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엄명, "남침으로 38선은 失效, 무시하고 北進하라."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발췌] ⑧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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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발췌]

 

<1950910>

 

김홍일 장군이 아침에 찾아왔다. 국회의원 이종현(李宗鉉) 씨도 왔다. 미 군정청 시절 그의 별명은 더티 코트 리(Dirty Coat Lee)'였다. 李 의원은 조 내무장관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그를 해임하지 않으면 국회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등 대통령에게 강변(强辯)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국회의원 가운데는 정말 좋게 보아주기 힘든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들 했다.

 

대통령은 꼭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국회 문제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국회란 항상 세상일을 그대로 반영하는 곳이라는 게 대통령의 지론이었다. 웬만 하면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했고, 아주 빗나간다 싶을 때만 사태를 바로 잡곤 했다. 나라면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인내심이었다.

 

<913>

 

아침에 趙 내무가 대구에서 전화로 대통령이 피난민촌을 방문할 것인지 물었다. 이렇게 전화로 공공연하게 대통령의 움직임을 거론한다면 어떻게 조용히 다녀 올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화 통화가 끝난 즉시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태풍은 오늘밤 9시쯤 가라앉을 것이라고 한다. 아군은 이미 인천과 군산을 포격 중이다. 포항지구에서도 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의 가호를! 미군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다.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추수기 이전에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피난민들에게 추수가 끝난 뒤 빈 들과 부서진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추수를 우리 손으로 할 수 있게만 된다면 전쟁의 절반은 우리가 이기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조그만 비행기로 경주에 간 대통령이 예정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무척 걱정했다.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저녁 515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대통령은 경주에서 꽤 스릴 있는 경험을 한 모양이다. 경주의 미군 사령부는 시내에 있지만 한국군 사령부는 시외로 3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머리 위로 포탄들이 씽씽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바로 근방 산속에 포진하고 있는 적 유격대를 겨냥한 미군측의 포격이었다는 것이었다. 전혀 예고되지 않은 방문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맞이한 한국군 부대 장병들은 매우 반가워했다고 했다. 경주에서 대통령은 처치(John H. Church) 장군도 만났다. 그는 막사에서 반쯤 취해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더라고 한다.

 

<916>

 

오전 9시를 기해 모든 전선에서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어제 오후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에 성공했다고 한다. SCAP(연합군최고사령부) 방송을 통해서 알 뿐이다. 인천 상륙작전은 해군과 해병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워커 장군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미 육군과 해군이 이곳에서 작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917>

 

나는 오후에 미군 후송병원을 찾아가서 부상병들을 위문했다. 미군 부상병들은 정기적으로 일본으로 보내기 때문에 환자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부상병들은 싸우는 데 대한 관심이나 열의가 거의 없어 보였다. 물론 얼른 나아서 전선으로 돌아가 다시 싸울 수 있기를 바라는 한국군 장병들과 이들을 비교할 수는 없다. 적을 섬멸하는 것이 목표라는 데에는 우리 군인들이나 미군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한국군인들은 직접 적을 무찌르고 싶어 하지만 일부 미군 장병들은 자기 아닌 다른 누국가가 대신 싸워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918>

 

오후 4시 무쵸 대사가 우리에게 와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온 電文을 보여주었다. 대통령 내외와 국무위원들은 목요일(921) 또는 며칠쯤 뒤에 서울로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정말로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다. 가슴이 벅차서인지 아무도 말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

 

유엔군 장병들을 위문하러 갔던 김활란 박사가 오후에 돌아왔다. 김 박사가 돌아가려도 현관에서 구두를 신다가 질겁하고 놀랐다. 발에 꿈틀하는 감각과 함께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가 신발 속으로부터 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김 박사가 돌아간 뒤 대통령은 웃으며 마미, 누가 김 박사에게 그런 장난을 했는지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겠지?” 하고 재미있어 했다. 나는 누구의 장난인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입을 열지 않는 한 김 박사는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은 여러 날 만에 편안하게 단잠을 잤다.

