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실제는 12월초에 사망한 듯
북한은 김정일 동선에 대한 추적을 피하고, 현지시찰 내용을 정치화하기 위해 현지시찰 날짜를 의도적으로 조작하곤 했다.

장진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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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정일 사망 시간을 17일 오전 8시 30분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여러 의문이 든다. 우선 시간의 의문이다. 오전 8시 30분에 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정도라면 적어도 출발준비를 감안할 때 오전 7시나, 아니면 그 전 새벽시간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의 특별열차는 인공위성 감시의 노출을 피하기 위해 원칙상 어둔 밤에만 움직인다. 설사 새벽에 김정일이 심장 발작을 일으켰어도 열차로 후송하지 않을 것이다. 1994년 7월 7일 김일성이 평양과 육로로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 묘향산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도 첫 번째 헬기가 도중에 추락하자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헬기를 또 보냈던 북한이다.

 

8시 30분 사망설이 더 의심스러운 것은 북한 고위간부들에게 알려진 김정일의 하루 일과 시작은 오후 12시여서 제의서 보고 마감시간을 2시로 한다. 밤마다 여흥과 파티로 보냈던 젊은 시절의 습관이 아예 굳어져 체질화 된 것이다. 김정일과 파티를 함께 했던 외국인들은 새벽까지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열정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렇듯 김정일은 김일성처럼 카리스마 외교가 아니라 화끈한 밤 외교를 하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0년 8월 한국 언론사사장단 방북 때에도 김정일은 목란관에서 거의 새벽3시까지 파티를 함께 즐겼다. 북한 간부들이 새벽 5시나 6시경에 교통사고로 많이 죽는데 그 이유도 김정일과의 파티에 참석하고 충성경쟁을 위한 아침출근을 서두르다 당하는 변이다.

 

그런 김정일이가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현지시찰을 떠났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내가 김정일의 사망시간을 문제 삼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마지막 현지시찰 때 입었던 방한복 안의 인민복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먼저 김정일의 옷에 대해 보기로 하자.

 

김정일의 인민복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볼 수 있는데 바람이 잘 통하도록 목이 훤히 드러나는 인민복과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지퍼가 달린 인민복이다. 맨 위의 1번과 2번 사진은 똑같은 반소매이다. 하지만 옷깃의 차이로 1번 사진은 무더운 7. 8월에 시원하게 목까지 드러낸 인민복이고, 2번 옷은 여름 시작 전에 입는 6~7월용이다. 마찬가지로 3번과 4번 사진도 똑같은 긴소매지만 목 부위가 다르다.

 

3번은 주로 가을용, 4번은 가을 겸, 겨울용이기도 하다. 5번 사진의 옷은 과거 김정일의 외교복장이었지만 김일성 사후 잘 입지 않았다. 위 사진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 6번과 7번 사진들이다. 김정일의 방한복은 그냥 겨울옷이 아니라 준엄하지 않으면서, 사치스럽지도 않은 군복 대체용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북한에선 김정일의 방한복을 야전복이라고 한다.

 

문제의 초점은 그 방한복보다 안에 입은 인민복이다. 김정일은 11월이면 의례히 방한복을 입는데 날씨가 추워지거나 12월쯤 되면 6번 사진과 같은 간편한 긴소매 인민복을 벗고 목까지 가리는 지퍼 달린 인민복을 입는다. 아래의 사진은 7번과 똑같이 지퍼달린 인민복을 입은 김정일 현지시찰 사진이다.

(연합뉴스 자료)

 

뇌졸중 이후 2008년 12월 1일 김정일의 첫 군부대 현지시찰 사진이다. 똑같은 12월인데도 목 부위가 확실히 틀린다. 더구나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김정일 사망 이전인 12월 11일 북한은 내륙 남쪽지역인 황해도에서도 산발적으로 눈이 내렸다, 15일엔 날씨가 더 추워져 최저 영하 7도까지 평양 기온이 뚝 떨어져 체감 온도는 거의 영하 15도 이상이었다. 그런 찬 날씨에 김정일이 9월부터 11월까지만 입는 목이 다 드러난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북한이 14일 공개한 김정일의 연합 타격훈련지도 사진에서도 김정일은 방한복 안에 지퍼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연합뉴스 12월 14일 자료)

아래 사진은 북한이 김정일의 마지막 현지시찰이라며 공개한 것인데 방한복 안의 인민복이 반쯤 목을 드러낸 늦가을용이다. 시기적으로는 11월, 혹은 12월 초에나 가능했을 복장이다.

물론 목 부위를 노출시킨 겨울 사진들도 가끔 있지만 그것은 북한 정권이 김정일 현지시찰 공개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신변보호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동선 추적을 피하거나 혼란을 주려 일부러 현지시찰 날짜와 장소를 전혀 다르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제 북방 함북에 갔다고 공개하고, 전혀 반대쪽인 황해도에서 움직이는 교란전술이다.

 

또한 김정일은 현지시찰 대상을 국제사회에 보내는 의미 있는 메시지로도 활용하기 때문에 현지시찰 내용을 전략화 한다. 그래서 김정일 현지시찰 사진들을 보면 극히 제한된 몇 사람만 동원되는데 이는 비밀보안을 위해 최대한 현장 인원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런 북한이어서 연이어 공개한 김정일 사망 며칠 전 현지시찰 내용들이 가장 의심스럽다.

 

북한은 13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김정일이 평양방어사령부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공개했다. 14일에는 생뚱맞게도 지난 9월 초에 김정일이 관람했다는 연합군포사격훈련 영상을 공개하여 강경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다. 그리고 15일에는 우리의 대형마트에 해당되는 광복지구상업중심과 하나음악정보센터 현지시찰 공개를 끝으로 19일엔 김정일이 현지시찰 도중 17일에 열차 안에서 순직했다고 특별방송 했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 이후 그가 주도했던 회의와 문건의 사인까지 김정일 후계정책과 연계시켜 선전한 경험이 있다. 북한이 13일과 14일 김정일의 화력타격훈련 시찰과 과거 동영상까지 덤으로 공개 강조한 것은 김정일 사후발표 대비 대남 경고용이었을 것이다.

 

한편 상업지구와 하나음악종합센터를 마지막 현지시찰 장소로 선택한 것은 김정일의 유훈통치 선전 근거를 만들고, 향후 김정은 정권의 경제정책 이념과 계승적 틀을 준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여러 의문점들을 종합했을 때 김정일 사망은 12월 17일 오전 8시30분이 아니라 북한이 김정일의 화력타격훈련지도를 공개한 12월 13일, 그 이전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 2011-12-25, 23: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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