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발췌]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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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발췌]

 

<1950823>

 

정오쯤 되어서 대통령이 어제 불렀던 조병옥 내무장관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왔다. 대통령은 조 내무에게 경찰 간부들을 함부로 해고한 뒤 장관의 친척이나 친구들을 기용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나무랐다. 신 국방은 이제부터는 지원병 제도를 통하여 모병(募兵)을 하는 데 동의했다. 신 국방은 미 군사고문단(KMAG) 장교들과 일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보고했다. 오늘 현재 미 군사고문단 요원은 약 500명에 달했지만 이들 가운데 한국사람들에게 호의적이거나 전투경험을 가진 요원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826>

 

이날 오후 대통령은 부두에 내려가 작은 목선을 타고 나가서 낚시를 했다. 커다란 고기들이 연달아 잡혀서 대통령은 1시간 동안에 42마리나 낚아 올렸다. 한창 고기를 낚고 있는데 전방 300m 가량 떨어진 산 밑에서 그쪽은 출입금지구역입니다. 어서 나가세요하고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마 이곳을 경비하는 해병인 듯했다.

 

그때 목선에는 김장흥 총경, 이선영 경사와 해군장교가 함께 타고 있었다. 대통령은 여기가 출입금지구역이라면 어서 나가야겠구먼...” 하고 낚시를 그만 두고 되돌아왔다. 별장으로 올라온 대통령은 통제부 사령관인 김성삼 대령을 불렀다. 사령관은 이날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 해병을 칭찬하면서 1계급 특진을 명하니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시간 후 김 대령이 그 해병을 데리고 왔다. 대통령은 해병을 반기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참으로 훌륭한 군인이군. 이렇게 애국적인 군인이 많이 있어야 해!” 하면서 치하했다. 그 해병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827>

 

저녁 식사를 막 하려고 하는데 노블 참사관, 헤스 소령,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등이 찾아왔다. 헤스 소령은 자신이 전선으로 비행하려 했으나 금지 당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부산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헤스 소령은 하루 평균 6회의 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사람들을 사랑했으며 한국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행 훈련을 시켜서 훌륭한 조종사를 양성하겠다는 의욕이 넘쳐 있는 사람이다.

 

<828>

 

오후 1시쯤 미 해병대의 유명한 크레이그(Edward Arthur Craig) 장군이 창원에서 헬리콥터로 왔다. 대통령은 크레이그 장군에게 미 해병대를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시했었다. 그래서 크레이그 장군은 오늘 자신의 부관인 버크 중위를 대동하고 왔다. 크레이그 장군은 아주 명랑하고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대통령은 내일 창원에 있는 미 해병대를 방문하기로 했다.

 

<829>

 

오전 8302대의 헬리콥터가 도착했다. 창원까지는 10분 거리였다. 그곳에서 크레이그 장군은 부상하고도 용감하게 싸운 92명의 해병들에게 명예 전상기장(戰傷記章Purple Heart)을 수여했다. 이 사실을 미국 시사잡지 <타임(Time)><뉴스위크(Newsweek)>가 보도했다.

 

포항 지역 전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국군 3사단의 진격이 너무 빠르다는 말이 들렸다. 김석원(金錫源) 3사단장은 일제 때 일본군에서 훈련 받고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사단장 직을 역임한 바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채병덕 장군과 사이가 좋지 않아 채 장군의 지휘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공교롭게 터진 금전 문제에 채, 김 두 장군이 모두 연루되어 함께 직위 해제되고 예편되었었다. 채 장군은 곧 재임명되었지만 김 장군은 해직된 상태로 6.25 전쟁을 마지했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후 김 장군은 3사단장에 임명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한국군 3사단은 적잖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었다. 한 번은 너무 앞서서 북진하는 바람에 미군들이 그를 제 자리에 붙잡아 두느라고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뒤 영덕 지역에 배치되자 이번에는 후퇴 명령을 지키지 않다가 때를 놓쳐서 왜관 지역의 적군이 퇴로를 끊고 고립시켰으므로 김 장군의 부대는 해안선을 따라서 겨우 퇴각하기도 했다.

 

김석원 장군뿐 아니라 김홍일(金弘壹) 장군도 미 군단장 콜터 장군이나 국군 제1연대와 함께 있는 브래들리 장군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바로 어제도 부대를 조금만 전진시키라는 명령을 받고도 부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좀 해 달라는 워커 장군의 부탁을 받고 대통령이 경주(慶州)로 김홍일 장군을 찾아갔다. 김 장군은 진격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면서 좀 더 기다리라는 워커 장군의 지시에 이의(異意)를 표했다. 대통령은 그에게 명령은 명령이니까 일단 따르라고 타일렀다.

