만으로 제압할 수 없다. 이론과 논리로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산당의 평등 이념으로 보나, 유교의 천명(天命)사상으로 보나, 현대판 노예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실제로 중국의 중앙정부에서는 그 잠재적인 폭발력을 알고서 지방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중체제를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폐지해도 좋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방의 한 도시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농민공을 시민으로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 도시는 바로 파산위기에 봉착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교육과 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도 시재정이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중체제를 폐지하려는 도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도 중국의 목에 걸린 가시다. 삼킬 수도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뺄 수도 없다. 경제면에서는 다르지만 양쪽 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라는 것은 동지애와 형제애 또는 부하에 대한 편애를 강렬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조건 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을 내치는 순간 중국도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악마 그 자체이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의 약점만이 아니라 중국의 약점도 잘 알고 철저히 양쪽으로부터 단물을 빨아먹어 세습독재체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부모순이 너무 커져서 김정일이 북한노동당의 핵심세력에게 더 이상 은총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중국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기 때문에 김정일에게 연명 수준의 식량과 물자를 제공하고 한국도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받든 두 정권과 그들의 추종세력에 대한 학습효과로 예전만큼 노골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핵심세력에게는 은총을 계속 베풀어야 한다. 그런데 김정일은 그게 점점 어려워진다. 이제 남은 수단은 하나밖에 없다. 중국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제2의 6.25를 일으키는 것이다. 중국은 자동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정일은 누구보다 잘 안다. 중국의 동의를 전혀 구하지 않고 한국에 기습도발할 때마다 중국이 무조건 북한 편을 드는 것으로 김정일은 중국의 마음을 거듭거듭 읽었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지만, 핵개발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포격에서 잘못된 신호를 확실하게 보냈다. 그것이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의 한계이다.

 

 일본의 거품도 터졌고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거품도 터졌고 미국의 거품도 터졌다. 중국의 거품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궁지에 몰린 김정일이 던지는 최후의 한 방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한국과 북한,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21세기 세력균형을 재편하기 위해서 크게 부딪칠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로 중국의 시대는 사라질 것이다.

  (2010. 12. 25.)

 

 

[ 2010-12-25, 14: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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