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難解(난해)하다는 소설 쉽게 읽기
프란츠 카프카 作 <변신>의 경우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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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보내기는 좋겠지만 대중·통속소설은 될수록 읽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소설은 사람을 賤俗(천속)하게 만드는 독소성(毒素性)을 가지고 있다. 대중·통속소설에는 정해진 어떤 類型(유형)이 있다. 여주인공은 거의 모두 스물 몇 살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다. 마음씨도 그럴 수 없이 고운데 집이 가난하다. 그런데, 그녀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늑대형 사장이 늦은 시간까지 퇴근을 시켜 주지 않고 저녁 먹으러 가지고 한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런 소설을 자주 읽다 보면 예술성이 있는 소설은 지루하고 머리가 아프고, 그래서 자연 멀리하게 되고, 나중에는 담을 쌓게 된다.

문제는, 현대소설 중에 예술성은 뛰어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아 더욱 독자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소설에 대한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이제, 그런 작품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몇 마디 할까 한다. 미리 말하거니와, 좋은 小說 중에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難解小說(난해소설)’은 없다. 그렇게 알려져 있는 小說도 어렵다고, 처음부터 외면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전문 비평가의 도움을 받으면 이해할 수 있고, 거기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음을 물론이고 그런 小說이 풍기는 아름다운 향기를 즐길 수도 있다. 좋은 소설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해설서나 평문이 많으니 먼저 그런 글들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 難解小說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중편 <變身(변신)>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일반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變身>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평가 받고 있으면서, 또 難解한 소설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그 難解性에 대해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해석’만이 가능한 小說이라는 말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이 小說은 그 스토리부터가 기이하다. 한 회사의 외판사원 그레고르 자므자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보니 자신이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 甲蟲(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이 모두 놀라고, 특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은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보아 준다. 그러나 하루하루 날이 가자 주변은 싸늘하게 변해 간다. 그의 부모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그를 그의 방에 감금해 버린다. 어느 날 갑갑함을 견디다 못 한 그가 방 밖으로 나오려 하자 그의 아버지는 사과를 던져 그에게 심한 상처를 입힌다. 나중에는 그의 누이마저 “이제는 저것을 없애야 한다”고 한다. 결국 그는 상처를 입은 데다 아무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죽고 만다. 그의 시체는 가족이 손대기 싫어해 하녀가 연탄집게로 찍어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 이튿날 그의 부모와 누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외로 소풍을 나간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세계의 많은 비평가들의, 무수한 연구 논문들이 나와 있다. 여기서는 그 중 특히 우리가 귀 기울일 만한 몇 가지 학설을 소개하겠다.

첫째는 이 소설이 현대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斷絶(단절)과 거기서 오는 비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설이다. 곧, 가장 아름답고 애정 어린 것 같은 인간관계도 사실은 있지도 않은 迷妄(미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와 가족을 부양하고 누이를 음악대학에 보내주기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하고 있을 때의 그레고르는 가족으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 도움도 주지 못 하는, 귀찮은 짐이 되자 가족은 얼음처럼 차게 변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데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이 소설이, 현대사회가 인간을 기계의 부속,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이때의 기계는 ‘직업’을 의미한다. <變身>에서 주인공은 직업을 통해서 이 ‘세계’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긋지긋한 그 회사에의 얽매임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이 ‘세계의 율법’을 어기는 大罪(대죄)다. 그래서 그는 그 懲罰(징벌)을 받아 벌레라는 ‘非存在(비존재)’로 轉落(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현대인은 직업에서 이탈하면 벌레와 같은 버림받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해석은 이 소설이 애정이 없는 세계의 황량함, 비정함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곧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애정이 끊기면 인간은 벌레와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레가 되기 전의,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은 서로 따뜻한 피가 통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가 벌레가 되자 그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는 끊기고 만다. 이것은 작가가 인간을 탐구한 하나의 假設(가설)로, 그것을 逆(역)으로 읽으면 사람은 서로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 인간이지 그것이 없으면 벌레와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몇몇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런 견해들을 들은 다음, 이 소설에 대한 최종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얼마 동안의 이런 노력이 쌓이고 나면 언젠가 독자는 그런,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어떤 어려운 소설도 해석하고 감상할 수 있는 눈이 뜨이리라 생각한다. 그때에는 더 이상 무슨 해설 같은 것을 읽을 필요도 없다. 道(도)를 터득한 스님이 그러듯, 강을 건너고 나면 거룻배는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 2014-05-16, 17: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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