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對南공작 활동(上)-34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34/북한의 대남 공작 기관은 초창기 인민군 내 정찰국이 있었고, 당내에 연락부가 있었으나 한반도 공산화 통일 전략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분야별 방대한 조직으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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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는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에 정찰국이 있었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그리고 35호실 네 개 조직이 있었다. 이들 조직 외에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는 중앙당을 제외한 모든 黨(당) 조직, 행정기관, 기업체, 사회단체에 공개 및 비공개 조직망을 두고 인민의 사상 감시와 불평·불만자, 반체제 분자들을 색출하는 일에 종사했다.
  
  해외에 나가 있는 모든 공관에는 반드시 보위부 성원 한 사람이 배치되어 있고, 심지어 어선과 상선, 화물선에도 보위부 성원이 동승한다. 평양에 있는 외국 공관에 배치된 경비원들과 외국인들이 투숙하는 호텔의 여자 종업원들도 모두 보위부 소속이다.
  
  전국에 12개 정치범 수용소 관리도 보위부가 담당한다. 중앙당에 속한 모든 조직과 인원들에 대한 사상 감시는 특별히 철저하다. 이를 위해 ‘창광분주소’라는 가명 기관을 두고 김정일이 직접 지휘했다. 보위사령부는 최고 상부에 국방위원회로부터 최하 말단에는 인민군 중대에 이르기까지 軍 내부의 사상 감시를 담당하고 있고, 필요하면 민간인들에게까지 손을 뻗쳐 무시무시한 인민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공작 기관은 초창기 인민군 내 정찰국이 있었고, 당내에 연락부가 있었으나 한반도 공산화 통일 전략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분야별 방대한 조직으로 확장됐다.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위협적이냐를 분별하기 힘들고 좌우간 대한민국 정부나 국민들은 이들의 활동과 수법, 목적에 대해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북한의 대남공작기구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기능이 어떻게 강화되었는지 검토해 보겠다.
  
  정찰총국 창설 이후의 조직개편
  
  (1) 정찰총국

  
  ▲제1국(작전국): 병력은 약 5000명. 사상이 투철하고 신체 강인한 고졸 학생 중에서 선발. 작전국의 임무는 북한 내에 있는 모든 대남 공작기관 요원들과 공작원들을 훈련하는 학교, 즉 가명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운영하며 여러 가지 단기 특별코스가 있으나 정규과정은 3년 내지 6년의 코스가 있다. KAL-858기 폭파임무에 투입되었던 김현희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작전국은 대남 침투 공작원들을 위한 작전지원과 기술지원을 제공한다. 공작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기재, 통신장비, 무기, 고성능폭약, 시한폭탄, 암호조직, 쾌속정, 어선 화물선으로 위장한 공작선 제작, 잠수함, 독약, 독침, 夜陰(야음) 쌍안경 등을 해외에서 구입하거나 자체 연구 개발하고 제작을 한다. 아웅산 폭파에서 사용한 폭약과 원격장치, 김현희가 사용한 액체 폭약과 라디오 시한폭탄, 강릉에 나타났던 잠수함 등이 모두 작전부에서 연구 개발한 것들이다.
  
  동해안에 나타났던 공작선과 잠수함 등이 어쩌다 한번 나타난 것처럼 생각하는데, 과거 수십 년 동안 남한을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북한은 대남공작을 위해 그런 잠수함 수십 척을 보유하고 있다. 작전국은 그 자체로 요원이나 공작원을 남한에 침투시키지 않는다. 다만 잠수함이나 공작선으로 침투하는 대외연락부(225국으로 개편) 공작원들을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예를 들면 강릉에 나타났던 잠수함의 젊은 전투원들은 작전부 소속이었다. 그들은 공작원이 아니다. 그들은 공작원을 호송하는 전투임무만 받고 공작내용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과거 작전부를 총지휘한 사령관은 오극렬 대장이었으며 작전부 대원들은 군관 계급을 받는다. 작전에 실패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호송하는 연락부 소속 공작원들의 신분을 은폐하기 위해 군인으로 행세하며, 남한에서 체포되거나 탈출이 불가능할 때 무조건 자결하도록 되어 있다.
  
  작전국은 현재 남한에 공작원들을 침투시키기 위해 사리원연락소, 개성연락소, 평강연락소 등 육상침투 대기소를 운영한다. 동해안에 원산과 통천, 서해안에 남포 몽금포 해주 해상연락소를 운영하며 호송작전 임무가 떨어지면 일단 영해를 벗어나 공해로 들어갔다가 남한 해안의 경비가 허술한 곳에 접근해 공작원을 내려놓거나 싣고 돌아간다. 상륙지점은 멀리 제주도까지 남한에서 활동 중인 공작원들이 사전 답사해서 결정하고 北에 보고한 장소가 된다.
  
