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통일을 눈 앞에 두었던 시절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⑩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1950102>

  워렌 오스틴 유엔 미국대표는 930일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서 한반도에서 38선이라는 인위의 장벽을 제거할 것을 유엔에 요청했다. “침략군이 38선이라는 하나의 가공적인 선의 배후로 도피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 및 세계 평화에 재차 위협을 주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는 인위적 장벽은 법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존재의 근거가 없다. 이 인위적인 장벽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또는 조정하느냐의 여부는 지금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627일 안보이사회에서 결의한 지령은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연합군의 군사행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폭넓은 것이었다.” 그는 미국의 현실적인 입장을 이렇게 재차 천명했다 

 맥아더 장군은 930일 북괴군 총사령관에게 항복을 권고했다. 그는 성명을 통하여 북괴군의 전투력이 불원간에 전면적으로 궤멸되리라는 것을 경고하면서 유엔 결의가 최소한의 안명손실과 파괴를 희망하고 있으므로 무기를 버리고 적대행위를 중지할 것과 유엔군 포로 전부 및 非전투원 억류자를 전원 석방하여 보호 가료(加療)한 다음 지정하는 장소로 이송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불필요한 유혈과 재산 파괴를 방지할 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성모 국방장관은 북괴측이 맥아더 장군의 항복 요구를 묵살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은 워커 장군에게 38선 이북으로의 진격 준비 명령을 내렸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앞서 국회에서는 930일 신익희 의장 사회로 지청천(池靑天), 정일형(鄭一亨), 서민호(徐珉濠) 의원 등이 발의한 “38선 돌파 작전 요청 메시지를 유엔총회에 보내자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대통령은 공산군에게 피살된 줄 알았던 모윤숙(毛允淑) 씨와 박순천(朴順天) 의원이 살아 있다는 보고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 우리는 다시 부산 임시관저로 돌아왔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유엔군 장성들을 위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나는 양 지사 부인과 손원일(孫元一) 제독 부인과 상의하여 점심시간을 택해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음료, 그리고 약간의 한과(韓菓)를 준비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事緣)이 있었다. 이전 경무대(景武臺)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초청받은 귀빈 중에서는 대통령의 초청을 기념할 목적으로 가끔 포크나 티스푼 또는 기념이 될 만한 작은 집기(什器) 등을 슬쩍하는 일을 종종 보아 왔었다. 부산 임시관저에서는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부족하여 쩔쩔매는 판국인데 그나마 또 없어지는 집기가 생긴다면 어디서 이를 보충할 것인가. 그래서 더운 음식을 피하고 그 대신 오미자차에 잣을 띄워서 음료로 내놓고 손으로 집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손원일 제독 부인이 통바지(몸뻬) 대신 치마를 입고 왔다. 손 제독 부인은 부상병 뒷바라지와 진해 해군공관에서 유엔군 장병들을 접대하느라 늘 분주하여 항상 통바지 차림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바지 부인이라고 불렀다. 오늘 따라 손 제독 부인은 무척 생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집을 나서는 孫 제독이 아무 내색 없이 부인 손에 작은 선물 하나를 쥐어주면서 며칠 다녀 올 터이니 아이들과 집안을 잘 부탁하오하고 그냥 떠났다는 것이다. 후에 손 제독 부인은 남편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인천상륙작전 도중 손 제독의 앞뒤에 있었던 미군 장교와 부관이 모두 전사(戰死)했는데 손 제독은 무사히 살아돌아 왔다면서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기뻐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나의 가슴이 저절로 뭉클해졌다 

 남편이 살아 돌아온 손 제독 부인의 경우는 다행이지만 그렇게 말없이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전장(戰場)에서 산화(散花)한 군인 부인들의 슬픔은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는 이야기에 열중하느라고 대통령이 들어오신 것도 몰랐다. 대통령은 손 제독 부인을 보고 오늘은 왜 바지를 벗고 왔나?” 하시며 웃었다. 평소 대통령은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을 싫어했지만 전쟁의 바쁘게 뛰어다니느라고 손 제독 부인이 바지를 입는 것을 대견하게 여겼다. 대통령은 손 제독 부인에게 부상병들의 병세가 어떤지를 묻고 전쟁미망인들의 생활이 어려울 것을 걱정했다 

 북괴군은 서울 탈출에 앞서서 8천여명의 요인들과 애국인사들을 납치하여 이북으로 끌고 갔고 3천여명을 살해했다고 趙炳玉 내무장관이 보고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다행히 형무소에 있던 2천여명의 애국인사들은 무사히 구출되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예방했다. 아직도 많은 국회의원들의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고 많은 수의 국회의원들이 납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통령은 가슴 아파 했다申 국방이 대전에서 수많은 우리 양민(良民)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보고해 왔다. 천주교 프란치스코 수도원 구내에서 7백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대전에서만 약 6천명이 학살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무척 비통해 했다 

