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모든 국민이 ‘君子’가 되었을 때나 가능한 체제이념
교양강좌/理念이란 무엇인가 (5) 좋은 나라와 국가지도이념

朴京範(소설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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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좋은 나라와 국가지도이념
 
이념을 추구하는 목적은 하늘의 뜻이 땅에 내려오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그전까지는 하늘에서 이루어졌던 일이 땅에서 이루어져 가는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근세에 이념의 시대가 오기 전 중세까지 인류사회의 통치체제는 봉건주의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봉건주의는 중세시대의 체제로 일컬어지고 있으나 이러한 신분제에 의한 통치체제는 오래된 것이다.
귀족(또는 왕족)의 대가족과 그 하인(또는 신하)들로 구성되었던 생활공동체에서의 한 개인의 지위는 어느 신분으로 태어나느냐에 의해 정해진다. 즉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상태로서 거주하는 ‘하늘’에서 거의 전적으로 일생의 설계가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지상에서 하늘의 뜻을 충실히 받아 행하여야 좋은 국가
 
국가는 하늘의 위임을 받아 지상에서 영혼집단을 맡아 기르는 체제이다. 말하자면 국가의 지도주체는 神(신)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중간관리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로부터 신임 받는 중간관리자는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할까. 첫째로는 최고관리자에 대한 완전한 충성이 있어야 하겠고 두 번째로는 재량권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권한 내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일일이 최고관리자에게 물어서 결정하려 하는 중간관리자는 그다지 신임과 총애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최고경영자를 향한 충성이 변함없는 전제하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거의 대부분을 재량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최고경영자를 편하게 해주는 중간관리자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神이라는 최고경영자로부터 영혼집단을 위임받아 구성원 각자의 지상에서의 탄생목표를 이루도록 하여 돌려보내는 일을 담당하는 국가 또한,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재량권의 범위라고 할 수 있는 지상에서의 業(업)을 최대화하여야, 神에게서 총애 받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가사회가 정의로워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어느 한 쪽에서 惡(악)을 행하여 상대방에 피해를 입혔다면,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業에 의한 응보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늘의 통치원리가 적용하도록 하는 ‘하늘의 수고’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인간사회에서 가해자를 엄벌한다면, 지상의 국가의 재량권을 활용하여 하늘의 수고를 던 것이 되므로 神에게서 총애 받는 좋은 나라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신분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 왕족과 귀족의 세습제로 인해, 영향력이 큰 인물이 되거나 좋은 환경의 삶을 보상받을 자를 하늘에서 일일이 선별하여 내려 보내야 한다면, 이러한 국가는 마치 자기 관할하의 일처리를 일일이 최고경영자에게 물어보고 행하는 무능한 중간관리자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구성원이 국가 내에 태어난 이후에, 이들 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해주거나 좋은 생활환경을 보상해줄 대상을 지상의 체제 내에서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좋은 국가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주의 신분사회 벗어나기 위한 가치관

이제까지 출생신분에 의해 얻어졌던 權利(권리)를 지상에서의 노력으로 대치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상속받은 상태에서 머무르지 않고 소유한 자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리하여 資本(자본)이 身分(신분) 대신에 사회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 자본주의가 신분제도 철폐의 지도이념으로 도래한다. 신분이 지상에서의 노력으로 더 올릴 수 없는 반면에 자본은 지상에서의 노력으로 더 커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는 사람들이 지상에서 이익을 내는 과업에 활발하게 종사함으로써 天上에서 했었던 신분선택이 지상에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지상의 노력을 신분상승에 반영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科擧制度(과거제도)에 의한 실력에 따른 관리 선발이 그러하지만 이것은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자들에게로 범위가 한정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모든 생활인들에게 신분의 한계를 지상에서 극복할 길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도 남아있는 재산의 상속제도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봉건주의 시대의 慣性(관성)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인간이 출생상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애 중에 최대의 노력을 할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지상에 태어나 영적수련에 보다 충실한 삶을 살게 되는 변화이다. 그 전까지의 신분제 사회가 인류사회의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각자에게 인생목적의 최대치를 얻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행하는 靈性科學(영성과학)에 따르면 인간영혼의 진화과정은 다음의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국가사회에 각각의 단계에 해당하는 영혼이 대다수를 점유할 때 그 국가사회에 적합한 체제이념도 변화해 나아간다.

1. 생존지향의 삶 : 동물과 공통되는 생존형의 삶으로서 지상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영혼을 단련하는 것이다. 원시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영혼이 이 단계에 있는 시대이다.

2. 규율형의 삶 : 올바로 살기 위한 규칙에 충실히 따르며 절제하는 중에 영적성장을 하는 단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영혼이 이 단계에 있었던 시대가 봉건시대이다.

