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 마나…
예술이 딴 목적을 가지면 감동은 사라진다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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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정부가 남북 분단 후 북으로 간 문인과 그 작품에 대한 출판, 연구 금지조치를 해제했을 때 나는 서둘러 내 전공분야인 해당 소설작품들을 구해서 읽어 보았다. 그런데 거기서 맛본 것은, 한 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소위 프로문학이라고 한 소설들에는, 洪命憙(홍명희)의 《林巨正(임거정)》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예 문학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조차 없었다. 1927년에 발표된, 한국 프로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해 온 趙明熙(조명희)의 단편 <洛東江(낙동강)>은 失笑(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하는, 한숨과 눈물, 콧물의 범벅으로, 1930~1940년대 無聲映畵(무성영화) 시대의 삼류 辯士(변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아, 몸에 소름이 돋으려 할 정도였다.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했다. 그 소설은 문학이라고 하면서 문학 외의 정치이데올로기 선전이라는 목적을 가졌고, 그것이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니 예술은 어딘가로 실종되어 버리고 신파조의 시끄러운 口號(구호)만 난무하게 된 것이다.
비단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문학이 예술이라는 그 순수성에서 이탈해 정치성이든, 도덕성이든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버리면 처음부터 상처를 입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몇 가지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어떤 분이 쓴 글을 보니 金相沃(김상옥) 선생의 時調(시조) <白磁賦(백자부)>에는 본래,

 /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風磬)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

라고 한 제2연이 있었는데, 그 제3행의,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라고 한 구절이 미성년자들에게 飮酒(음주) 衝動(충동)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하여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을 때 그 연을 빼어 버렸다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애들 베일까 걱정이 되어 집안에 부엌칼이며 과일칼을 두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난센스가 아니었나 한다.

문학평론가 柳宗鎬(유종호) 선생의, 한 편의 童謠(동요)에 관한 글도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 놓고 있다. 그는,

  /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 (이하 생략) —

이라는 <고추 먹고 맴맴>이라는 童謠가 있는데, 이 노래는 1932년까지만 해도 ‘달래 먹고’가 아니라 ‘담배 먹고’로 되어 있었다 한다. 그는 아마 누군가가 교육적인 차원에서 가사를 그렇게 고친 것 같다고 하면서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애들은 자랄 때 누구나 어른을 모방해 보고 싶고, 어른들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은 기어이 한 번 해 보고 싶은 不良衝動(불량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애들은 어른들이 없을 때, 땡초 고추도 한 번 먹어 보고 매워서 어쩔 줄 모르고 방안을 뱅뱅 돌기도 하고, 담배도 한 번 뻐끔 빨아 보고 머리가 피잉 돌리면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비틀비틀 맴을 돌기도 하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 우리의 웃음을 자아내는 애들의 그러한, 귀여운 모습을 그려보면 됐지, 그 이상 무슨 엉뚱한 걱정 같은 것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다.

柳宗鎬 선생은 또 한 편의 童謠 <감자꽃>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노래는 권태응이라는 분이 지은 것으로,

/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

라 한 것이다. 그는 이 노래를, 시인이 일제강점기의 創氏改名(창씨개명)을 諷諭(풍유)한 것이라고 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그릇된 접근, 억지 해석이라고 했다. 역시 옳은 주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쓴 글에 보니 이 노래 속의 ‘하얀감자’는 한민족을 상징하고 ‘자주감자’는 일제를 상징한다면서, 그러므로 이는 우리 민족의 ‘존재의 正體性(정체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하고 있었다. 권태응 선생은 항일비밀결사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다 감옥살이를 하기도 한 독립투사이다. 아마 그래서 그런 해석이 나온 것 같은데, 이는 어떤 문학작품의 해석을 그 작가의 生(생)과 억지로 연관을 짓는, 이른바 還元主義(환원주의·reductionism)의 모순이라 해야 할 것이다.

朴木月(박목월) 시인의 童詩(동시)에

 / 물새는 물새라서 물새알 낳고, 산새는 산새라서 산새알 낳고 /

하는, <물새알 산새알>이라는 노래가 있다. <감자꽃> 역시 그런 노래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거기에 그렇게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그냥, ‘흰꽃 핀 것은 파 보면 꼭 흰감자가 나오고, 자주꽃 핀 것은 파 보면 반드시 자주감자가 나오고— 거참 희한하다 —’ 하는 자연에의 神秘感(신비감), 驚異感(경이감)을 노래한 것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또 그것으로 됐지 않은가.

[ 2014-04-21, 15: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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