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소년이 경찰관 아들이라고 빨갱이의 죽창에 찔려 죽는 것을 맨 앞줄에서 보면서 자란 세대"
前 국정원 차장의 아버지 세대 옹호론: "우리가 너무 부지런히 일한 것이 罪라면 罪"

金銀星(前 국정원 차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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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아버지는 시대적 사명을 다 한 위대한 세대로 평가돼야
 
가수 인순이, 이 시대의 아픔과 모습을 상징하면서 태어나 조국의 성장과 아울러 명성 높은 가수로 발돋움한 혼혈 가수 인순이가 부르는 ‘아버지’와 함께 관객도, 티브이를 시청하던 나도 눈물을 지었다. 언제부터인가 한 시대를 밀고 당겼던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이 안겨준 책무를 모두 완수하고도 고개 숙인 아버지가 되어 애처로움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속죄하여야 할 책무까지 지게 된 것이다.

간첩행위로 두 번이나 구속되었던 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이란 작자를 비롯하여 좌익, 從北(종북)세력들은 이 따위 소리들로 젊은이들을 자극하며 세대간 갈등과 민중혁명을 부추기고 있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시대적 사명을 다 한 위대한 세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한 낱 사회적 패배자들의 헛소리를 가슴에 담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과연 우리 세대가 어떠한 삶을 살아 왔나를 살펴보며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젊은이들의 평가를 받아보기로 하자.

어린 나이에 전쟁의 고통을 맛보며 견뎌

이 시대의 아버지는 그래도 ‘해방동이’라는 축복으로 강인한 優性인자를 가지고 태어나서인지 모진 가난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 낸 무서운 저력을 보였다.

나는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다섯 살의 나이에 미숫가루와 소금으로 채워진 헐거운 배낭을 메고 엄마, 누나, 형, 동생들과 하루 세 끼 미숫가루 물로 허기를 채우면서 온종일 걸었다. 너무도 배가 고파 개울에서 피라미를 잡아 날로 삼켰고 이름 모를 열매를 따먹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먹었고 쥐어짜는 배앓이와 설사로 어린 나이에 죽음의 공포를 맛
보았다. 밤에는 공터에 모여 빨갱이 노래를 배워야 했다. 너무 힘들어 빠지려 하면 ‘놈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아홉 살배기 형이 귓속말로 타일렀다.

동네에서 인민재판이 벌어지면 맨 앞줄에 앉아 사람 때려죽이는 것을 보아야 했고, 경찰 출신이라 하여 붙잡혀 총살당하는 것도, 내 또래로 보이던 그의 어린 아들이 죽창에 찔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도 겁 없이 지켜보았다.

생존을 위한 인내심과 경쟁력을 일찍이 터득

배고프고 걷기가 힘들어 빈 집 툇마루에서 동생 포대기를 덮고 누웠는데 너무도 배가 고프고 발가락이 아파 화가 치밀어 포대기를 땅바닥에 내 던지고 그 위에 오줌을 쌌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아마 내 인생 최초의 삶에 대한 저항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새벽이 오면 또 무작정 걸어야만 했다. 엄마에게 어딜 가냐 물으면 서울에 사는 이모 집에 간다면서 거기만 가면 배불리 먹고 편히 잘 수 있다고 했다.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떻든 빨리, 많이 걸어야 살 수가 있고 이모를 만나야 먹을 수가 있다. 그 희망에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피난민 대열을 앞서고자 깡충 깡충 달리기도 했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도 고생을 통해 너무도 일찍 철이 들었던 것이다. 그 나이에 살기 위해서는 참아야 하고 대열에서도 앞서야 이긴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하였다. 

“헬로야, 쪼코레토 기브 미”의 의미를 아는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도 6·25 戰亂에서 용케도 살아났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공포는 수시로 꿈에 나타나 잠자리를 괴롭혔다. 지저분한 환경과 영양실조로 기계충에 걸린 빡빡 머리에는 허연 가루약을 뿌리고, 온 얼굴에 버짐을 뒤집어쓰고는 미군 지프차 뒷구멍에서 날리는 메케한 가스냄새를 떼 지어 좇으면서 “헬로야, 쪼코레토 기브미”를 외쳐 대던 가슴 아픈 시절이었다. 사실상 거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국민학교(現 초등학교) 시절, 교실은 전쟁 부상자들의 병실로 사용되었고 우리는 운동장 구석에서 상급생으로부터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였다. 班마다 나이 든 전쟁고아들이 5~6 명씩이 있어 걸핏하면 그들에게 매를 맞아야 했다. 엄동설한에 양말도 없이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향해 달려야 했다.

