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발췌]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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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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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너무나 참담한 기분이어서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다. 동부전선에서 진격 중이던 우리 육군에게 후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적에게 보급로를 차단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군은 동부지역 한국군의 보급로 역할을 해 왔던 김천(金泉)을 포기했다. 백 대령이 이끄는 17연대는 미군을 좌우로 그리고 후방까지 엄호하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적이 미군의 후방을 공격해 왔으나 한국군이 이를 격퇴시켰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적의 기습 병력은 겨우 80명이었다.

 

고령에 주둔한 미군들이 어젯밤 기습해 온 북괴군 게릴라들과 접전 중이던 우리 경찰대원들에게 집중사격을 가해 30여명을 살상했다는 보고다. 도대체 뭐가 뭔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싸우는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러 온 사람들인가. 우리 아이들이라면 그 따위 멍청한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군과 북괴군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쏘아대는 판이니 아예 후퇴하는 정도는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러한 실수를 따지는 편지를 썼다. 지난 번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에 대한 항의 편지를 워커 장군에게 전달,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으나 그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않았다. 한국군은 만일 지금이라도 당장 미국이 한국인들에게 무기를 공급해준다면 적군의 공세를 저지시켜 미국이 총반격작전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받을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군은 벌써 여러 날 째 곧 공격을 개시한다고 말만 하고 있다.

 

미국은 그들의 군사전략이나, 국익의 득실, 또는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가들의 정략이라는 저울대 위에 남한 땅을 올려놓고 있다. 남한 땅을 포기하는 것이 자국의 복합적인 이익에 부합된다는 쪽으로 저울 바늘이 기울 때면 그들은 냉큼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훌쩍 떠날 수도 있다. 그렇게 하게 할 수는 없다. 남한 땅은 우리에게는 생명이오,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국민만이라도 남아서 최후까지 이 땅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무쵸 대사는 한국인들의 사기가 어째서 떨어졌느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사기가 떨어진 적이 없다고 응수했다. “무쵸 대사, 나는 어제 2천 명의 우리 청년들이 훈련받고 있는 곳을 방문했었소. 미군 고문관은 한국 훈련병들이 잠잘 때나 먹을 때나 항상 총 자루를 쥐고 있다면서 극구 칭찬을 합디다. 우리 국민들의 정신은 그렇게 살아 있소.” 대통령은 이어서 미군이 더 이상 후퇴를 계속하지 않는다면 한국인의 사기는 충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젊은이들을 포함하여 부산에 대기 중인 10만명의 한국 청년들은 아직도 맨손이다. 무기! 무기가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이 미군들이 후퇴만 하다가 죽을 당하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고 쏘아붙였다. 대통령은 만일 미군들이 무기를 우리에게 빌려주고 증원군이 올 때까지 우리더러 전선을 지키라고 한다면 미군도 살고 우리 아이들도 살고 우리 나라도 살지 않겠느냐고 무쵸 대사를 다그쳤다. 무쵸 대사는 몹시 화를 냈으나 대통령의 편지를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중화기를 공급받은 한국군 부대가 그들이 맡은 모든 전선에서 적의 진격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적군은 미군 방어선이 취약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만을 골라서 맹렬하게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우리의 17연대가 합천(陜川)을 탈환했다.

 

<82>

 

우리 아이들이 훈련받고 있는 캠프를 다녀오는 도중에 대통령이 갑자기 논 옆에 차를 세웠다. 그것은 빈 논이었다. 옆의 논에는 벼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이미 패기 시작하는 데 거기는 오래 전에 누군가 모를 심다 말고 가 버린 논이었다. 논 가운데는 아직도 띄엄띄엄 모 묶음이 흩어져 있고 논두렁의 모 묶음들은 자라지도 못한 채 누렇게 말라 있었다. 대통령은 빈 논 둑을 말없이 걸어 갔다. 그리고 말라버린 모 묶음을 움켜쥔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울었다. 이윽고 대통령이 눈길을 돌리더니 아쉬운 듯 말했다. “누가 모 묶음을 풀어서 뿌려 놓기만 했더라도 조금의 추수는 할 수 있었을 텐데.....” 대통령은 국민의 양식과 닥아 올 추수를 걱정했다. “농민들이 공산당에게 곡식을 빼앗겨서는 안 돼! 우리는 추수 전에 반드시 땅을 되찾아야 돼!” 대통령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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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실로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하와이에서 새로 도착한 병력이 30여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진주(晉州) 외곽에 와 있던 적군을 격퇴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 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으며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 더구나, 적군은 식량과 연료, 그리고 탄약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미국인들이 기어코 공산군을 밀어붙이겠다는 결의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군이 김천을 포기하고 왜관(倭館)으로 후퇴하게 되어 전선은 더욱 남쪽으로 밀려내려 왔다. 한국군 17연대의 좌우 엄호(掩護)를 받던 일부 미군 병력은 거창(居昌)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어젯밤 전투를 치르고 나더니 미군은 고령(高靈)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군은 후퇴를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후퇴를 결정한 미군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한국군에게 넘겨주고 고령으로 떠났다. 한국군은 이 무기들을 가지고 거창을 방어하고 있다.