 

<921>

 

점심 후에 노블 참사관이 와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온 電文 내용을 전했다. 환도(還都)는 며칠 더 기다려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망했지만 서울에선 아직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오후 4시에는 제1부두로 나가서 17연대를 전송했다. 목적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인천이나 옹진(甕津) 쪽일 것이라고 한다. 곧이어 우리는 한국군 여군 훈련병들을 사열했다. 전선에 나간 남자군인들을 대신해서 후방 일을 볼 튼튼한 여성들이다. 아군은 서서히 밀어 올라가고 있다 일부 부대들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있지만 전선의 균형을 고려해서 모든 부대들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한다. 전선의 중앙을 맡은 한국군은 중장비가 없어서 발걸음이 가벼운 반면 동해안 쪽의 미군은 중장비와 무기 때문에 오히려 걸음이 더디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아침 9시 대통령은 한국군 사령부에 가서 17연대 안 소령이 한국군 고문단장 패럴 장군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것을 참관했다. 안 소령이 무슨 공으로 훈장을 받았는지 알아보아야 하겠다. 대충 들은 이야기로는 미군과 함께 싸우는데 여러 시간 동안 적군의 공격을 물리쳤다고 한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안 소령은 작고 깡마른 체구다. 미군들은 안 소령의 이 같은 깡마른 몸집을 보고 그렇게 잘 싸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대구에서 8천명의 장병들을 일본으로 보내서 훈련 받도록 했다. 그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은 3만명의 한국군 장병들을 더 일본으로 보내서 훈련을 받게 하라고 지시했다 한국군을 훈련시켜서 직접 전투에 임하게 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인명(人命)의 차원에서나 물질적으로나 훨씬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군은 이제 일본이 아닌 한국을 아시아의 투사(鬪士)로 키우려 하지 않을까? 그들은 쓰디쓴 경험을 통하여 한국군의 강인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진가(眞價)를 인정받게 되어서 모두 즐거워한다.

 

<922>

 

노블 참사관이 아침 일찍 와서 서울시장과 인천시장이 환도 선발대로 김포(金浦)로 떠난다고 알려왔다. 또 맥아더 장군이 어제 도쿄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이전에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선 소식도 좋다. 적은 퇴각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무리지어 도망가면 우리 전투기들이 쫓아가면서 기총소사(機銃掃射)를 퍼부어대기 때문이다. 워커 장군은 공산군이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서 다시 싸움을 벌이지 못하게끔 철저히 섬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험으로 깨우친 것이다. 북쪽으로 올라간 뒤에도 그가 계속 사령관 직을 계속 맡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신 국방에게 서울 중앙청만은 꼭 우리 국군이 먼저 탈환하여 태극기를 꽂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923>

 

어제 대통령은 중앙청 출입기자단과 사변 이후 처음 회견을 가졌다. 기자들은 서울 환도를 앞둔 대통령의 소감을 물었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요지로 답변했다.

 

처음에는 무기가 없어서 곤란을 당했으나 이제 서울 탈환을 목전에 두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하다. 민주진영은 언제나 끝에 가서 승리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동포들이 화()를 당하고 더욱이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서 전재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전재민 중에는 집 없이 헤매는 사람이 많으니 우선 이들을 구호해야 한다. 미국은 세계대전 때 유럽에 가서 집 없는 사람에겐 집을 지어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주어서 구제했는데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인천 시민들이 식량이 없어서 곤란을 겪는다고 해서 쌀 3백섬, 잡곡 3백섬을 보내 주는데 미국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외국인도 도와주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먼저 희생적으로 서로 있는 것을 나누어 먹고 함께 살고 고락을 나누는 동족애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대통령은 38선 문제를 비롯한 다른 현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상적 대립은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처음부터 38선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여태껏 참아온 것은 국제적 관계 때문이었는데 이번에 공산군이 이 선을 넘어서 불법 남침한 것이니 이 선은 자연히 없어졌다. 그것은 소련이 북한괴뢰군을 남침시켜서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했으나 유엔의 민주진영이 우방을 살리기 위하여 일어남으로써 국제전쟁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전쟁은 한국전쟁이 아니고 국제전쟁이다.

 

전후 부흥책과 전재민 보호는 정부가 식량을 다소 준비한 것이 있고 금년 추곡을 수집하여 배급할뿐더러 외국도 우리 형편을 잘 아는 까닭에 많이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월동(越冬)의 거처 문제가 시급하므로 ECA에 목재 지원을 요청했다. 곧 이 물자들이 들어오면 가옥을 건축하겠는데 모든 동포의 초가집을 이 기회에 기와집으로 지어 살게 하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리고 피점령지 주민 문제는 소련의 사주(使嗾)를 받은 공산군이 불법 남침하여 살인방화를 자행했다. 우리 남한에서는 과거 중국인들이 했던 것처럼 이자들을 환영한 일은 전연 없다고 한다. 다만 서울에 있는 중국 거류민들이 그렇게 한 모양인데 우리 동포들은 공산군들의 총칼에 굽히지 않았으니 큰 자랑이라고 하겠다.

 

박쥐 같은 회색분자들이 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런 자는 자기 형제일지라도 자구책을 위해 적발하여 처벌해야 한다. 살기 위해 그놈들에게 부득히 협조했던 것은 잘 조사해서 민간의 공론(公論)에 따라서 처리할 것이다.

