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쓸어놓고 간 過客(과객)
고마워할 줄 모르는 요즘 世情(세정)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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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보면 내 자신부터 그렇겠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으로, 그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것도 드물 텐데 말이다.
  
  세계에는 어디에나 고마움을 표한 이야기, 은혜를 갚은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솝 寓話(우화)에 나오는 <생쥐와 사자>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어느 날 생쥐 한 마리가 실수로, 낮잠을 자고 있는 사자의 얼굴에 올라가는 바람에 사자가 잠을 깨어 버렸다. 생쥐는 잘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 주면 그 은혜는 꼭 갚겠다고 애걸했다. 사자는, 보잘것없는 생쥐 따위가 은혜를 갚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이 가소로웠지만 불쌍한 마음에 살려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자가 사람이 쳐 놓은 그물 덫에 걸려 꼼짝없이 죽게 되었는데, 이를 본 생쥐가 이빨로 그물을 찢어 사자를 구해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口傳童話(구전동화)의, 비둘기 한 마리가,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에게 나뭇잎을 던져 주어 구해주었더니 뒤에 그 개미가 비둘기를 쏘려 하고 있는 포수의 발등을 물어 총알이 빗나가게 해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先人(선인)들 만큼 은혜 갚은 이야기를 많이 남기고 있는 민족도 드물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口碑(구비), 文獻說話集(문헌설화집)들에는 수없이 많은 報恩(보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李源命(이원명)이 編(편)한 《東野彙輯(동야휘집)》이다. 흔히 朝鮮(조선) 후기 3대 說話集(설화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책에는 모두 206편의 說話가 실려 있는데 그 중 10분의 1이 넘는 23편이 報恩이야기이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신세를 졌으면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의 報恩 이야기들 중에는 그, 은혜 갚기를 큰 재물로 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런 물질적인 면을 떠나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많은데, 내게는 그런 경우가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다. 유럽에 전해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한 청년이 자기 나라에 쳐들어 온 적을 맞아 싸우다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얼마인지 시간이 흐른 후 정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자신을 정성을 다 해 치료를 해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상처가 아물고 기력을 회복한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가기 전에 그녀에게 무엇인가로 고마움을 표하려 했지만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길섶에 피어 있는 네잎클로버를 꺾어 그녀에게 주었다 한다.
  
  여기서 내가 직접 경험한, 그런 감사한 마음의 표시에 대한 이야기를 한 토막 할까 한다. 6·25 사변이 나고는 아주 없어졌는데, 나의 유년시절까지만 해도 過客(과객)이 있었다. 며칠이 걸리는 먼 길을 나서는 사람은, 언제 출발해서 어디쯤에서 中火(중화·길 가다 먹는 점심)하고 어디쯤에서 客店(객점)에 들거나 아는 사람의 집을 찾아 잔다는 식으로, 미리 꼼꼼하게 일정을 짰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해同甲(동갑)’이라 하여, 해가 질 무렵에 그날 묵을 곳에 도착하게 되면 그날 길은 잘 걸은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거나 나루를 건너려는데 사공이 자리를 비워 지체를 하게 되는 등의, 예기치 못한 일로 때에 따라 일정이 어긋나 路中(노중)에 해가 져 버리는 수가 있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그 마을의, 사랑채가 있고 얼핏 보아 볏섬이나 거두는 것으로 보이는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러한 청은 받아들여지고 주인집에서는 반찬이 있거나 없거나, 따로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그들 가족이 먹는 대로 저녁상을 보아준다. 그렇게 하여 그 집에서 먹고, 자고 가는 낯선 길손이 過客이다.
  
  나는 내 나이 여덟 살 때든가— 우리 집에 묵어 간 그런 길손을 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에 過客이 들었다는 어른들의 말에 어린이 특유의 호기심이 일어났으나 사랑 근처에 얼른거려서는 안 된다는 바람에 나는 그 길손이 어떤 사람인지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 손님은 어느 새 가고 없었다. 아마, 주인집 사람을 깨워 번거롭게 하지 않고 새벽 일찍 일어나 가 버리는 것이 그 사람들의 관습이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손님은 우리 집 마당을, 대빗자루로 깨끗이 쓸어 놓았었다. 댓가지 자국이 남은 그, 티 하나 없는 아침 마당의 청결한 이미지는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길손은, 하룻밤 신세진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표하고 떠났던 것이다.
  세상이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것일까?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일이, 마치 수백 년 전의 무슨 傳說(전설)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웬 까닭일까.
[ 2014-04-16, 10: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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