  이들이 사용하는 공작선은 잠수함, 어선, 화물선으로 위장되어 있으며, 갑판 밑에는 무반동포나 기관총 같은 자동화기로 중무장 되어 있다. 작전국의 임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414 연락소’의 운영이다. ‘414 연락소’는 남한에서 활동 중인 공작망과의 모든 무선통신을 담당하며, 공작지령을 보내고 공작보고를 받는다. ‘414 연락소’는 또한 남한의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암호를 해독한다. 심지어 경찰이나 보안기관이 對간첩작전 중 교신하는 내용까지 모두 포착한다.
  
  ‘414 연락소’는 전국 50여 곳에 송수신 연락소를 운영한다. 지원본부인 ‘314 연락소’에서는 공작용 무기, 위조 신분증, 통신장비, 위조화폐를 제작하고 제공한다. 작전국은 또한 평양에 ‘915 병원’을 자체로 운영한다. 그리고 작전국은 자체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에 무기를 수출하는 청송연합회사를 운영한다.
  
  ▲제2국(정찰국, 일명 ‘586부대’): 병력 약 4500명.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에서 이탈해 정찰총국에 편입됐다. 원래 임무는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하는 군사정보 수집과 분석이지만 지금은 그 기능에 추가해 북한이 무력에 의한 한반도 적화통일을 시도할 경우 비정규군 투입 및 그 전략과 작전을 지휘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남한 내에서의 정찰활동은 전후방에서 이석기 방식으로 게릴라 전투의 공격목표가 되는 급소, 즉 유류 탱크, 도시가스 시설, 배전시설, 교량, 지하철, 통신 시설, 핵발전소, 전략 산업시설, 비행장, 항만시설, 대형건물 등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정찰하고 산악지대 침투로 개척을 위한 답사를 한다. 이 작전을 위해 현재 전방지역, 동해안 지역, 서해안 지역 정찰 파견 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잠수함을 이용하는 제22전대(호송 잠수함 부대)를 운영한다. 제22전대는 현재 상어급 잠수함과 유고급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전방사령부였던 1, 2, 5집단군 산하에 徒步偵察所(도보청찰소)를 두고 무장 공작조를 남한 전방에 침투시켜 정보 수집과 기습 작전을 일삼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것이 모두 정찰국에서 하는 공작이었다. 현재는 정찰국 직속 4개 저격여단이 있으며 전방 5개 군단에 각 500~600명 규모의 정찰대대(舊 도보정찰소)를 운영하며 해군에서도 1개 정찰대대를 운영한다. 198연락소는 첩보수집 분석을 담당하며 907부대는 남파되는 공작원들이 남한 실정을 훈련하는 소위 以南化(이남화) 교육을 받는 곳이다. 모두 정찰국의 작전지휘를 받는다. 정찰국은 또한 ‘마동희 군관학교’를 운영하며 2~5년간의 게릴라 훈련을 실시하고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병력은 현역 장교와 사병 중 우수한 대원을 차출한다.
  
  1960년대 중반 전북 진안에 침투했던 283부대 무장게릴라가 정찰국 소속이었고, 1967년 고랑포에 기습해 미군과 국군을 사살한 사건도 정찰국에서 한 소행이다. 1968년 1월21일 124부대의 김신조 특공대가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사건과 같은 해 11월2일 울진·삼척에 약 120명의 게릴라가 침투한 것도 다 정찰국에서 작전한 것이었다.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도 정찰국의 소행이었다. 특히 2010년 3월26일 백령도 근해에서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폭침되었다. 장병 40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것도 정찰국의 소행이었다.
  
  1969년 인민군 지상군이 개편될 때 이전까지는 17공수여단이 정찰국의 작전지시를 받는 특수부대로서 남한에 사회혼란이나 민중봉기 같은 결정적 사태가 조성되면 후방에 투입되어 비정규전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1969년 1월 17공수여단은 해체된 124부대와 283부대의 병력을 흡수, 특수 8군단으로 개편됐다. 특수 8군단은 총참모부 작전국이 아니라 정찰국의 작전지시를 받는 비정규전 특전대로 남한 후방의 교란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대원들은 국군 복장과 국군 편제의 무기를 가지고 훈련했다. 이 부대는 세계 최고의 정예 자살특공대이다.
  
  특수 8군단은 1978년 병력을 1만5000명에서 4만1000명으로 증강했다. 1983년 병력을 다시 8만 명으로 증강하면서 경보병 교도지도국으로 바꾸었다. 지휘부는 평남 덕천에 있으며 예하에 총 25개 특전여단이 있다. 총병력은 약 12만 명으로 추산되며 인민군 총병력의 10퍼센트에 해당된다. 25개 여단 외에도 공군 저격여단, 해상 저격여단, 여군 특수공작대인 38항공육전여단, 그리고 스키여단 등이 있다. 여단장의 편제계급은 대좌 아니면 소장(국군의 준장)이다.
  