 

워커 장군은 오늘 아침 드디어 미군과 한국군이 똑 같은 무기를 제공받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워커 장군 자신이 한국군이 얼마나 열심히 싸우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대통령은 지난 1주일 내내 한-미 양국군에게 똑 같은 무기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주장해 왔는데 이제야 미국측이 무기 제공에 있어서 한-미 양국군에게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워커 장군은 또 한국 경찰에게도 완전무장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군이 북진할 때 한국 경찰이 도처에서 준동(蠢動)하는 공산 게릴라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이제는 워커 장군도 한국군이 얼마나 우수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 한국군이 없다면 미군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Vienna, Austria)의 친정집에서 언니 베티가 <디 프레세(Die Presse)> 특파원 편에 비타민과 편지를 보내 왔다. 끝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 편지였다. 어머니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근심으로 지새우면서 한국의 자유와 평화 회복을 기원하는 금식(禁食) 기도를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요즘은 친척과 이웃은 물론, 단골 가게 아주머니들까지 합세하여 어머니와 함께 금식 금식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시집 온 것이 1934.... 17년 동안이나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 했던 어머니다. 어머니의 인자하고 따스한 얼굴이 떠오르며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다. 어머니는 내가 대통령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독립투사와 정치가의 아내보다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때도 어머니를 괴롭혔고 이제는 또 다시 어머니의 마음을 죄고 있으니 불효막심한 딸이다. 나이 많은 남편을 따라서 먼 나라로 시집온 딸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지내신 적이 없는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꼭 찾아 뵐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한국동란 중에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훗날 프란체스카 여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대통령은 장례 때 나더라 다녀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나라 사정을 생각할 때 빈까지의 여비도 문제였지만 한시라도 대통령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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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은 일기를 쓸 경황이 아니었다. 한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미군의 작전에 협조하기 위하여 철수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썼다. 나는 이 편지들을 장면(張勉) 주미대사와 올리버 박사(Robert T. Oliver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고문) 등에 전달, 대통령의 뜻6이 미국 각계에 알려지도록 했다.

 

미군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싸우고 있기는 하다. 워커 장군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는 진정으로 한국을 사랑하는 것 같다. 이제 워커 장군의 전술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하겠다.

 

대구의 더위는 한층 더 기승을 부린다. 물 사정도 예사가 아니다. 물이 부족해서 우리 내외 빨래도 물 사정을 보아가며 해야 했다.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두었거나 도중에 뿔뿔이 흩어져서 홀로 내려온 정부요인들이나 황 비서관, 경호원들은 옷을 사 입을 형편도 못 되었다. 그 바람에 군복을 얻어 입었고 빨래도 손수 해야 한다. 남자들 빨래 솜씨로는 비눗물이 늘 덜 빠지게 마련이다. 가끔 지사관저 뒷마당 빨래 줄에 국물이 덜 빠진 남방셔츠가 널려져 있어도 물이 귀해 손봐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를 깁거나 올이 다 닳아 구멍이 나기 직전의 빨래들이었다. 너무나 딱한 건 팬츠였다. 해어지기 직전의 천 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노블 참사관이 갖다 준 침대 시트를 침모와 함께 밤새껏 말려서 그것들로 팬츠를 여러 장 만들었다. 이 팬츠를 조 지사부인에게 주어서 직원들 숙소로 보내도록 했다. 지사 관저 앞에 있는 양조장과 덩치가 좀 큰 집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정부관리와 사회 각계 인사들의 공동 합숙소였다. 방이 부족해서 모두들 새우잠을 자거나 차례가 늦은 사람들은 앉아서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밤중에 누군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때는 자던 자리를 빼앗기는 것으로들 알았다. 자동차가 부족해서 지프에 45명씩 끼어 타는 콩나물시루 신세들이었다. 장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나없이 등허리에 땀띠가 나도록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충성스러운 사람들뿐이었다.

 

<810>

 

대통령과 나는 온몸에 땀띠를 뒤집어썼다. 대통령의 잔등은 모기에 물린 곳까지 겹쳐서 보기에 딱할 지경이었다. 워낙 물이 부족하여 밤이면 물 한 대야를 떠다가 수건을 적셔서 대통령의 땀을 닦았지만 땀띠는 점점 심해져서 진물까지 흘렀다.

 

나는 워커 장군에게 땀띠 연고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무쵸 대사나 워커 장군, 그리고 우리 집에 드나드는 미국인들은 나를 보면 마담 리, 도와 드릴 일이 없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알려 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들에게 사사로운 부탁은 일체 못하도록 나에게 엄명(嚴命)을 내려놓고 있었다. 나는 참다못해 워커 장군에게 땀띠 약을 부탁한 것이다. 장군은 땀띠 연고 외에도 다른 상비약과 영양제를 한 박스 보내왔다.

 

그런데, 내가 부엌일을 보러 잠시 들어간 사이에 약상자가 대통령의 눈에 띄고 말았다. 대통령은 나에게는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아침 보고를 하러 들어 온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일선의 우리 아이들에게 가져다주라면서 약상자를 주어 버렸다. 약상자 뿐 아니라 나의 친정에서 온 비타민까지 몽땅 합쳐서 주어 버린 것이다. 내가 부엌에서 나올 때 신 장관은 막 약상자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가는 참이었다.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나는 말도 못한 채 땀띠연고 하나만 빼 놓으라는 싸인을 신 장관에게 보냈다. 신 장관은 알았다는 듯 한 개를 슬쩍 빼 놓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뒷머리가 따갑다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자 대통령이 무서운 눈으로 우리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고 신 장관도 멀쓱한 표정으로 냉큼 나가버렸다. 평소에도 남에게 무엇을 줄 때는 나에게 물어보는 법이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러한 성격에 자신의 땀띠를 치료하겠다고 얻어 온 약을 전선에 보내면서 나의 의사를 물어 볼 분이 아니었다. [앞으로 계속]

[ 2014-06-21, 18: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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