 <106> 

 미군 또는 연합군의 38선 돌파는 소련과 중공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중공은 자기 이웃나라 영토를 제국주의자들이 침략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맥아더 장군은 공산군과 그들의 전쟁시설을 조기에 완전히 정복, 파괴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방송을 통해 응수했다. 임병직(林炳稷) 외무장관은 2일 유엔 정치위원회에서 “38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명하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통치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유엔 정치위원회에서는 즉시 정전(停戰)과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한 소련의 결의안이 부결되었다. 전쟁을 일으켜 놓고 전세(戰勢)가 불리해지니까 정전하여 북괴에게 재기(再起)의 기회를 주겠다는 소련의 심산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원산(元山)을 향해 용약(勇躍) 북진을 계속하고 있다. 원산은 아름다운 명사십리(明沙十里)와 해당화(海棠花)가 유명하다고 대통령이 나에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절경(絶景)인 금강산(金剛山)도 머지않아 가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금강산은 나와 대통령을 맺어주는 데 결정적인 다리가 되었다. 내가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332월 제네바의 한 호텔 식당에서였다. 어머니와 함께이던 나는 웨이터의 요청으로 어느 동양신사(東洋紳士)와 합석을 하게 되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내가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 하고 물었더니 신사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일주일 전 독서클럽에서 받아 보았던 코리아라는 책의 구절들인 금강산양반(兩班)’이 떠 올랐다. “코리아에는 아름다운 금강산이 있고 양반들이 산다지요?”라는 나의 말에 신사는 깜짝 놀라면서 반가워했다. 후에 대통령은 내가 금강산과 양반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유엔에서 필리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들이 소련 블록의 제안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유엔군은 북괴군의 저항을 분쇄하고 全 한반도를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이다. 필리핀의 로물로(Carlos P. Romulo) 외상은 대통령과는 각별한 친분이 있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반공투사(反共鬪士).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워싱턴(Washington, D.C.)에서 로물로 씨와 우리는 바로 이웃에 살면서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 당시는 로물로 씨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조국의 독립을 찾기 위하여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나라는 달랐지만 모든 면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며 함께 투쟁한 동지였다. 

 로물로 씨 부인과 나는 많은 손님을 치를 때는 서로 모자라는 그릇을 빌려 쓰기도 하고 어쩌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나눠 먹기도 했는데, 로물로 씨가 한국 음식을 좋아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로물로 씨 댁에서 전지(剪枝) 가위나 연장을 빌리러 오면 가끔 대통령이 직접 가서 정원수(庭園樹)를 다듬어주기도 하고 창틀이나 가구 같은 것을 손보아 주기도 했다. 로물로 씨는 대통령을 큰 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따랐는데 대통령은 모든 일에 유장(悠長)하거 낙천적인 로물로 씨의 인품을 사랑했다. 이제 그 로물로 씨가 강인한 투지와 수단을 갖춘 반공투사로 아시아의 반공을 위하여 유엔에서 임병직 씨와 손을 잡고 공산 블록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다니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모윤숙 씨가 단정하고 말쑥한 차림을 하고 생기가 도는 모습으로 우리 임시관저를 찾아왔다. 전쟁 중 잃어버렸던 외딸 경선이를 찾았다고 대통령께 감사드리러 온 것이다. 지난번 서울 경무대에서 지저분한 차림으로 대통령을 찾아뵙고 자기를 버려두고 후퇴했다고 원망하면서 딸을 찾아내라고 떼썼던 일을 사과하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딸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퍽 반갑고 기뻤다. 지난번 서울 환도식이 끝난 뒤 경무대로 찾아온 모윤숙 씨가 대통령에게 원망 섞인 말을 했을 때 대통령은 그래, 내가 죄가 많아. 딸은 꼭 찾아 줄게. 우선 윤숙이의 건강부터 회복해야 하겠다고 위로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전쟁 중에 잃어버린 딸을 정말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이제 딸을 찾았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어떻든 모윤숙 씨는 잃었던 딸을 찾았으니 기쁘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 가족을 잃어버린 채 고통 받고 있을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대통령은 모윤숙 씨에게 내 죄가 많아, 내 죄가 많아라고 말했지만 정말 죄를 지은 자들은 공산침략자들이다. 나는 양민을 학살하는 그들이야말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전란(戰亂) 수습을 위한 대통령의 요청과 맥아더 원수의 주선으로 한국의 戰災民을 위해 4천만 달러에 달하는 의료품과 식료품, 천막들이 이미 한국을 향해 출발했다고 경제협조처 앤더슨 소장이 알려 왔다. 대통령은 戰後 복수사업에 최선을 다 할 것과 惡을 惡으로 갚는 일은 正義와 人道에 어긋나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사로운 원한으로 분을 푸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경무대는 유리 석장만 깨진 채로 비교적 피해가 적다고는 하지만 모든 하수도 시설이 막혀있고 내부가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서 총무처에서 대대적으로 수리해야 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경무대에 되도록 수리비를 들이지 말고 꼭 필요한 곳만 손을 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오늘 서류를 정리하다가 대통령이 써 놓은 시 한 편을 발견했다 