 

태평양동맹 문제는 일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외상이 내한(來韓)하고자 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한국의 전선(戰線)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그분의 안전을 위하여 방한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귀국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외상의 태평양동맹 문제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을 표명함과 동시에 그분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음을 믿는다.“

 

대통령은 오후 330분 신 국방, 조 내무와 함께 출전하는 우리 아이들을 격려하고 환송했는대 우리 아이들의 사기가 매우 높았다. 이제 맥아더 장군이 비행기만 보내주면 된다. 서울 환도 채비는 대강 끝났다.

 

<924>

 

저녁에 무쵸 대사와 노블이 와서 맥아더 장군의 두 번째 전문을 전해주었다. 20일 서울에 입성(入城)하면 수복지역의 모든 권한을 한국정부에 돌려주는 의식을 갖겠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정부 요인과 모든 외교사절들이 이 의식에 참가해 주기를 바랐다.

 

신 국방은 서울을 탈환하는 데 맥아더 장군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완강한 적군의 저항을 받아서 치열한 격전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미 해병 1사단만으로 서울을 탈환하려 했던 알몬드 장군은 계획을 바꾸어 육군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낙동강 전선에서 북진(北進) 중인 미 8군과 남하하는 미 7사단32연대, 그리고 우리 국군 17연대를 서울 탈환 전투에 참가시킬 것이라고 했다.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는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나 모두 잘 싸웠다. 특히 17연대에 대해서는 모든 연합군 장성들과 워커 장군도 그 용맹성을 인정한다.

 

나는 서울로 갈 짐에서 다시 타이프라이터를 꺼냈다. 서울 환도 준비로 타이프라이터부터 챙겨 두었었다. 대통령은 곤하게 잠들었지만 나는 마음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잠을 청하려고 애썼지만 만감(萬感)이 교차하여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짐을 챙겼다. 대통령의 낡은 스프링코트를 접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석달 전 남하하던 야행열자의 찢어진 시트에 기대어 이 코트를 덮고 한강철교를 건널 때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 쪽을 바라보던 대통령의 모습이 잠든 얼굴 위에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한강을 건너서 서울로 돌아가게 되다니....... 정말 꿈같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925>

 

17연대의 우리 장병과 미 32연대가 새벽 5시 한강을 기습, 도하(渡河)하여 남산을 빼앗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 제5해병연대와 우리 해병대도 곧 연희고지를 돌파할 것이라고 정일권 참모총장이 보고해 왔다.

 

내일은 추석(秋夕)이다. 우리는 고기를 구하지 못했다. 시장을 보러 나갔던 양 노인과 경호원들이 밤과 배 등 과일과 몇 가지 찬거리를 사왔다. 아무튼 내일은 대통령이 좋아 하는 밤밥을 지어드려야 하겠다. 양 지사 사택에서도 대통령께 드리라고 잣을 보내왔다. 나는 그 댁에서 심부름 온 사람 편에 밤 한 되를 답례로 싸서 들려 보냈다. 옛날 마포장(麻浦莊)에 머물던 시절에도 푸줏간에 고기가 떨어져서 추석날 아침 대통령에게 멀건 국을 끓여 드린 적이 있다. 그때는 그래도 조병옥 박사가 차려 보낸 음식으로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대통령은 조 박사 부인을 조카딸이라면서 친가족처럼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함께 하면서 형제처럼 지낸 동지였기 때문이었다.

 

<926>

 

대통령과 나는 부산역으로 나가서 특별열차 편으로 오전 9시 청도(淸道)를 향해 출발했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넓은 들이 펼쳐지고 그곳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 초가집 지붕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 농민들이 마음놓고 추수를 하게 되었다면 만족해 했다. 기차가 마을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양지 바른 산에서는 성묘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대통령이 그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마미, 금년엔 모든 실향민들과 같이 우리 내외도 평산(황해도)에 있는 고향 선영(先塋)에 성묘를 했으면 좋겠소라고 했다. 어느 덧 기차가 낙동강을 건널 때 대통령은 감개무량한 듯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오전 1045분 기차가 청도에 도착하자 신 국방, 조 내무, 김 교통장관과 몇 사람의 관리가 대통령을 마중했다. 대통령은 자동차로 산비탈에 있는 피난민 촌락으로 갔다. 피난민들은 집과 나뭇잎사귀로 움막을 짓고 지내고 있었다. 전재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놀란 표정이었으나 이내 대통령의 위문 방문인 것을 알게 되자 크게 환영했다. 대통령이 시찰하는 도중 어느 노인은 이제 돌아가게 되었으니 참 고맙습니다라고 대통령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은 약 1시간 동안 구석구석 돌아본 후 마이크를 통해 남북통일과 신생활 운동에 관하여 연설했다.

