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朴是春 선생 탄생 100주년이다!
정작 그의 고향 경남 밀양에서는 그를 追慕(추모)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

문무대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올해는 국민들의 가슴을 적신 불후의 名曲(명곡)을 많이 남겼던 작곡가 故 박시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다.

재단법인 ‘노래의 섬’은 박시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박시춘의 삶과 음악을 되돌아보는 ‘박시춘과 함께 하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 전시회’를 8월3일부터 12월31일까지 춘천 남이섬 노래 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가진다고 밝혔다. 박시춘 선생 탄생일인 오는 10월28일에는 《박시춘 평전》 출판기념회와 그가 작곡했던 ‘봄날은 간다’ 비석 제막식도 열린다. 한국싱어송라이터 협회는 지난 해 10월, ‘박시춘 선생에게 바치는 獻呈(헌정)음악회’도 가진 바 있다.

朴 선생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3000여 곡의 대중가요를 작곡했다. 그의 노래는 일제 암흑기와 해방공간, 6·25 動亂(동란)에 시달렸던 국민들의 失意(실의)를 달래주던 귀한 청량제였다. 대한민국 시인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가사의 ‘봄날은 간다’를 비롯하여 ‘애수의 소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신라의 달밤’ 등 주옥같은 곡을 남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제강점기 조영암이 작사한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등 네 곡이 親日(친일)성향의 가요로 분류되면서 ‘親日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밀양시는 朴 선생의 업적을 기려 그를 ‘밀양을 빛낸 인물’로 선정해 그의 生家까지 복원했으나 개관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민 음악가’로 큰 발자취를 남긴 그는 지금도 많은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전국에서 박시춘 선생의 음악을 기리고 추모하는 음악행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정작 그의 고향 밀양에선 잠잠하다. 고향에서는 홀대받고 국민들로부터는 추앙받는 그 모습을 밀양 사람들은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지 궁금하다.

필자가 <조갑제닷컴>에 기고했던 칼럼을 소개한다.



‘위대한 작곡가’ 朴是春을 기리는 獻呈(헌정)음악회 열린다

그가 작곡한 3000개의 작품 중, 단 네 곡 때문에 親日로 몰린 적이 있다!


2012년 9월14일자 칼럼
문무대왕(회원)

위대한 작곡가 朴是春(박시춘, 1913~1996) 선생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선생은 故人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수많은 사람들이 愛唱(애창)하고 있다.

그를 기리는 獻呈(헌정)음악회가 준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사단법인 ‘싱어송라이터협회’는 오는 10월9일 朴선생의 음악적 功勞(공로)를 기리고자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이미자, 주현미, 장사익, 보아, 김범수 등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후배가수들이 출연한다. 특히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있는 朴선생의 손자 박창조 군(17)도 출연할 예정이다.

朴선생은 ‘애수의 소야곡’,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낭랑 18세’등 3000여 곡의 珠玉(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朴선생은 日帝(일제)치하와 해방공간, 6ㆍ25動亂(동란) 등 암울하고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노래를 통해 시련을 이길 수 있게 해주었고 삶에 위안을 주었다.

朴是春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음악적 업적과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다시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아래 칼럼은 2010년 4월2일字 <조갑제닷컴> 게재되었던 글을 再게재 한 것입니다.


위대한 작곡가 朴是春을 핍박하는 고향사람들


민족문제연구소는 朴是春(박시춘)이 작곡한 3000여 곡 중 네 곡이 親日성향이라고 분류했다. 그는 졸지에 親日작곡가가 되고 말았다.

                                                                                              문무대왕(회원)



누구에게나 어릴 적 살았던 옛 집은 추억으로 와 닿는다.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이든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든 간에 그곳은 성장기의 애환이 서려있는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 옛집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고향의 온돌방 아랫목 이불 밑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박시춘의 옛집은 그렇지 못하고 지금 수모를 겪고 있다.
 
밀양 영남루 뒤편에 가면 이상한 안내문 하나가 게시되어 있다.
 
 <우리 고장 출신이며 한국가요계의 거목인 박시춘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2001년에 박시춘 옛집을 복원하여 문을 열어 왔으나 2005. 9. 25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 박시춘 선생도 포함되어 2005. 10. 16부터 관람을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박시춘 선생은 「신라의 달밤」「애수의 소야곡」「이별의 부산정거장」「럭키서울」등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요 3,000여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혈서」「목단강 편지」「결사대의 안해」「혈서지원」등 네 곡의 친일작품을 남겨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민의 뜻을 모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밀양의 전통을 잇는 올바른 방향을 찾아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2006. 11 밀양시장>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도 안내문은 버젓이 붙어있다. 구차하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은 장본인은 밀양시장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한국 가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간 박시춘의 음악적 업적을 자랑하고 기리며 추모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박시춘을 친일파로 몰아세워 짓밟고 매도하고 저주하자는 것인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박시춘이 뛰어난 작곡가요, 밀양의 자랑이긴 하지만 친일성향의 작곡 몇 편이 있어 부담스럽다는 요지인 것 같다.
 
그렇다면 시장은 아직도 시민의 뜻을 한 곳으로 모으지 못했는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밀양의 전통을 잇는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했는가? 참으로 어리버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신도 없고 확신도 없는 우유부단의 극치다.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이같은 안내문을 내건 밀양시장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밀양시장은 고장의 명예와 자존심을 무시하거나 희롱해서는 안 된다. 애매모호한 안내문을 내걸 당시 밀양은 세계적인 영화의 현장이란 명성을 얻었다. ‘시크리트 선샤인(密陽)’이란 국산영화의 주인공 전도연이 칸느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밀양은 빛나는 명예를 차지했다. 비록 어린이 유괴의 도시라는 부끄러운 면도 있었지만 어쨌든 유명한 고을이 됐다.
 
