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珠(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것들이…
못난 윗사람 만남 - 끔찍스런 災殃(재앙)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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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람들이 한, ‘萬事(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자꾸 끄집어내는 것 같기는 한데 - 《莊子(장자)》에는 그런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다음과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毛嬙(모장)과 麗姬(여희)는 보기 드문 미인으로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물고기는 그녀들을 보면 겁내어 숨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으며, 사슴은 숲 속으로 도망갔다(‘齋物論’·재물론). 학의 다리는 긴 것 같지만 그것은 사람이 보기에 그러할 뿐이다. 그 다리를 자르면 학은 슬퍼할 것이다(‘변무’). 魯(노) 나라 교외에 진귀한 바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자 그 나라 제후들이 吉兆(길조)라 하여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온갖 귀한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간이 좋아하는 그런 환영에, 새는 불안을 느껴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떨고 있다가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至樂’ ․ 지락).
  
  또 그 책에 나오는 소위 ‘有用無用論(유용무용론)’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이 걸어갈 때 밟는 땅은 발바닥의 넓이 만큼이다. 따라서 나머지 땅은 소용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발이 밟는 넓이만큼의 땅만 남겨 두고 그 둘레를 깊이 파내 버리면 사람은 서 있을 수도, 걸어갈 수도 없다(‘外物’ ․ 외물).
  그 밖에도 그런 유의 이야기는 市井(시정)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릇’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圖工(도공)이 흙을 이기고 물레를 돌려 대접을 만드는데 일견, 우리가 쓰는 것은 그 흙으로 만든 물체인 것 같지만 실제로 쓰이는 곳은 그 그릇의,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다.
  
  위에서 말한,《莊子》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 등은 철학에 있어서의 대상에 대한 認識(인식)의 문제 같은 성격을 띤 것으로 내게는 어려운 이야기라 이쯤에서 그치겠다. 그 대신 그와 약간 연관이 있는, 세상사에 대해 몇 마디 했으면 한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누가, 그를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는 수가 있다. 여기서는 그 예로, 흔히 朝鮮朝(조선조)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南怡(남이) 將軍(장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 나라가 앞으로의 國防(국방)을 책임질 將帥(장수)가 될 사람을 뽑는 시험이 武科(무과) 科擧(과거)이니 거기에 합격했다 하면 그가 그 방면의 특출한 인재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南怡는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인물이 분명했던 것 같다. 먼저 登科(등과)한 나이부터가 그렇다. 1441년생인 그는 1457년, 만 16세의 나이로 武科에 급제를 했다. 빨라도 여간 빠른 나이가 아니라 할 것이다. 李施愛(이시애)의 난 때 그는 몸에 4-5 개의 화살을 맞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적진으로 돌진해 적이 혼비백산, 敗走(패주)한 적도 있다 한다.
  
  그런 인재이니 世祖(세조)는 그를 중용해 스물일곱 살에 兵曹判書(병조판서)를 시켰다. 그러나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世祖가 세상을 떠나 버림으로서 그의 운명은 급전직하, 逆謀(역모)를 한 대역 죄인으로 四肢(사지)를 찢어 죽이는 車裂刑(거열형)을 받아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史家(사가)들은 그가 역적모의를 했다는 것은 韓明澮(한명회), 柳子光(유자광)같은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꾼들이 新王(신왕) 睿宗(예종) 치하에서의 그들의 권력을 굳히려고, 라이벌인 그를 제거하기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비극의 원인은 睿宗이라는 열여덟 살 난 젊은 왕의 피해망상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世祖와 같은 覇氣(패기)에 찬, 자신만만한 君王(군왕)은 南怡와 같은 인물을 보물과 같이 여겨 자신의 手足(수족)으로 쓴다. 그러나 睿宗과 같은 病弱(병약)한 왕은 그런 인물이 너무 두려워 하루도 편한 잠을 자지 못 했을 수 있다. 睿宗은 마침 그럴 때 그런 告變(고변)이 있자 그것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근심 걱정 불안의 소지를 아주 없애 버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世祖가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날 南怡를 判書에서 해임하고 한 달 뒤에 ‘逆謀가 있었다’는 한 마디에 혹독한 고문을 한 끝에 바로 처형한, 마치 무슨 불에 덴 사람같이 한 일 처리에서도 그런 면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임진왜란 때 宣祖(선조)가 순전히 피해망상에서, 南怡와 거의 같은 나이의 (29세) 젊은 猛將(맹장) 金德齡(김덕령)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逆賊이라 하여 고문을 해 죽인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한다. (두 將軍 다 후대 왕들이 그 조상 왕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官爵(관작)을 복구 시켜 준 데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南怡의 비극을 생각할 때 마다《聖經(성경)》의, ‘너희의 眞珠(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고 한 구절을 떠올린다. 睿宗은 南怡를 죽인 1년 뒤 죽었는데, 그가 한 治績(치적)은 몇 백 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一世(일세)의 將材(장재)를 죽인, 소위 ‘南怡 獄(옥)’ 이외에는 이렇다 할 아무 것도 없다.
  
[ 2014-04-13, 00: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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