 

<830>

 

오후 1시 헬리콥터 편으로 부산에 왔다.

 

<831>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국무회의가 열렸다. 징병법(徵兵法)이 확정, 공포되었다. 신 국방이 대구로부터 와서 대통령에게 콜터 장군이 이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므로 교체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서 김석원, 김홍일 두 장군의 교체를 건의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지휘관을 교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특이 이 두 장군은 휘하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체될 경우 휘하 부대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두 장군의 교체 명령에 서명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장군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존스턴 기자가 도쿄로부터 다시 왔다. 대구의 미 8군사령부는 그의 입국을 불허했지만 그는 맥아더 장군에게 직접 항의한 끝에 입국 허가를 받아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지프차 1대를 내달라고 요청했고 대통령은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92>

 

낙동강 전선 17개 지점에서 적군이 아군 저지선을 돌파했다는 나쁜 소식. 점심때가 지나자 폭격기들이 줄지어 낙동강 전선으로 날아갔다. 전황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쓰고 싶지 않다. 잔뜩 긴장만 하게 할 뿐 미군 사령부의 전술을 바꾸게 할 도리가 없는데 줄줄이 적어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적군이 왜관에 침입했다고 한다.

 

<93>

 

진주 부근에서 유엔군이 1만명 가까운 공산군을 살육(殺戮)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미군기들이 적군의 사단을 집중 폭격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유엔군은 진주까지 진출했다 포항 지구의 전황이 잘 풀리지 않는 원인은 한국군 정예부대(인천 상륙작전 부대로 차출된 수도사단)를 빼낸 것이 큰 것 같다. 두 김 장군의 교체가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94>

 

대통령은 아침 내내 서한 내용을 구술하기만 하다가 오후에는 6천명의 부상병들이 입원해 있는 세 군데의 병원을 둘러보았다. 다녀와서 대통령은 몹시 가슴 아파 했다. “병원 한 군데에선 부상병들이 바닥에 거적을 깔고 누워 있더군. 덮을 담요조차 없는 환자들도 많습디다.”

 

대통령은 부상당한 우리 아이들을 덮어줄만 한 것이면 모두 챙기도록 해서 병원으로 보냈다. 심지어 자신이 사용하는 삼베 홑이불까지 싸서 보냈다. 대통령과 나는 밤새워 하와이와 미주(美洲) 지역의 친지들에게 덮을 것도 없이 거적 위에서 신음하는 우리 부상병들의 형편을 알리고 담요와 시트와 구호품을 보내 달라고 호소하는 37통의 편지를 썼다. [대통령의 편지를 받은 우리 동포들은 모두 울었다고 한다. 구호품을 모으러 사람들이 돌아다닐 때 이 소식을 듣고 울지 않는 동포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하와이부인구제회, 동지회, 릴리하 한인교회를 위시해서 최백렬, 최성대, 김창수, 김학성, 거투르드 김, 정순예 김, 노디 김, 살로메 한, 해나 류(별명 김치할머니) 같은 기독학원 제자들과 교인, 교회 목사님들에게 주로 편지를 썼다. 특히 미주의 송철, 송영한, 전인수, 최용진, 조앤 남궁, 김세선 등에겐 대통령이 써 보냈고 미국인 친지들에게는 주로 내가 썼다. 빈에 있는 친정의 가족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우리 친정에서 제일 먼저 구호품을 보내 왔고 하와이, 미주에서도 속속 구호품이 도착했다.]

 

<95>

 

포항 쪽 전황이 아주 좋지 않다는 보고다. 북괴군 유격대가 대구까지 침투했다는 소식이다. 창원에서는 미국공보원(USIS) 직원들을 납치해서 죽였다고 한다. 끔찍한 전쟁이다. 빨리 어디에서든지 우리가 적의 후방에 상륙하여 적들의 등뒤를 치고 기를 꺾어야지 지금처럼 이쪽 전선에서 줄다리기만 하다가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일이다.

 

<96>

 

어젯밤 들어온 포항지구 전황이 아주 나쁘다. 우리 사령부에서는 적이 그쪽을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방비가 튼튼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포항을 탈환했지만 1천여명이나 되는 한국군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타임><뉴스위크>는 포항지구의 첫 전투에 관한 기사에서 우리쪽의 준비나 대응조치가 너무 미흡하고 늦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1개 사단을 빼낸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쪽에 허점이 생기면 누구보다도 적이 먼저 알아챈다는 것이다.

