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와 여자는 패야… 어쩌고 하다가는—
女權 伸張(여권 신장), 그 좋은 일이지–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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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우리나라의 男女性比 不均衡(남녀성비 불균형)으로 상당히 오래 전부터 걱정을 해 온 것 같다. 여자에 비해 남자 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선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남자가 많게 된다는 것부터가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우리 사람들이 男兒選好(남아선호), 곧 아들 낳기를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 저변에는 수백 년도 전부터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男尊女卑思想(남존여비사상)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사상은 특히 儒敎(유교)가 國敎(국교)가 되다시피 한 朝鮮朝(조선조)에 들어 부쩍 심해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孔子(공자)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孔子는 《論語(논어))》 「陽貨(양화)」편에서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조금만 가까운 척 하면 체모 없이 굴고 조금만 멀리하면 불평을 한다’고 하고 있다. 孔子는 어떤 면에서 보면 오늘날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女性 嫌惡症(여성 혐오증·misosyny)’ 같은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가 열아홉 살에 결혼하여, 성질이 괴팍하여 스물세 살 때 친정으로 돌려보낸 그 부인(兀官·올관)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朝鮮朝의 여성에 대한 대접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朝鮮 士大夫家(사대부가) 여성에 대한 修身書(수신서)라 할 昭惠王后(소혜왕후) 韓氏(한씨)가 쓴 《內訓(내훈)》은 ‘여자는 집안에서 날이 저물어야 한다’고 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백 리가 넘으면 가서는 안 된다’ 하고 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여자를 예비성범죄자 취급을 하여 평생을 집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감금하고 있었다 해야 할 것이다.

朝鮮時代(조선시대)의 性(성)과 관련된 사건에서의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처벌은 심해도 너무 심한 것이었다. 남녀가 다 같이 부정을 저지른 경우에도 남자 쪽은 거의 흠 될 것도 없다시피 하고, 여자 쪽은 심한 비난과 가혹한 징벌을 받아야 했다. 그 시대에는 여자가 淫行(음행)을 한 경우, 때에 따라서는 國法(국법)마저 무시한 처벌을 하기도 했다.

成宗(성종) 시대의 ‘淫女 於于同(음녀 어우동) 사건’이 그 예가 된다. 士大夫의 딸로 역시 士大夫와 결혼한 그녀는 외간남자와 私通(사통)한 것이 탄로나 시가에서 쫓겨난 다음 관리·儒生(유생)·匠人(장인) 등 여러 남자와 淫行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같으면 그런 일은 한갓 醜聞(추문)으로 끝나거나 기껏해야 경범죄로 최고 1개월 미만의 구류를 살면 끝날 문제였다. 당시에도 그와 같은 죄는 일종의 風俗事犯(풍속사범)으로 얼마 동안의 귀양에 처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成宗은 법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교수형에 처하게 했으니 그 가혹함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알 수 있다.

그 시절 양반들뿐 아니라 常民(상민)들 세계에서도 女性卑下(여성비하)는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오늘과 같은 兩性平等(양성평등)의 시대에 들으면 여성으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적인 俗談(속담)들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여자는 사흘만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고 한 것이라든가 ‘북어와 여자는 패야 제 맛’이라고 한 것이 그런 것이다.

우리의 說話(설화)에서도 여자는 妖物(요물)이라고 하고 있다. 그 전형적인 것이 忠淸南道(충청남도) 燕岐郡(연기군) 일원에 구전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傳說(전설)이다.

아들 삼형제를 둔 어떤 소장수 부부가 딸을 얻고 싶어서 서낭당에 가서 백일치성을 들였다. 그리하여 예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열일곱 살이 되고부터 소가 한 마리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불여우의 변신인 그 딸이 한 소행이었다. 그리하여 그 집은 파산을 하고 큰아들을 제외한, 그 내외와 두 아들이 모두 그 여우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란 妖邪(요사)스런 것이니까 딸을 낳기를 바랐다가는 끔찍스런 災殃(재앙)을 당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보도를 보니 男女性比 不均衡이 갈수록 완화되어 가고 있다 한다. 2004년 여자 100명 당 남자 108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107.7명으로 그 不均衡이 0.5% 감소했고, 그 수치는 1995년에 비해 5.5% 감소한 것이라 한다. 1991년에는 可姙女性(가임여성) 41%가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 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원인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부모 부양 의무, 상속 등에 있어서 女權(여권)이 크게 신장한 것이 아닌가 한다. 1990년대 어느 신문의 보도에 보니 한국 부부 중 30 몇 %가 남자가 맞고 살아간다고 되어 있었다. 그 판이니 괜히 옛날 생각만 하고 사내라고 ‘북어와 여자는…’ 어쩌고 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든 性比가 균형을 이루어간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 원인, 저 원인보다 創造主(창조주)의 뜻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 2014-05-30, 15: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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