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半生(반생)에 들은 이야기들
거의가 슬프고 아픈 것들이었지만…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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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특히 내 직업이 그렇고 해서,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았다. 되돌아보니 사람 산다는 일이 본래 그런 것이라 그런지 그, 들은 이야기들이, 즐겁고 유쾌했던 것보다는 슬프고 아픈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여기 그 중에서도 특히 잊어지지 않는 것 몇 토막을 소개할까 한다.

아빠하고 나하고…
다음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둘째 애가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어느 날 제 어머니와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이 노래 하다가 고○○(제 친구 이름) 울었다.”
“왜?”
“지거 아빠 없어서―.”
“지거 아빠 왜 없노?”
“몰라. 실쫑(실종)됐단다. 지거 아빠, 외앙선(외항선) 타다가 실쫑됐단다. 실쫑이 뭐꼬? 죽었단 말이가?”
“죽은 거나 같다.”
“그 애 집 되기 가난하다. 그래 지거 형, 배 탈라고 하는데 지거 엄마가 기어 배는 타지 말라고 해서 목욕탕 시다했는데, 돈도 얼마 못 받고 더러워서 못 하겠다 하면서 기어이 배 타고 나갔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나는 그, <꽃밭에서> 노래만 들으면 그 애 가족 일 생각이 나서 마음이 처연해진다. 아, 생의 고단함이여, 삶의 가파름이여!

“내 신, 내 신!”
다음은 어느 날 누군지 모르는 여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 할아버지, 이북 사람인데 삼팔선 넘어오다가 부인하고 헤어지고 재혼해서 산단다.”
“어쩌다가 헤어졌는고?”
“해방 직후에 그 사람들 가족이 밤중에 숨어서 삼팔선을 넘어오는데 부인이 신발이 벗어졌던 모양이지? 그때는 신이 옳나. 고무신 끌고 그 험한 산길 오자 하니 벗어질밖에. 그래, 여자가 ‘내 신, 내신!’ 하고 있는데 시동생이 형한테 ‘형수 신발 잃어버렸답니다.’ 했단다. 그때 남편이 ‘그냥 가자. 그냥 가자.’ 했던 모양이지? 그 말을 그 여자가 들어 버린 거라.”
“그래서?”
“그래, 삼팔선을 넘어와서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더래.”
“길이 어긋났을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 게 아니더래. 세월이 좀 지나서 그 여자가 평택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시동생이 찾아갔던 모양이지? 찾기는 찾았는데, 어떤 장애인하고 살고 있더란다. 그래, 시동생이 ‘형수요―’ 하고 불렀더니 한 번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고 끝내 아무 말도 안 하더란다.”

인간이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그 아픔이 얼마나 깊고 큰가를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밑도 끝도 없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잊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성탄절 제 선물은 藥(약)을 좀…
그렇다고 내가 늘 그렇게 슬프거나 우울한 이야기만 듣고 산 것은 아니다. 집사람이 들려 준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었다.

“머리 좋은 애들은 어릴 때부터 뭔가 좀 다른가 봐요.”
“누구 이야기요?”
“내 친구 아들, 이번에 의과대학에 들어갔대요. 제 엄마는 자랑삼아서 가끔 그 애 어릴 때 이야기를 해요. 그 애 다섯 살 때 제 아버지하고 해운대해수욕장에 갔다가 애가 아빠 손을 놓쳐 버렸던 모양이지요. 한참 만에 찾았는데, 애 아버지가 보니까 ‘이―잉, 김성제(제 아버지 이름) ―, 이―잉, 김성제―’ 하면서 울고 다니더래요. 나중에 애도, 제 아버지도 마음이 진정된 다음, 아버지가 웃으면서 ‘너, 왜 아빠― 하고 안 찾고 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다녔느냐?’고 했더니 ‘오-온 전신에 모두 아빤데 아빠― 하면 찾을 수 있겠나?’ 하더래요.”

“이웃집 교감선생님 딸 혜영이, 이번에 서울 S대학에 들어갔어요. 그 애 엄마는 한 번씩 그 애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를 해 놓고는 목이 메곤 해요. 그 해 성탄 무렵, 산타할아버지가 실제로 있는 줄 알고 있는 애에게 선물을 사 주려고 ‘너는 산타 할아버지가 이번 성탄절에 무엇을 주었으면 좋겠니?’ 하고 물어 보았대요. 그랬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허리 낫는 약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래요. 당시 부인이 腰痛(요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너무 가슴 아팠던 모양이지요?”

[ 2014-02-10, 17: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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