3. 성취지향의 삶 : 자기의 노력으로 재물과 명예 등을 추구하여 인생 중에 성취감을 얻을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이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지위를 추구하는 목표는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모두에게 해당하는 목표는 충분한 재화를 획득하여 행복한 삶을 살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에 이 단계에 이르는 영혼들이 많아지는 시기에 자본주의는 태동하게 된다.

4. 관계지향의 삶 : 여기서 추구할 단계는 인간 삶의 진정한 목표이기도 하다. 물질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인연을 중시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향상하는 목표를 가진 인생을 산다. 과거 생존경쟁의 과정과 성취경쟁의 과정에서 쌓았던 악업을 해소하는 것도 이 過程(과정)에서의 課業(과업)이 된다. 더불어(social) 지냄을 중시한다는 의미의 사회주의는 서로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인간사회의 인연관계 향상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는 이념이다. 사람들이 거의 자기의 이익에 초연하고 타자본위의 함께 나누어 사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때 이러한 체제가 가능하다.
 
사회주의는 인간 사이의 인연을 최대한 好轉시키기 위한 가치관
 
이러한 봉건주의 -> 자본주의 -> 사회주의로의 변천은 인간 공동체 구성원의 대체적인 영적발달의 수준에 맞는 영혼교육환경의 변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가 얼른 상위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 당연한 희망이지만 중간의 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제대로 수료하지 않고서 상위의 과정에 들어가는 것은 폐해를 부른다. 개인에 비유하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을 중고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학생이나 성인의 대우를 한다고 하여 그 학생이 올바로 자랄 수 있는가 따져보면 된다.

미성숙한 국가사회가 섣불리 지상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부정하고 天上의 본질적 가치를 따르기를 제도화한다고 하자. 국가사회의 제대로 된 성장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퇴보의 위험을 맞는다. 그러한 현상의 초기단계는 우리사회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학생을 평가하는데 자본주의적 요소인 성적경쟁보다 사회주의적 요소인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기준으로 한다하여 인성평가와 봉사활동실적을 입시에 반영하려는 제도는 객관성이 없어지면서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특권층과 부유층에 유리한 입시제도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경제력 보다는 인간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을 억지로 제도화하여 주관적 기준의 선행에 의한 인위적 특혜(5·18유공자 특혜 등)의 범람은 신흥귀족을 양산하여 봉건제도로의 회귀를 재촉하고 있다.

국가 내에서 사회주의 등의 주장을 하는 분파는 진심으로 이 사회가 성숙되었다고 판단하여서 진보적 이념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네들이 국가사회의 비주류에 처한 현실을 타파하고 정상적인 능력경쟁이 아닌 방법으로 상류계층의 지위를 얻고자 이러한 현실에 맞지 않는 고수준의 이념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회가 오히려 자본주의 단계의 수준보다 퇴보하는 신분제도 사회로 회귀한다하여도 그들의 집권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모든 국민이 知識(지식)과 智慧(지혜)가 충만하여 삶의 철학이 보편화되어 모두가 눈앞의 이익보다는 大義(대의)를 생각하는 君子(군자)가 되었을 때에 조심스럽게 가능한 체제이념이다.


[ 2017-03-27, 10: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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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京範    2017-03-29 오후 7:19
자본주의는 봉건주의시대의 신분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치인 것인데 물욕의 상징으로 몰아세우는것은 좌파의 선동이지요.
   kmok    2017-03-28 오전 9:05
함께 생산하고 N분의 1식 공평하게 함께 나누면 빈부의 격차도 없어지고 지상낙원이 될것이다 ? 나도 일은 안(덜)하고 분배에는 N분의 1로 참여하고 싶을것이다. 결국 함께 나누다 보면 생산은 점차 줄고 나눔도 결국 실패하는 공산주의의 실체를 망하고 나서 느낄것이다. 망하고 나서야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 수 있는가 ? 사회가 발전하려면 끝 없는 연구개발과 생산성 향상이 뒷바침 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보상이 주어져야 함(N분의 1로 배분이 아닌)에도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욕하고 선동질하는 정치꾼이 안타깝다. 그 자들은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는가. 생산이 줄어 N분의 1로 나눔이 없어 함께 망하는 공산주의에 대비되는 자본주의에서 빈부격자는 필연적 현상이며, 다만 일할 수 없는 빈곤층의 생활안정은 국가가 세금으로 해결하면 될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죄악이 아니고 필연적인 사회발전의 결과이며, 일정 수준의 빈곤층은 세금으로 국가가 보상해 주어야 할 대상일 뿐이지, 기업이 양극화의 주범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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