  과거 북한의 대남공작 총책 김용순과 인민무력부장 김일철이 제주도를 다녀간 적이 있다. 이와 함께 네 척의 북한 상선들이 유유히 제주 북쪽의 우리 영해를 통과했는데, 당시 정부나 국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이 판단해보길 원한다. 북한은 우리 국군의 대응태세와 속도를 시험했고 국민 반응을 탐색한 것에 틀림이 없다. 제주도는 우리 영토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안보 취약 지역이다. 제주도는 북한의 대남공작 정찰국이 최우선 표적으로 작전계획을 세운 지 이미 오래됐다.
  
  과거에도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규모 좌익폭동이 일어난 곳이 제주도이다. UN 감시하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실시한 1948년 5월10일 총선을 방해하려고 김일성 지령과 남로당 합작으로 제주도 좌익세력을 동원해 4·3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당시 진압작전 중 희생된 폭도들의 명예를 회복한다고 보상금까지 주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하는 일들이 북한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제3국(해외정보국): 병력은 본부에 약 500여명. 원래 명칭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대외정보조사부(조사부)였다. 35호실로 개칭되었다가 청찰총국이 창설되고 그에 흡수되면서 해외정보국이 됐다. 기본 임무는 말 그대로 대외정보 수집인데, 특히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움직임, 미국과 일본의 對한반도 정책, 대북정책, 韓美유대관계, 국제정세와 동향 등을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
  
  조사부 당시 최고 책임자는 과거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를 역임했던 권희경이었다. 그러나 권희경은 KGB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1997년 11월 처형됐는데, 이후 조사부가 35호실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는 내부에 남한, 아시아, 일본, 유럽과 미국을 담당하는 네 개의 공작 부서가 있고, 정보 분석, 암호처리, 자료정리를 담당하는 세 개의 분석 부서와 함께 인사, 조직, 검열, 자료연구를 담당하는 네 개의 지원부서가 있다.
  
  해외 공작거점은 도쿄, 오사카, 북경, 연길, 상해, 심양, 마카오, 방콕, 홍콩, 쿠바, 시리아, 인도네시아, 비엔나, 파리,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지에 있으며 미국, 일본, 남한에는 정보를 수집 제공하는 첩보망 점조직이 있다. 대원들은 주로 평양외국어대학이나 군사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한 학생들 중에서 선발하며, 이외에 각급 군부대의 무술 군관들 중에서 선발한다. 공작 교육훈련은 대체로 점조직 초대소에서 실시한다.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조사부 산하에는 ‘모란꽃 소대’라는 여성 특수부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정부에서는 이 부대를 ‘꽃뱀부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일개 소대 병력의 작은 규모였으나 점차 대규모의 해외공작부대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젊고 미모가 출중한 여성들을 모집해 비밀 초대소에서 공작교육과 외국어교육을 받고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에 나가 정보수집 활동을 했다고 한다. 유럽 주요도시에서 유흥업소 출입과 식당 맥주홀 같은데서 예행연습도 하고 자신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공작임무 파송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들의 접근대상은 정부, 정보기관, 군부, 첨단산업 실세들이다. 시작은 파출부나 종업원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가 정보수집의 대상으로 인정이 되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내연 관계를 맺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北에 있는 본부에 보고하도록 되어있다. 한국에서도 한때 현역 육군 장성 한 사람이 北에서 내려온 ‘꽃뱀’에 물려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북한간첩으로 체포되었던 무함마드 깐수(정수일)도 이 기관 소속이었다. 35호실의 또 다른 임무는 대남테러와 납치공작이다. 1977년 자그레브서 백건우와 윤정희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것과 1983년 10월9일 아웅산 테러로 한국정부의 고위직 17명과 현지인 네 명이 폭사를 당한 것도 조사부의 테러 공작이었다. 1987년 11월29일 KAL-858기를 폭파해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행위도 조사부의 공작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먼 타국에서 피땀 흘려 일하던 노동자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하늘이 용서할 수 없는 범행을 지시한 사람이 김정일인데 그 증인이 아직도 살아있다. 미국 정부가 확인 재확인해서 국무성과 의회가 1988년 2월4일 전 세계에 발표했으나 남한의 친북 세력들은 여전히 KAL-858기 폭파 사건이 남한의 조작이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더 구체적인 것을 알고 싶으면 1988년 2월5일자 서울의 중요 일간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를 읽어보면 될 것이다. 북한 인민을 자신들의 체제에 거슬린다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고, 매년 수백 명씩 처형을 하며, 자신은 초호화 생활을 하면서 인민은 몇백 만씩 굶겨 죽였다.
  
  말로는 같은 동족이라고 인정하는 남한 국민의 생명을 그토록 무참히 살해한 김정일을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의 공동 수상자가 안 된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김대중의 정신 상태를 우리가 한번 분석해야 한다. 남한 언론에서는 꼬박꼬박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이라고 정중하게 경칭을 달아주었다. 김정일은 철없는 어린 자식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2011년 12월17일 사망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계속>
[ 2014-11-03, 10: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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