박시춘이 있었기에 밀양은 자랑스러운 대중가요의 산실이 되었다. 그 밀양이 이름난 영화의 현장도 됐다. 그런데도 밀양시장은 그 명예와 긍지를 제대로 지키고 떳떳하게 자랑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렇게도 겁이 나는가? 그들이 만들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이 그렇게도 무서웠던가? 시민의 뜻을 모으겠다고 했으면 빨리 여론을 수렴해 제대로 마무리 지었어야지 그대로 버려두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시춘은 과연 그의 옛집을 개방하지 못할 정도로 열렬한 친일분자였던가? 그렇지 않다는 반론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박시춘은 1913년 10월28일 태어나 1993년 6월3일 83세를 일기로 그의 파란만장했던 음악 인생은 끝났다. 그의 데뷔곡은 '희망의 노래'였다. 그가 만든 노래는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과 6.25동란 등 힘들고 어려웠던 시련기에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달래줬다.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준 위안이요, 위로의 청량제였다. 주옥같은 국민애창곡도 수두룩하다. 해방의 환희와 기쁨을 노래한 ‘럭키서울’, ‘신라의 달밤’, 남북분단의 아픔을 그린 ‘가거라 삼팔선’, 조국을 지키다가 산화한 국군 용사들을 추모한 ‘전우야 잘자라’, 전쟁 통에 고통 받고 시달리는 피난민들을 어루만져 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있다. 박시춘은 3000여 곡의 노래를 작곡했다. 그 가운데 네 곡이 친일성향이라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분류했다. 그래서 그는 친일작곡가가 됐다. 그의 옛집을 복원했으나 떳떳하게 개방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부정적 시각과는 달리 박시춘의 음악은 긍정적으로 재조명, 재평가되고 있다.
 
2009년 10월21일 ‘한국가요 작사가 협회’는 박시춘의 음악적 업적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을 가졌다. 음악 평론가 박성서는 “박시춘이 남긴 3000여 곡에 이르는 노래와 악상(樂想)은 근대한국 대중가요의 초석이자 근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동순 교수도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시춘이 전심전력으로 친일을 향해 질주한 것처럼 평가한 것은 어설픈 방식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친일성향 4편이 그가 작곡한 전부를 함축할 정도로 분량과 품질의 측면에서 과연 문제가 있는가를 그들에게 반문한다”고 했다.
 
박시춘 음악을 연구해온 향토출신 오태환도 “어떤 사람이 뭐라고 하더라도 박시춘은 식어버린 조국의 아픈 심장에 뜨거운 민족의 노래를 심어준 신구자였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치하에서 가슴 치며 울었던 아픈 역사와 함께 우리민족의 애환을 노래로 달래준 박시춘을 욕하며 침을 뱉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노래는 나라 잃은 서러움의 통곡이었고 울분이었으며 살아 숨쉬는 민족의 혼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땅의 수많은 음악계 선각자들의 먼지 같은 사소한 약점을 잡아 친일 예술인으로 짓밟고 왜곡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며 슬픈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암울하고 불행했던 시대에 어렵게 예술 활동을 했던 선배들을 인민재판식 단두대에 올려놓고 그 공과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親日논쟁은 역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므로 심히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親日규정의 논리와 주장에도 다양한 반박과 평가가 있다. 그들의 기준대로라면 손기정 선수도 친일인사여야 하는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손기정이 아닌 ‘손기떼이’라는 이름으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은 일본의 국위를 세계만방에 과시한 것이므로 친일중의 친일임에 분명하지 않은가? 손 선수가 친일로 몰리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친일행각을 단죄한다면 왕족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일본 황족들과 혼인한 조선왕조의 왕족들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기고 조선 백성을 일본의 2등 국민으로 전락 귀속시킨 자들이 누구인가? 영친왕은 일본 육군 중장의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연합군에 맞서 싸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문제를 삼으려면 나라와 백성을 통째로 일본에 넘겨준 을사오적과 군왕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일제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해 소극적으로 협력하였거나 어린 시절 일본 제도를 따라가고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친일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 많다. 비슷한 조건에 처했던 사람들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을 위해 크게 기여한 인물들만을 찾아내 친일로 몰아세우는 것은 그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의심 받고 있다.
 
‘한국가요 작사가 협회’는 심포지엄에 이어 박시춘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3년 남양주시에 박시춘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밀양시장의 이중적이고 어정쩡한 행동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몇 줄 안 되는 박시춘 생가의 안내문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모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단편적이거나 주관적이어서는 안 된다. 보편타당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일방적인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역사의 평가와 심판은 또다른 심판을 받게 되는 악순환만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영남루 아래를 흐르는 남천강, 강 언덕 저편에서 어린 순동(順東-박시춘의 본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식민지의 아이로 태어나 친일이 뭔지도 모르고 뛰어놀았을 해맑은 그 얼굴, 그 모습이 푸른 강물 위에 비치는 듯 어른거린다. 그의 대표곡 ‘애수의 소야곡’을 고향의 강물 위에 띄워 보내며 복원된 그의 옛집이 떳떳하게 빨리 개방되기를 기대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은 /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 못 잊을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수필문학 4월호>

[ 2013-08-14, 18: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