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요원으로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20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20/나는 예외적으로 조지 H.W. 부시에 의해 직접채용 됐으며, 북한전문가로 활약한 것이 우리 기관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20/나는 예외적으로 조지 H.W. 부시에 의해 직접채용 됐으며,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서 나의 결정적인 역할은 늘 각광을 받았다

李明山(마이클 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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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출근 날에는 보안관계 교육으로 시간을 보냈다.
  
  첫째, 어느 누구에게도 단순히 연방정부 직원으로 행세할 것, 매일 출퇴근할 때 동일한 루트를 사용하지 말고 수시로 바꿀 것. 둘째, 같은 사무실의 직원일지라도 사무실 밖에서는 서로 아는 체 하지 말 것. 셋째,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자료나 서류는 절대로 개인소지할 수 없으며, 사무실 밖으로 지참하지 말 것. 넷째,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기밀에 속하는 정보는 죽은 후에라도 함구할 것 등이었다.
  
  첫날에 신분증이 발급되었고 사무실 출입요령에 대해 연습을 했다. 출근할 때 사무실까지 가는데 다섯 번의 보안절차를 거쳐야 했다. 나는 그 절차를 공개할 수가 없다. 사무실에는 이미 몇 사람의 직원들이 있었고 나의 입사를 환영해 주었다. 날이 갈수록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동료 직원들과 북한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내가 작성하는 보고서에 반영하여 과장과 분석관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선 북한의 노동당과 정부의 조직과 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상호관계, 특히 대남공작기구의 편성과 그들의 활동실태, 해외공작활동, 해외공작원들의 상이한 소속과 그들의 공작대상,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전용 隱語(은어)와 略語(약어) 등을 설명해 상관들을 놀라게 했다. 내가 입사하면서 우리 기관의 대북공작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해외출장을 나가기 시작했고 향후 20여 년간 CIA의 공작국(DDO) 내에서 우리 부서가 최우수 인간첩보(Human Intelligence) 수집기관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나는 존 더치(John Deutch)가 CIA 부장으로 있을 때 ‘Exceptional Human Intelligence Collector’라는 표창장을 받았다.
  
  나는 1976년 6월~2000년 2월까지 23년 8개월 간 CIA에 재직하면서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그 비밀을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 그 비밀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사건이나 기밀제한에 속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 내용들을 일부 회고해 보겠다.
  
  나는 이 책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기록할 뿐이며,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 우선 2000년 2월29일 내가 은퇴하던 날 조지 테닛(George J. Tenet) 부장으로부터 받은 공적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미국 연방정부의 모든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귀하가 이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한 공적을 인정하며, 미국정부의 높은 이상과 전통을 지키고 이제 명예롭게 은퇴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바이다.>
  
  나는 40년에 가까운 미국 연방정부 재직기간, 동서냉전 시대에, 자랑은 아니지만, 은밀히 지구를 누비고 다니면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해치는 많은 역사적 대형사건에 개입해 목숨을 걸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총 24개 국가에서 일하면서 보여준 능력과 열성으로 14개의 (Exceptional Performance Award) 공적훈장과 수많은 표창장을 받았다. 미국에 입국하기 전, 서울에 있는 502군사정보단(1958~1974년) 재직 시 450여 명의 북한 귀순병과 귀순민간인 그리고 간첩들을 심문했다. 韓美 양국정부는 1968년 청와대 기습을 목적으로 침투한 북한 특공대 김신조와 1971년 북한 조종사 박순국을 심문할 때 보여준 나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
  
  나는 예외적으로 조지 H.W. 부시에 의해 직접 채용됐으며, 북한전문가로 활약한 것이 우리 기관 내에서는 특이한 화제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서 나의 결정적인 역할은 늘 각광을 받았다. 우리 기관과 미국 의회와 한국정부로부터 특별한 주목을 받았으며, 때로는 서울의 주요 일간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했고,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축하를 받기도 했다.
  
  내가 장기간 해외근무하고 있을 때 나의 상관들은 매년 근무평정서에서 나를 주재국 정부와의 연락업무에서 주역(mainstay)을 했다고 지적했으며,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며 역사교범이라고 치하했다. 그리고 1995년~2000년까지 워싱턴 본부에 돌아가 근무할 동안에는 국무성과 국방성, 그리고 NSA와 FBI와의 북한관계 대외 협력으로 우리 기관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진실로 높은 수준의 기품과 재치를 발휘한 미국 정부의 보배(National Treasure)이었다고 치하했다.
  
   <계속>
[ 2014-10-12, 22: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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