어려움은 남의 탓이 아닌 자기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해

그리고 4·19와 5·16이란 두 번의 혁명을 겪어야 했다. 고교시절에는 민주화를 외치며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 흘리며 거리를 누벼야 했고 대학시절마저도 데모와 휴업 속에서 씁쓸히 날려 보내야 했다. 대학 정문에는 군인들이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했고 이따금 탱크가 정문에 버티고 있어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군에 들어가 또 다시 배고픔과 이유 없는 몽둥이질을 경험해야 했다. 하필이면 복무 중에 하필이면 울진 공비사건이 터져 제대를 앞두고 복무기간이 여섯 달이 연장되었다.

수 십, 수 백 對(대) 일 이라는 바늘 구멍만한 취직시험을 뚫고 직장을 얻어야 했고 하루하루를 뼈 빠지게 일했다. 막걸리 한번 실컷 먹었으면 했던 회사 초년병 시절에는 밤이면 밤마다 야근에 시달렸다. 그 때는 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어서 사무실 책상 위에 신문들을 겹겹이 깔고 전화번호부를 베개 삼아 새우잠을 잔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도 남의 탓 하지 않고 묵묵히 극복해 내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인 것이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全 인생을 걸어

아마도 반만년 역사 속에서 이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쪼들리는 박봉에 목줄을 매달고 죽어라고 일한 세대도 없을 것이다. 당시 구호처럼 “‘왜’에서 ‘어떻게’로”, “뛰면서 생각했던” 이 시대의 아버지들. 변화를 창조하며 그 물결을 뒤따라야 했던 불굴의 아버지들. 세계를 상대로 경제가 뻗어 나가게 되자 때 늦은 영어 회화 공부에 골머리를 앓았고 이어 정보화시대를 맞아서는 컴퓨터 공부에 열성을 다 했다. 그러면서도 자식 代에서는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각오로 뼈아픈 고통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 덕택에 자식들은 풍요를 누리면서 외국에 나가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부러움을 사는 세대가 되었다.

韓流 문화가 외국을 휩쓸 수 있는 초석을 만들어 준 아버지들의 힘들었던 시절은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이 행복을 구가하면서 生을 즐기고 있다. “아껴 써라, 공부하라” 하면 ‘보수 꼴통’이라면서 말이 안 통한다고 불평한다. 저들끼리만 바빠 돌아다녔지 언제 노인들과 대화할 기회를 주었는가?

젊은이들의 잘못이 기성세대의 책임인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변화와 발전을 창도하면서도 스스로는 그 변화를 못 따라가 뒤쳐지고 말았다. 너무 부지런히 일한 것이 죄라면 죄가 되었다. 남의 나라에서 수백 년 씩 걸리는 민주화와 선진 경제를 불과 40년 이라는 한 세대에 이루어 낸 것이 문제였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른다. 참을성도 없고 겸손도 모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成人이 되어서도 부모에 기대며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부모들이 미련하게 살았다고 비아냥댄다.

이름 없는 직장, 일 많은 직장, 월급 적은 직장은 싫다면서 취업이 안 된다고 불만이다.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사회제도와 기성세대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도 존중하거나 믿지를 않는다. 노력도 않는다. 삶의 목표도 없다. 여기에 못된 이념분자들과 정치인들이 이들의 헛된 꿈과 상대적 열등 콤플렉스를 자극하게 되면 데모나 SNS를 통해 분노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써 사회를 병들게 한다. 

정치인들의 각성만이 이들의 분노 에너지를 멈출 수 있어

금년 兩大 선거에서 이들의 잘 못된 에너지가 폭발할 때는 이 나라는 미래를 잃게 된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동이나 인기에 영합한 여론 몰이가 기폭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정권을 잡아 본들 누구도 이들의 분노 에너지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그 정권도 망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여 이명박을 전폭 지지하더니 이젠 이명박이 미워 노무현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처럼 난리다. 韓美(한미) FTA, 제주 군사기지 건설 모두 노무현 정권에서 결정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의 책임으로 돌려 반대하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이 많아 희망은 있어

그러나 절망하지는 않는다. 도서관에 가보라.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허름한 옷차림에 책과 싸우는 젊은이들을 볼 때 나는 희망을 갖는다. 그들은 불평이 없고 요행심도 없다. 자살하지도 않는다. 제 인생에 충실할 뿐이다. 앞만 보고 한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이기에 인순이의 노래 ‘아버지’가 더욱 가슴 저미게 들리는 것이리라.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가 된 4·19세대 그리고 6·3세대 파이팅!


2012. 1

[ 2012-01-19, 09: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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