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作家(작가)의 아름다운 懺悔(참회)
모두들 변명하기에 바빴는데…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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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孔子(공자)는 《論語(논어)》에서, 그가 저지르는 過誤(과오)를 보면 그 사람이 어진 이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聖賢(성현)의 말씀이 다 그렇지만, 그 역시 새겨들을수록 진리라 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보니 사람이 자신의 過誤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일제시대에 친일행위를 한 몇 사람의 文人(문인)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보인 각각 다른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먼저 小說家(소설가) 春園(춘원) 李光洙(이광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는 장편 《無情(무정)》으로 이 나라 현대소설의 章(장)을 열고 1919년에는 군국주의 日本(일본)의 수도 東京(동경)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학생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바 있다. 그 후에도 그는 中國(중국)으로 건너가 上海臨時政府(상해임시정부)의 기관지 『獨立新聞(독립신문)』에 많은, 우국충정이 넘치는 글을 쓴 바 있는 민족의 선각자요 애국지사였다. 그러나 그는 1921년을 경계로 變節(변절)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해, 온 민족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그는 해방 후에 보인 태도에서 우리에게 더욱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는 나라에서 친일인사의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모든 재산을 부인 이름으로 이전한 다음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있으면서, 서류상 이혼을 하는 잔꾀를 썼다. 또 反民特委(반민특위)에 불려갔을 때 왜 친일행위를 했느냐는 조사관의 물음에 그는, 아무래도 日本이 세계적인 강국이 될 것 같아서 자기라도 日本과 친해서 이 민족을 구하려고,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판 심청이와 같은 심정으로 한 일’이라고 해 사람들의 울분을 돋우기도 했다. 그도 사람이니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뉘우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을 괴상한 변명을 늘어놓아 사람들의 부아를 돋우어 놓았으니, 그로 하여 그는 그 전의 잘 한 일도 잊어지게 되고 조금의 동정도 받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와 조금 다른 경우의 小說家가 尙虛(상허) 李泰俊(이태준)이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사회비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小說을 쓴 존경 받는 작가였다. 그가 당시에 발표한, 단편 <꽃나무는 심어 놓고>는 日本의 한국인을 상대로 한 소작료 착취를, <실낙원 이야기>는 한국 지식인에 대한 탄압을 다룬 뛰어난 小說들이다.

해방이 되자 그는 어떤 문인들의 회합에서 한, 표가 나게 친일행위를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런 자가 있으면 나는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고 면박을 주었다 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은 흠 없이 산, 민족의식을 가진 지조 있는 작가였음을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곧 그 역시 그런 일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비난할 형편이 못 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친일행위를 했음이 드러났다. 그가 1939년에 발표한 단편 <農軍(농군)>은 日本人(일본인)들을 한반도에 옮겨 살게 하기 위해 한국의 농민들을 滿洲(만주)로 내쫓으려 한 일제의 정책을 선전한 소설이다. 그 小說은 滿洲를, 거기에 가기만 하면 배부르게 먹고 잘 살 수 있는 樂土(낙토)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곳은 우리 移住(이주) 동포들이 매일 馬賊(마적)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고 있은 지옥이었다. 작가는 이 小說 발표 1년 전 그곳을 다녀와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日本人들의 使嗾(사주)로, 그런 거짓된 글을 쓴 것이다. 만약, 日本人들의 핍박에 견디기 힘들어 하고 있던 우리 동포 중 단 한 가족이라도 그의 말에 속아 그곳으로 갔다면, 그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씻을 수 없는 積惡(적악)을 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같은 친일행위를 하고도, 앞에서 말한 그들과는 너무 다른 태도를 보인 한 潔癖(결벽)한 작가가 있으니 白菱(백릉) 蔡萬植(채만식)이 그 사람이다. 1930년대 중반까지의 그는 가히 민족주의 문학이라 할 만한, 抗日的(항일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의 장편 <太平天下(태평천하)>, 단편 <痴叔(치숙)> 등은 일제시대란 가치 전도된, 반역사적, 반인도적인 세계를 풍자, 비판한 뛰어난 小說들이다. 그러던 그가 1930년대 말부터 學兵(학병)을 권유하는 강연을 하는가 하면 <女人戰記(여인전기)>와 같은, 內鮮一體(내선일체)를 강조하는 親日御用(친일어용) 小說을 썼다.

그는 해방이 된 얼마 후 <民族(민족)의 罪人(죄인)>이라는 중편을 발표했다. 그는 그 小說에서 일제시대에 한 자신의 친일행위를 낱낱이 고백하고 스스로 자신을 민족 앞의 죄인이라고 하고 있다. 일제 치하에 친일행위를 한 작가는 적지 않지만 그와 같은, 진정에서 쓴 懺悔(참회)의 小說은 그 작품이 유일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 작가가 그 小說의 후반에서 한, 짤막한 자기변명은 조금도 거부감을 부르지 않는, 공감이 가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 ‘나도 그런 짓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재주라고는 글 쓰는 것밖에 없는데 내게 맡겨진 8순 노모와 妻子(처자) 등 여덟 식구가 먹고 살려 하다 보니 죽도 살도 못해서 한 짓이었다’고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일에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李光洙와 같이 말재간을 잘 부리는 것도, 李泰俊이 한 것처럼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자신은 빠져 나오려고 잽싸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蔡萬植이 보여준 것과 같은, 그 사람의 眞情性(진정성)이 아닌가 싶다.

[ 2014-04-18, 16: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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