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조선)의 로빈 훗 - 朴校理(박교리)
萬金(만금)을 빼앗긴 피해자도 반한 紳士强盜(신사강도)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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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治(법치)의 시민사회에서는 義賊(의적)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1980년대 초 한때 高官(고관)의 집에 숨어들어 고가의 물방울 다이아몬든가 하는 것을 훔친 趙(조) 아무개라는 사람을 大盜(대도)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준 義賊이라 하여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는 어떤 救貧(구빈)을 한 적도 없는 단순한 財産犯(재산범)으로 그, 財産犯 중에서도 가장 파렴치한 竊盜(절도)라는 雜犯(잡범)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났었다. 모든 것은 당시 언론의 과장, 호들갑이 만든 허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王朝時代(왕조시대)에는 문제가 달랐다. 그 시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부리고 짓밟은 세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피지배계급은 끊임없이 통치체제에 항거했는데 그때에 민중의 영웅, 義賊들이 활동하여 그들의 한을 풀어주었었다.
  그래서 英國(영국)은 <로빈 훗> 傳說(전설), 獨逸(독일)은 실러의 戱曲(희곡) <群盜(군도)>, 中國(중국)은 施耐庵(시내암)의 小說(소설) <水滸誌(수호지)>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洪吉童(홍길동)이니, 田禹治(전우치)니, 一枝梅(일지매)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너무 귀에 익었고, 여기서는 閑談(한담) 삼아, 부패한 朝廷(조정)이 백성을 착취하던 朝鮮時代(조선시대)의, 서양에서 말하는 소위 紳士强盜(신사강도, noble robber) 이야기를 두어 자리 해 볼까 한다.
  
  張志淵(장지연)이 編(편)한 하층민들의 傳記(전기) 모음집 《逸士遺事(일사유사)》에는 <葛處士(갈처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이 奇人(기인)은,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칡덩굴[葛]로 지은 옷 한 벌로 지낸다 하여 그런 별칭으로 불렸다 한다.
  살길이 없어 떠돌던 그는 어느 날 길에서 도적떼를 만나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여러 郡邑(군읍)을 휩쓸고 다니면서 富豪家(부호가)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에서 자신을 붙들기 위해 무고한 백성들을 못 살게 구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官府(관부)로 찾아가 자신이 無慾(무욕), 無罪(무죄)한 사람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옷을 보시오. 겨울이나 여름이나 오직 이 칡덩굴 옷 한 벌밖에 없소. 떨어진 삿갓에 헌 짚신, 괴나리봇짐 하나에 지팡이 하나, 이것이 내 평생의 행색이오.”
  
  그리고는, 오늘날 온 나라에 도둑이 들끓는데,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도둑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진정한 도둑은 위로 大官(대관)과 아래로 그들에 붙어사는 胥吏(서리)들이라고 한다. 곧 朝廷의 大官·監司(감사)·兵使(병사)·守令(수령)들이야말로 임금의 눈을 가려 권세를 훔쳐 백성을 등쳐먹는 도적들이라고 한다. 이어 그는 자기와 같은 사람은 그러한, 권력을 쥔 위에 있는 도둑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살 수 없게 만들어 그렇게 되었을 뿐 도둑이 아니라고 한다. 이에 그의 말을 다 들은 官은 아무리 해도 죄를 줄 명분을 찾지 못해 그를 방면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靑邱野談(청구야담)》 所載(소재) 한문단편 <語消長偸兒說富客(어소장투아설부객)>의 주인공도 멋쟁이 강도다. 嶺南(영남)의 한 큰 부잣집에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朴校理(박교리)라는 사람 일행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실은 강도단의 수괴고 그의 일행은 그의 부하, 도적떼다. 그는 주인을 만나 자신이 사실은 강도라고 하고, 財物(재물)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만 사람의 것이니 마음을 크게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는 무엇이든지 주인이 가장 아끼는 것이 있으면 말 하라고 한다. 주인이 700냥을 주고 산 청나귀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이라고 하자, 그는 그것은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런 다음 그는 부하들에게 한, 조용조용한 몇 마디 말로 그 집의 많은, 건장한 머슴들과 從(종)들을 간단히 제압해 버렸다. 그리고는, 온 집을 뒤져 만금을 빼앗는다. 그는 담대하고 용의주도하며 민첩했다. 이 小說은 그들의 행동을 ‘형세가 풍우가 지나가 듯 하고 빠르기는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부녀자들에게 무례한 짓을 하거나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는 법도 없었다.
  
  朴校理 일행을 사칭한 강도단은 그렇게 재물을 강탈한 다음 썰물처럼 조용히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의외에도 청나귀가 없어져 있었다. 주인이, 君子(군자) 중의 君子라 할 그 사람이 스스로 약속한 말을 어길 리 없는데―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이튿날 그 나귀가 혼자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안장에는 ‘首領(수령)의 명을 예사로 듣고 나귀에 손을 댄’ 그 부하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뒤에 사람들이 그 富者(부자)에게 큰 失物(실물)을 한 일에 대해 위로하자, 그는 재물을 강탈당한 데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서로의 사이에 山川(산천)이 격해 있어 그런 호걸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한다. 巨金(거금)을 강탈당한 피해자가 그렇게 반할 정도였다니, 그는 진정 ‘멋쟁이 강도님’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 2014-04-15, 17: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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