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바뀌고 얼굴도 바뀌고…
인간에 미치는 職業(직업)의 영향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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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읽은 것인데, 한 신문에 재미있는 토픽 한 토막이 실려 있었다. 英國(영국) 어디선가의 일로, 한 나이 든 형사가 도망치는 범법자를 뒤쫓아 달려가 붙잡았는데 그, 붙들린 사람의 신원을 확인해 보니 바로 얼마 전의, 올림픽 단거리 금메달리스트더라는 것이다. 경찰관의 직업의식이, 달리기와는 별 인연도 없는 한 중년 남자로 하여금 달아나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내를 따라가 붙들게 한 것이다.
  
  그 기사가 아니어도 나는 직업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무엇보다 직업은 여러 면에서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희한한 것이, 직업에 따라 나날의 日常(일상)이 달라지니 밤에 꾸는 꿈도 달라졌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소년시절부터의 꿈이던 신문기자가 되었다.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라고 그랬든지, 회사에서는 나에게 사건 현장 취재를 자주 시켰다. 그때는 그런 일에 호기심도 있었고 또 그것이 나의 밥벌이였는 데다, 기질 상 남한테 지고는 못 사는 성미라 밤잠까지 설쳐가면서 그 일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보니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사건 전문 기자’, 그것도 ‘강력사건 전문 기자’가 되어 있었다. 그 후로는 살인·강도·방화와 같은 끔찍스런 범죄 현장이 아니면 배 침몰·버스 추락·열차 탈선 같은 참혹한 사고 현장이 나의 주된 일터가 되어 버렸다. 당시에는 꿈을 꾸면 거기서 보는 것도 주로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소리,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어지럽고, 서로 쫓고 쫓기고 죽고 죽이는 살벌한 현장이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그때는 내 얼굴에 무슨,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우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매일 대하는 일이 대부분 그런 사건이니 그것을 보는 내 마음 역시 편할 라야 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또 한 가지 당시, 내가 한 일에서 괴로움을 느낀 것은, 그 직업의 성격상 세상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내야 하고, 나 자신이 반듯하게 살지도 못 하면서 남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살아가는 나날이 그러니 내 얼굴에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安穩(안온) 같은 것은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마흔을 갓 넘어선 나이에 갑작스레 그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에 들어선 것이 선생직업이다. 처음 대학교단에 선 얼마 동안의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상에, 그 전에 내가 살던 세계의 바로 담 너머에 달라도 이렇게 다른 세계가 있었다니…. 매일 눈 뜨고 출근하면 보기만 해도 믿음직한 청년들, 꽃 같은 처녀들 속에 둘러싸여 사니 낙원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나날을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문득, 나의 꿈이 지난날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하고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로 오고 나서 꾼 꿈에는 더 이상 지난날과 같은 그, 죽었느니 살았느니 하는 이야기도 없었고 소방차 소리도, 구급차 소리도, 사람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서게 하는 사이렌이며 호루라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른한 봄밤 꿈에도, 비 내리는 가을밤 꿈에도 나는 거의 언제나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거나 書架(서가) 앞에서 책을 뽑았다, 꽂았다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학교로 온 후의 나는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낙원을 逍遙(소요)하고 있은 셈이다.
  
  매일의 삶이 그렇게 바뀌니 어느 새 나의 모습도 바뀐 모양이었다. 하루는 (부산) 西面(서면)에서 택시를 세워 타고, 伽倻洞(가야동) 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운전사가 힐끗 내 얼굴을 한 번 돌아보더니 “東義大學(동의대학) 가십니까?” 한다. 그래,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렇게 보이네요” 한다. 그때는 그래도 내가 가자고 한 곳과 학교가 있는 곳이 일치하니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후 어느 날 시청 부근에서의 경우는 그것도 아닌데 기가 막히게 나의 직업을 알아맞히는 운전사가 있었다.
  
  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한 대에 타려고 하니까, 그 차의 운전사가 나를 한 번 빤히 바라보더니 혼잣말로 “오늘 오후에는 대학교수 한 분을 모시는 구나…” 라고 했다. 어디, 대학 있는 쪽으로 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책이나 가방 같은, 선생으로 보일만한 물건을 든 것도 아닌데. 그래, 이상해서 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모른다고 하면서 “내, 택시 운전 15년째 하는데요, 다 냄새가 납니다”라고 했다. 20년 가까운, 선생이라는 나의 직업이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던가 보았다. 그 일로 해서, 나는 그날은 물론 며칠을 기분이 좋았다.
[ 2014-04-12, 23: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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