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論語》 내 식으로 읽기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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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9년 잘 알지도 못 하면서 《論語(논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 당시 어떤 대학의 한문학을 전공한다는 한 교수가 쓴 책, 《孔子(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나는 일부러 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선 그 제목부터가 나에게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었다. 일찍이 高麗(고려)의 대문장 李奎報(이규보)는 글을 쓸 때에는 경계해야 할 아홉 가지가 있다고 하고, 그것을 ‘九不宜體(구불의체)’라고 했다. 그 중 한 가지가 ‘凌犯尊貴體(능범존귀체)’, 곧 尊貴한 것을 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책의 著者(저자)는 명색이 동양학 학자라면서 世人(세인)의 이목을 끌기 위해 ‘죽어야 한다’느니 하는 천하고 상스러운 말로, 2000여 년, 동양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온 孔子라는 賢人(현인)을 고의로 凌蔑(능멸)하고 있은 것이다.

그럴 경우 孔子는 《論語》 「顔淵·안연」편에서 ‘君子四勿(군자사물)’이라 하여 ‘禮(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고 했다. 나는 著者의 그와 같은 ‘非禮’를 그 말에 따라 무시하고, 내 나름으로 孔子를 그렇게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論語》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아무 두서없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나는 《論語》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 그러니 한 初心(초심) 독자의 독후감쯤으로 생각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孔子는 몸에 밴, 그 흐트러짐 없는 삶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그는 때가 아니면 먹지 않고 설익거나 반듯하게 썰지 않은 것, 간이 맞지 않은 것도 먹지 않았다 한다. (「鄕黨·향당」편)
또 그의 검박한 生(생)도 후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 왔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樂(낙)은 역시 그 가운데에 있더라(飯蔬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반소사 음수 곡굉이침지 낙역기중의, 「述而·술이」편) 한 데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論語》를 읽으면 그가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憲問·헌문」편의, ‘가난하면 세상, 사람을 원망하지 않기가 어렵다(貧而無怨難·빈이무원난)’고 한 구절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집안 잔치 같은 때에 마지막에 가서 생트집을 잡아 자리를 난장판을 만들곤 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못 사는 친척이라는 것을 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論語》에서 발견되는 것은 철저한 人本思想(인본사상)이다. 「子路·자로」편에 보면, 葉公(섭공)이, 우리 고을에 곧은(直躬·직궁)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 아버지가 남의 羊(양)을 훔치자 官(관)에 고발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孔子는 우리 고을 곧은 사람은 그런 경우, 아버지는 아들을 숨겨 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준다고 했다. 이는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곡을 찔러 말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孔子의 성품 중 참으로 존경할 만한 것 중의 하나는 조금도 가식이 없이 솔직하다는 것이다. 季路(계로)가 죽음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보통의 스승 같으면 무슨 模糊(모호)한 말로 호도하여 아는 척하기 일쑤겠지만 그는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미지생 언지사, 「先進·선진」편」)이라고 하고 있다. 「先進」편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도 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顔淵이 죽었을 때 그 아버지는 孔子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잘 알아, 孔子에게 당신의 마차를 팔아서 그 아들의 棺(관)을 이중으로 된 것으로 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孔子는 그의 무례에 대해 “잘 났든 못 났든, 사람에게는 제 자식이 귀한 법이다. 내 아들 鯉(이)가 죽었을 때에도 그렇게 해 주지 못하고 한 겹 棺을 썼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인간됨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흔히 儒學(유학)을 空理空論(공리공론)의 학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뒷사람들의 잘못이고 그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里仁·이인」편에서 ‘옛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해서였다’고 한 말이나, ‘君子는 말은 더디나 실천에는 민첩하다(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군자 욕눌어언 이민어행)’고 한 말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또 儒敎가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虛禮虛飾(허례허식)에 빠져 있다고들 하는데 그 역시 後世人(후세인)들의 잘못이다. 孔子는 곳곳에서 그것을 경계하고 있다. 「陽貨」편의 ‘禮, 禮 하지만 儀式(의식)만 갖추는 것이 禮가 아니다(禮云, 禮云 玉帛云乎哉·예운 예운 옥백운호재)’고 한 구절도, 겉모양 보다 그 마음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孔子에 대한 겉똑똑이 지식인들의 가장 큰 陰害(음해)는 그가 민중을 등진 비겁한 勤王主義者(근왕주의자)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큰 거리가 있는 말이다. 《論語》는 「學而·학이」편 등에서 왕은 ‘백성을 사랑해 재정을 절약해야 한다. 또 백성을 동원할 때는 그 때를 가려야 한다.(節用而愛人 使國民以時·절용이애인 사국민이시)’라고 해 왕이 지켜야 할 도리를 거듭 강조하고 있을 뿐, 어디서도 백성의 충성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 2014-05-07, 15: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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