 “며느리는 생선 바구니를 이고 시어머니는 소를 몰고

낙동강 십리 길에 장 보러들 가는구나

아우 형 전쟁에 다 나가고 전쟁은 상기 아니 멎고

  언젠가 진해 부산 길에서 늙고 젊은 부너자들이 낙동강 장터를 향해 가는 것을 보고 대통령이 지은 詩였다.

  <107>

  대통령은 38선 이북에서 전개될 맥아더 장군의 전략과 워커 장군의 전략을 여러 면에서 검토해 온 丁一權 참모총장의 의견을 심각하게 청취했다. 대통령은 丁 장군과 비행기로 동부전선을 시찰한 후 서울로 비행하여 여의도에 내린 다음 경무대로 향했다. 서울 시가지는 지난번에 왔던 때보다 훨씬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활기를 띄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국군장병들이 시민들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대통령을 보자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경무대는 그 동안 청소가 되어서 그런대로 정돈되어 있다 

 오후 늦게 신 국방이 백인엽 준장을 데리고 찾아왔다. 백인엽 장군은 이번 서울 탈환에 세운 공로로 승진하여 별을 달았다申 장관은 백 장군을 정보국장으로 임명했다고 보고했다. 백 준장은 이어서 지난번 부산에 있는 자기 어머니에게 베풀어준 대통령의 후의(厚誼)에 감사 드리려 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지난 92117연대가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전투에 참가하기 위하여 군함을 타고 부산을 떠날 때 대통령과 나는 저녁 8시반까지 함상에서 17연대의 우리 아이들을 격려하고 돌아왔었다. 싸움터로 가는 우리 아이들이 탄 배가 부산항을 떠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대통령이 나에게 “20대에 홀로 된 백 대령의 어머니가 선엽(善燁)과 인엽(仁燁) 형제를 고생하며 길러서 이제 두 아들을 모두 싸움터로 내보내고 며느리와 함께 판잣집에서 쓸쓸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홀어머니를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황 비서 편에 과일 한 바구니를 백 대령 집으로 보냈는데 이 때 황 비서가 백 대령의 어머니가 기거하고 있는 판잣집을 찾는 데 무척 애를 먹었으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보고했었다 

 대통령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友愛)하는 사람을 재주나 능력있는 사람보다 좋아 했고 책임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재능과 학식보다는 인간됨을 더 중시했다. 늙고 병든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하며 동포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겠느냐고 항상 말했다. 丁一權 장군도 효자라는 말을 들었다. 대통령은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 

 정기섭 박사와 함석훈 씨가 찾아와서 공산당에 진심으로 협조했던 죄가 무거운 부역자들은 대부분 도망해버렸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억지로 부역했거나 협조한 사람들이니 관대하게 봐주어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손원일 제독도 같은 의견을 건의해왔었다. 부역자 처리문제에 있어서는 대통령도 가능한 한 관대히 처리할 것을 지시했었다 

 대통령은 황해도 출신인 함석훈씨에게 황해도가 탈환되면 바로 그곳에 가서 민심을 수습하도록 지시했다. 아직도 서울시 주변의 산속에서는 공산당들이 학살하고 간 연고자를 찾기 어려운 시체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무참히 죽음들 당하거나 납치된 인구는 수만 명에 달하리라고 하는데 戰亂으로 서울시의 인구가 줄었다는 보고다. 

 납치된 사람들 중에는 서울에 남아있던 외국인 선교사와 공관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수도방위를 담당하고 있는 17연대가 그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서울시 여러 곳에서 청소작업을 돕고 있다는 보고에 대통령은 크게 기뻐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은 전쟁으로 인해 부상한 국민들을 치료해 줄 것을 지시했었는데 보건부에서는 중환자를 서울대학병원에 입원시키는 한편 서울시내 여러 곳에 치료소를 설치하였고 각 지방에도 전담의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오늘 대통령을 크게 노하게 한 것은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그들이 문화재를 불 지르고 파괴하며 강탈해 갔다는 이병위 문화재관리국장의 보고였다. 대통령은 앞서 진주의 촉석루가 이번 전쟁에 소실되었다는 보고에 크게 침통해 했으며 서울탈환 후 李 국장에게 문화재의 실태를 조사 보고하라고 지시했었다. 대통령은 촉석루 등 복원이 가능한 문화재의 복구공사계획을 세우도록 李 국장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계속]

[ 2014-07-21, 22: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