葉錢(엽전)과 귓속말과
무엇보다 급한 일, 역사교육 바로 세우기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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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역사 교과서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일이야말로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아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마음이 쓰임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나는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의 反共(반공)교육이 6·25사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위에 나는 일제시대의, 소위 식민사관에 바탕을 둔 교육의 害惡(해악)이 얼마나 컸던가를 여러 번 경험했다.

식민사관이란 처음부터 臆說(억설)이었다. 예를 들면 그 사관은 조선은 大陸(대륙)도 아니고 섬도 아닌 어중간한 半島(반도)이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자립 능력도 없고 진취성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는 말도 안 되는 것이, 그러면 같은 半島인 로마는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느냐는 반문에 대답할 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조선민족은 오랫동안 園藝農耕(원예농경)을 생업으로 삼아 耕作地(경작지)를 떠나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에 停滯性(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고 있는데, 그런 주장도, 그러면 똑같이 園藝農耕을 생업으로 한 中國(중국)의 漢(한)은, 唐(당)은, 明(명)은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사실상 아시아 대륙 전체를 호령했느냐고 되물으면 그에 대한 답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또 조선인들은 수백 년 동안 黨爭(당쟁)을 일삼은 데서 볼 수 있듯이 힘을 합쳐 일할 능력이 없어 누군가에게 의지해 살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것도 억지소리인 것이, 세계 역사상 政爭(정쟁)이 없었던 나라는 없다. 그들만 해도 15세기 중반부터 100년 넘는 세월을 서로 죽이고 죽는 세월을 보내지 않았던가. 어쨌든 그들은 그러한 논리로 조선은 자립할 능력이 없어 그들의 식민통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여섯 살 때 해방을 맞았다. 그러므로 식민지 시대를 체험한 세대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보다 6~7세 나이 많은,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수 세대의 의식 차이 같은 것을 자주 느꼈다.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 뒤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걸핏하면 “우리 엽전들이 할 수 있나…”, “우리 같은 조센진 하는 일이 그렇지 뭐…” 하는 自己卑下(자기비하)의 말을 뱉곤 했다.

그것이야말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노예교육을 받은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시대에 초등교육만 받고 그 이상의 교육은 받지 못한 사람들 만이라면 또 어느 정도 그렇구나 하겠는데, 해방 후에 독립된 나라 大韓民國(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마저 그런 노예근성 같은 것을 보이는 데는 어이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는 반대로 나라 없는 세월을 산 것을 무슨 자랑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학에 근무할 때 나보다 6~7세 이상 나이 많은 교수라는 사람들이 그랬다. 그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지 않은, 내 또래 나이 이하의 젊은 교수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수시로 자기들끼리 일본말로 주고받고 하는 것이었다. 엿듣기가 鄙陋(비루)한 짓으로 치부되듯, 귓속말도 바람직한 것일 수 없다. 우리는 청문회나 국회에서의 질의응답 때 귓속말을 하는 것을 흔히 보아 왔다. 또 야구 경기 중 포수와 투수가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말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히 본다.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일반 좌중에서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점잖은 짓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들어도 모를 테니까…’ 하는 식의 그와 같은, 그들만의 대화는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한 기분, 외면당한 기분, 무시당한 기분이 들게 해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 시대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일제의 우리 말, 글을 말살하기 위한 교육은 지독한 것이었다 한다. 아직 코흘리개 小學校(소학교) 어린것들에게 소변이 마렵다는 말을 조선말로 하면 화장실에 보내주지 않아 옷에 오줌을 싸는 일이 흔했다 한다. 또 애들에게 딱지를 몇 장씩 나누어 주고는 무심코 조선말을 할 때마다 서로 한 장씩을 뺏게 해 뺏긴 애는 울음을 터뜨리고, 그러다 보니 그 無垢(무구)한 애들이 서로 얼굴을 대하려 하지 않는 일까지 있었다 한다.

그러니 일제시대에 교육 받은 사람들의 일본말은 그들이 무슨 學究熱(학구열)을 가지고 학문으로 배운 것이 아니고 노예를 만들기 위해서 한 교육으로 배운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말을 그렇게 배운 것에 부끄러움이나 치욕을 느끼기는커녕 그 시대를 산 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양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아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우리는 자랑스러운 大日本帝國(대일본제국), 皇國(황국)의 臣民(신민)’이라는 교육을 받은 결과인 것 같았다.

지금의 日本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 서로 손을 잡고 내일을 살아가야 할 友邦(우방)이다. 그러니까 그런 지난 일 이야기할 것은 없다. 또 위에서 말한, 실망스런, 나이 많은 사람들도 모두 사회생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교육이, 특히 역사교육이 잘못 되면 사람을 그릇되게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從北(종북)이니 親北(친북)이니 하는 사람들이 발붙일 곳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역사교과서 바로잡기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2014-01-09, 11: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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