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의 성공과 힘겨웠던 미국생활-18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18/입사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창고 선반에서 물건을 내리다가 무거운 것이 머리 위에 떨어져 상반신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다행이 뇌와 두개골에는 이상이 없었고 두피가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매었다..

李明山(마이클 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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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해 정월 가족을 서울에서 데려왔다. 도착한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직장 부근에 아파트를 구하고 본격적인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는 세탁소에서 옷 수선하는 일(Seamstress)을 했고, 딸은 숙명여고 2학년 재학 중에 왔기 때문에 휘튼(Wheaton)에 있는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두 아들은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에 각각 편입했으나 영어가 딸려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저들은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갔고 불과 2~3년 사이 졸업할 때 모두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딸의 경우 영어가 모자라 학과 진도를 따라갈 수 없던 아이가 이민 온 지 불과 1년 반 만에 졸업을 하는데, 400명 졸업생 중에 2등(magna cum laude)을 했다. 딸은 메릴랜드(Maryland) 주지사의 표창장도 받고,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로부터 입학허가서와 장학금 통지서를 받았다. 펜실베니아 대학교는 미국 동부 8개 아이비리그(Ivy League) 명문대학 중 하나다. 가뜩이나 경실이는 고교 재학 중 워싱턴 수도권에서 제일 큰 한인 침례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여 교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인데, 이 소식을 듣고 딸과 나를 싸잡아 칭찬하고 축하해 줄 때 나는 눈물이 나도록 자식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큰아들 욱이는 후에 메릴랜드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석사 학위를, 그리고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교에서 인체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후에 NASA에서도 일을 했다. 지금은 국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Health)에서 일개 프로젝트(project) 계약회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막내아들 석이는 메릴랜드 주립대학교와 同校(동교) 의대를 졸업하고 조지 워싱턴 대학교 의대에서 레지던트(resident) 과정을 마친 후, Washington Hospital Center에서 폐질환 전문의 수련과 위급환자 전문의 수련을 끝냈다. 지금은 버지니아州 컬페퍼(Culpeper)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한동안 3년마다 의료진이 선거로 선출하는 의료원장을 역임했다.
  
  힘겨운 육체노동
  
  백화점 점원의 일이란 참으로 고달픈 직업이었다. 오전에 15분 휴식, 오후에 15분 휴식, 그리고 30분간의 점심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했다. 어떤 날은 8시간 혹은 12시간을 일해야 했다. 오후가 되면 종아리가 퉁퉁 붓고 밤에는 신음소리를 내며 잠이 드는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육체노동을 해본 일이 없는 나는 참으로 힘에 겨웠다. 이런 일이나 하려고 내가 이민을 왔나 싶어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육군대령 출신이 주유소에서 일하고 대학교수 출신이 세차장에서 일하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나의 처지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물건이나 파는 점원 노릇으로 세월은 보내기에는 나의 경험이나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도 참고 기회를 기다리자면서 열심히 일했다.
  
  입사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나는 창고 선반에서 물건을 내리다가 무거운 것이 머리 위에 떨어져 부상을 입고 피가 낭자하여 상반신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동료들이 구급차를 불러 급히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고 총지배인이 뒤따라왔다. 응급실 의료진이 나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서 치료를 했다. 다행히 뇌와 두개골에는 이상이 없었고 두피가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매었다고 했다. 붕대로 머리를 온통 휘감았기 때문에 중상환자처럼 보였다. 의사는 내가 일주일에 두 번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며 두 주일간 직장에 가지 말고 집에서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를 아끼는 총지배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 이것은 일을 하다가 다친 것이기 때문에 公傷(공상)이야. 치료비도 회사에서 부담하고 자네가 집에 있는 동안에도 완치될 때까지 급료도 정상으로 지급되니까 걱정하지 말게. 의사는 두 주일간이라고 했으나 두 주일 아니라 한 달간이라도 집에서 쉬고 완치가 되면 직장에 나오게.”
  
  나는 “고맙습니다, 총지배인님” 하고 대답을 했다.
  
  그날 오후 2시에 퇴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도 알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직장에 다시 나가 영업마감 시간까지 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은 채로 일을 했다. 다음 날도 정각에 출근을 했고 정상근무를 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직장동료들이 나를 “바보 미련둥이, 집에서 쉬지 왜 나오느냐, 너는 곰 같은 놈이야” 하며 나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웃었다.
  
  총지배인은 “Are you stupid or crazy?” (자네는 바보 아니면 미치광이야?) 하면서 나의 태도를 비정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전과 달랐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일개 종업원으로 대하지 않고 ‘성실한 한국인’으로 대해 주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분명히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비록 저들의 표준에는 맞지 않았으나, 한국인의 성실한 일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계속>
[ 2014-10-10, 03: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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