 

돌아오는 길에 경산(慶山) 근처 강변에서 연합군 병사들이 노역(勞役)하고 있는 곳을 지나게 되자 대통령은 하차(下車)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곳에서는 戰災民들이 줄을 이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더기를 걸친 채 봇짐을 지고 걸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희망에 차 있었다. 경산 전재민 부락에는 사람들이 절반을 돌아가고 일부는 비어 있었다. 대통령은 남아 있는 전재민들을 위하여 약 15분간 연설을 했다. 우리 일행은 점심을 거른 채 오후 330분이 넘도록 간단한 요기조차 하지 못했다.

 

명절날이라 식당은 모두 쉬고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간이점심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해서 그만 두었었다. 밤이라도 좀 삶아 올 걸 그랬지만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대통열은 오늘 같은 명절날 수행원들이 점심을 거르게 된 것을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수행원들은 역에서 사과를 좀 구해 온 모양이다. 대통령 일행은 오후 4시쯤 경산역을 떠나서 심시 과저로 돌아왔다. 우리 내외는 대통령 호주머니 속에 있던 얼마 안 되는 잣을 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지사 관저에는 양 지사 부인의 추석 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은 너무나도 맛있게 음식을 들었다.

 

미 대사관에서 우리가 서울로 타고 갈 비행기를 모레(928) 저녁에 보낼 것이라고 알려 왔다. 이번에는 예정대로 서울로 돌아가게 되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밤을 새워가면서 국민들에게 전할 연설문을 초안했다.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이번 전란 중에 공헌이 많았던 각계각층의 애국동포들과 순국(殉國)한 젊은 영령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외국의 성의 있는 원조를 받기 위해서는 우방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국민적 자격과 새 정신을 가지고 근면내핍의 새 생활을 할 것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또 하루 이틀에 모든 건설과 복구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집 없는 동포들이 다가오는 겨울 잘 넘길 수 있도록 서로 돕자고 호소했다. 이밖에도 대통령은 공직에 몸담고 있는 관리들이 솔선수범하여 집 없는 동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할 것, 식량 문제는 정부가 최선을 다하여 기아(飢餓)를 면하도록 조치하겠으나 월동할 거처(居處)만큼은 동포들이 협조할 것, 부역자 처리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원한으로 앙갚음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자수하는 인민군 패잔병들은 제네바 협정에 의하여 적정한 대우를 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맥아더 장군에게 수여할 훈장이 이제 겨우 준비되었다.

 

<927>

 

저녁 늦게 신 국방이 우리 해병대가 중앙청에 먼저 진입하여 태극기를 계양하여 서울시민들이 환호성을 울리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대통령도 그 공을 높이 치하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만심(慢心)이 가장 큰 적이라는 점을 명심하여 새로이 각오를 다지라고 신 국방에게 주의를 주었다. 대통령은 누구에게나 38선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며 우리나라 국경은 이제 우리의 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라고 번번이 강조하고 있다. 정일권 장군은 국군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38선 이북까지 진격하여 공산당을 몰아낼 것이라고 했다. 워커 장군은 어제 우리 국군을 찬양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동시에 丁 장군에게 연합군의 결정에 의한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38선은 단 한 발짝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미 丁 장군에게 한국군의 北進을 명령한 뒤이다. 물론, 국군은 자기 나라 영토에서 자기 나라 국가원수의 명령에 따를 의무가 있다.

 

<928>

 

UP 통신의 도쿄 특파원이 전화로 대통령과 통화했다. 대통령은 공산당은 무조건 항복해야 하며 공산군의 남침으로 38선이 없어졌기 때문에 한국군은 반드시 북진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통령은 UN 감시 하의 한국 총선거가 1948년 이미 남한에서 실시되었고 이때 1백석의 의석을 북한출신 의원들을 위해 남겨두었기 때문에 이 의석을 채우기 위한 선거가 전쟁 종료 후 실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에 노블이 와서 내일 예정대로 서울로 출발할 것이라고 연락해 왔다. 오늘 저녁 노블이 우리를 서울로 태우고 갈 맥아더 장군 전용기 바탄(Bataan)호가 도착했다고 알려 왔다. 무쵸 대사, 소육린(邵毓麟) 자유중국 대사도 동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유중국은 장제스(蔣介石) 총통 이하 모든 요인들이 진심으로 한국을 돕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고마운 우방이다. [앞으로 계속]

[ 2014-07-12, 11: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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