 

군사기밀이 얼마나 허술하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우리 경호관 중의 한 사람이 어제 미 8군사령부에 다녀왔다. 한국에 와 있는 미군 병사들은 거의 모두가 일본에 주둔하다가 왔기 때문에 대부분 일본말을 조금은 할 줄 알아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과는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된다. 게다가 미국 병사들은 무척이나 한국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8군사령부에 들른 우리 경관도 미군 한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글쎄 이 미군 병사가 하는 말이 전쟁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 이제 2주일 안에 우리가 상륙작전을 벌여서 적의 배후를 치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도 극비(極秘)”라는 전제 하에 들은 정보를 미국 군인들은 만나는 한국사람들 아무에게나 털어 놓는 셈이다. 이러니 무슨 일이든지 적이 미리 알지 못할 리 없다.

 

내 생각으로는 미군 병사들이 이처럼 입이 가벼운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미군 병사들은 만나는 한국사람들에게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것을 그러한 식으로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들이 처음 한국에 올 때는 미군이 나타났다 하면 북괴군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칠 줄 알았는데 결과는 그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미국의 힘을 믿었던 한국인들이 낙망(落望)할 것을 걱정해서 한국인들을 위로해주기도 하고 스스로도 자신감을 다질 겸 해서 이러한 비밀을 그렇게 쉽사리 털어 놓는 모양인 것이다. 그들의 호의(好意)을 믿지만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젯밤에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구름이 잔뜩 끼더니 비가 내렸다. 비행기가 뜰 수 없는 날씨다. 그렇게 되면 우리 부대들은 공중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자정을 넘기면서 하늘이 밝아졌다. 별들의 반짝임이 그토록 예쁘게 보인 적이 없었다. 두 김 장군을 교체한 조치가 국방장관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정치문제화 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1시 미 해군의 조이(C. Turner Joy, Jr.) 중장이 와서 대통령을 모시고 제1부두에 나가 제주도에서 오는 우리 해군 아이들을 마지했다. 당초에는 이들을 전선으로 보내 전투를 돕도록 할 예정이었지만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참이므로 이곳(부산)에서 대기했다가 수도사단과 합류하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이 우리 아이들을 사열하자 그들은 매우 기뻐했다.

 

오후 2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은 장택상, 황성수, 임영신 등 세 의원을 유엔 대표로 임명했다. 외무장관이 그들과 함께 갈 예정이다. 국회에서 내무장관과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었다. 내무장관은 국회의원을 구속했기 때문이고 국방장관은 김석원 사단장 해임이 이유라고 했다. 우리는 마음이 언짢았다. 적이 코앞에 와있는데도 험만 잡으려드니 말이다. 이러한 정치상황이 다급해진 전황과 맞물려 대통령을 몹시 괴롭혔다.

 

이날 밤 대통령이 붓과 벼루를 가져오라고 했다. 대통령은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먹을 갈았다. 나는 하얀 화선지 앞에 단정하게 앉아서 붓을 든 대통령의 모습이 무척 좋았다. 동양에서만 볼 수 있는 한 폭의 그림만 같았다. 대통령은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서 자신의 깊은 상념들을 화선지 위에 옮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대왕(宣祖大王)이 왜병에 쫓겨서 신의주(新義州)에 피신했을 때 읊은 시구(詩句)였다.

 

통곡관산월(痛哭關山月) 상심압수풍(傷心鴨水風)

군신금일후(君臣今日後) 인후각서동(忍後各西東)

 

[변방에 뜬 달 보고 통곡하니/압록강 바람은 가슴을 에이네/임금과 신하가 치욕을 당했건만/차마 오늘 이후에도 동서 당파 싸움을 계속할 것인가]

 

대통령은 쓰기를 마친 뒤 영어로 나에게 번역해 주었다. 나는 대통령의 이 글씨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뒤에 목각(木刻)으로 새겨서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신익희(申翼熙) 국회의장에게 밖에선 공산군이 쳐들어오고 안에서는 국회가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주된 원인의 하나는 신 의장이 국무총리 자리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신 의장이 대통령에게 자신을 국무총리로 임명해 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대통령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거절했다. 대통령은 총리 자리는 가급적이면 북한출신 인사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만식 씨가 아직 생존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살아만 있다면, 국무총리 자리는 그 분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앞으로 계속]

 

 

[ 2014-07-06, 12: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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