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수박을 먹으면서 들은 幻聽(환청)
철 아닌 먹거리는 하늘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지―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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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말년에 살아가는 樂(낙) 하나가 없어졌다고 탄식을 하더라 한다. 무엇을 먹어 보아도 맛있는 음식이 없더라는 것이다. 절대권력자가 무엇을 좋아한다 싶으면 아첨꾼들이 계속 갖다 바치다 보니 미각세포가 피로를 느껴 음식 맛을 모르게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백면서생인 내가, 나이 쉰을 넘어가면서 무엇을 먹어도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 줄을 모르게 되었었다. 노년으로 접어드니 맛을 느끼는 감각세포가 무디어졌나, 너무 맛있는 것을 찾아 貪食(탐식)을 하다 보니 입이 갖아져서 그런가 했지만, 어쨌든 씁쓸한 기분이 들었었다. 나는 민물고기 湯類(탕류)를 참 좋아했는데, 장어국을 먹어 보아도 별맛을 모르겠고, 회라면 종류 불문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그 비싼 광어회를 먹어 보아도 그냥 무 씹는 맛이나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것이 반드시 내가 늙어서, 입이 까다로워져서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집사람이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았는데 거기에 차려진 추어탕을, 으레 덤덤한 그 맛이려니 하고 무심코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깜짝 놀랐다. 벌써 30 년도 전, 10대 소년 시절에 먹던 그 맛이 그대로 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추어탕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집사람은, 이웃에 사는 새댁이 시골 친정에 갔다가 논도랑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와 맛이나 보라면서 주어 그것으로 끓인 것이라 한다. 그래, 그랬구나. 그때까지 내가 도시에 나와서 먹은 추어탕은 사료를 먹여 키운 양식 미꾸라지로 끓인 것이었고, 그리니 옛날의 그 맛이 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시골 친척집에 갔을 때 그 집에서 생선회를 내놓아 한 젓가락 집어 먹어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거기서 다시,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 옛날의 생선회 맛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고 그 맛의 비밀을 내 스스로 알아냈다. 문제는 생선보다 초장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누구나 식초를 집에서 일구어 먹었다. 어머니는, 먹다 시어 버린 막걸리 병에 집에 있던 식초 씨를 부어 컴컴한 살강 한쪽 구석에 두고는, 부엌에 들어가고 나오며 수시로 그 씨가 잘 살아나라고 “니캉 살자, 내캉 살자” 하면서 그 병을 흔들었다. 그렇게 하여 일군 식초를 붓고 만든 초장은 은근한 향이 나면서 매움하면서도 시큼하고 들큼한 맛이 그렇게 깊었다.

내가 도시에 나와서 먹어 온 초장은 거의 모두 화학제품 식초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날 그 집에서 내놓은 초장은 우리의 전통 방식으로 일군 식초로 만든 초장이었고, 내 혀는 단번에 그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 그대로의 식품 맛은 모두 그대로 살아 있었는데 그것을 먹지 못 하고 인공으로 만들고, 키우고, 가공한 음식을 먹으면서 내 몸이 거기에 역정을 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또 한 가지, 비닐하우스 재배 기술 등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채소며 과일을 먹고 있는 것도 내 입맛을 버려놓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한 번씩 겨울에, 후식으로 나온 수박이니 딸기 같은 것을 먹다가 까닭 없이 찔끔 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내 머리 저 위에서 그것을 먹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너희들 정말 이렇게 살 거야?” 하는, 怒氣(노기) 띤 목소리의 幻聽(환청)을 듣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른 봄이면 갓 돋아난 냉이를 캐어 그 향긋한 나물 맛을 보고, 달래를 캐어 보글보글 된장을 지져 먹고, 여름이면 남새밭 울타리에 열린 오이를 따 와, 시원한 챗국을 채워 먹고, 가을이면 배추쌈을 먹고…. 또 겨울이면 소매를 둥둥 걷고, 움에 묻어 두었던 무며 고구마를 꺼내 와 먹는 것이 본래의 우리네 삶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나는 한 번씩, 한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사라져 가는 먹거리에 대단 아쉬움을 가지고, 또 새 계절에 나올 채소며 과일 맛을 볼 기대를 가지고 살던 그 때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불 지피고 비닐 지붕 씌워서 키운 철 아닌 채소며 과일을 먹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하늘의 섭리를 어기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遺傳子(유전자) 操作(조작) 식품 이야기 같은 것을 들으면 두려움이 더 커진다. 遺傳子 操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糖度(당도)가 높은 과일을 생산해 사람들 입맛을 돋워 줄 수 있고 해충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 식량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그런 식품은 당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수 년, 수십 년 뒤, 또는 다음 세대에 가서 어떤 끔찍스런 재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소심한 탓일까, 필자 역시 께름칙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 遺傳子 操作으로 뿌리에는 감자가 맺고 줄기에는 토마토가 열리는 소위 ‘토감’ 생산도 가능하다는데……. 글쎄, 예로부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했는데, 이건 좀 심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2014-02-21, 10: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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