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橘)이 탱자(枳)가 된다지만
세월이 흘러도, 사는 곳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것도…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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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中國(중국) 故事(고사)에 나오는, 같은 나무라도 淮水(회수) 남쪽에 심으면 귤나무가 되고 북쪽에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橘化爲枳(귤화위지)’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0대에 臺灣(대만)에 갔을 때다. 난생 처음으로 나라 밖에 나가 본 터라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그 중에서도 놀라운 것이 그곳에 살고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었다. 針葉樹(침엽수)라면 잎이 우리나라 소나무처럼 바늘 같아야 할 것인데, 아니었다. 그곳 소나무는 잎이 길고 부들부들한 것이 가벼운 바람에도 이리저리 휘날리는 그런 것이었다.

그 뒤 이태리에 갔을 때도 그 비슷한 것을 느꼈다. 현지의 가이드는 지금도 이용하고 있는, 기원전에 개설한 로마의 아피아 街道(가도) 가에는 소나무들이 서 있는데 로마 장병들은 전투 사이사이에 그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을 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소나무는, 우리 소나무 보던 눈으로 보니 모양이 이상했다. 그곳의 소나무는 자그마한 키에 딸애 단발머리 한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훤칠한 키, 하늘을 향해 兀然(올연)하게 쭉쭉 뻗은 가지에 거북 등 같은 껍질을 한, 저 경포대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소나무에 비하면 그곳 소나무는 실로 볼품없는 것이었다.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식물은 역시 그 사는 풍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았다. 中國에 갔을 땐데, 우리를 안내하는 아가씨가 스스로 자신이 中國人이라고 하는데, 생긴 모습은 영판 韓國(한국) 사람이었다. 中國 아가씨들은 거의 모두 눈가에 검은 그늘 같은 것이 져 있어 그것으로 금방 알아볼 수 있는데 그녀는 그런 것이 없고, 한눈에 보아 바로 韓國 처녀 같았다. 그래, 이상해서 그 말을 했더니 그녀는 자신이 아주 어릴 때 韓國에 가서 살다가 中國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韓國 물 먹고 韓國 햇볕 쬐고, 韓國 공기 호흡한 것이 놀랍게도 그녀의 외모를 韓國 사람의 그것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 韓國人으로 美國(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그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코가 오똑하고 양 볼이 움푹 들어간 것이 美國 사람을 꼭 닮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이 그 사람들의 얼굴을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내 생각에, 오랜 세월 영어를 쓰다 보니 늘 쓰는 안면 근육이 달라 어떤 곳은 퇴화하고 어떤 곳은 발달한 것이 얼굴 모습을 그렇게 만든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은 사는 환경이 달라도, 겉모습이 그렇게 좀 변해도 식물처럼 귤이 탱자가 되듯이, 그렇게 바뀌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도 처음부터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8세기 스위스의 여류 평론가 스탈 부인은 그 종족이 살고 있는 환경이 그 種族性(종족성)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녀는 태양이 빛나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유럽 南方(남방) 사람들은 스페인인들이 그런 것처럼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을 띠고, 울창한 숲, 짧은 日照時間(일조시간), 짙은 안개의 땅 북유럽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바이킹족들처럼 그 성격이 우울하고 정열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먹는 음식, 그들이 겪은 대사건 같은 것이 그 종족의 성격을 결정한다고도 했다.

어쨌든 오랜 세월을 두고 그렇게 형성된 인간의 성격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우선 말부터 그렇다. 애를 써서 배운 외국어는 의식이 흐려지면 잊어져버리는데, 유년기에 엄마 품에서, 누나 등에 업혀서 배운 말은 마지막까지 머릿속에 살아 있다 한다. 李承晩(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상에서 거의 영어만 쓰다시피 했는데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그 말들은 다 잊어버리고 그가 나서 자라던 黃海道(황해도) 사투리 몇 마디밖에 못하더라 한다.

입맛만 해도 그랬다. 언젠가 TV에서 보니 오래 전에 그곳에 가서 살고 있는 서아시아 러시아 땅의 우리 동포 3세들이 우리가 먹고 있는 김치, 된장을 그대로 담가 먹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사는 곳이 달라도,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조상 대대로 먹던 그 음식 맛을 잊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온난한 기후, 후덕한 땅에서 살아온 우리 한민족에게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몸에 밴 우리 특유의 민족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오랜 역사의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 어떠한 고난에 처해도 그것을 극복하는 강인한 생명력, 남의 어려움을 보고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정, 고지식하고 말주변은 없으면서 (木訥·목눌) 진정성을 가진 마음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세계는 한마을이 되었다. 나는 그러한 성격을 가진 우리 민족은 그 사는 곳이 어디든, 세계인을 이웃으로 하여 밝은 앞날을 열어 가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 2013-12-31, 13: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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