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향한 불평은 惡이라는 서슬
理念이란 무엇인가 (20) 좌우이념과 장애인복지

朴京範(소설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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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을 고정사실로 간주하여 私席(사석) 등에서 장애인에 대하여 다듬어지지 못한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부류의 사람이 있고 반면에 자신의 일과 다르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장애인을 자신과 전혀 다른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 영혼은 장애인으로서의 입장을 충분히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비록 일반인이라도 장애인의 입장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인의 입장에서의 인생수련을 충분히 겪은 영혼이라고 하겠다. 前者(전자)에 해당하는 영혼은 앞으로의 생에서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동정보다 예우받아야 할 존재
장애인은 일반인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사람 / 오마이뉴스 2004.04.18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철학적인 해답을 구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런 적용을 할 수는 없다. 가깝게는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도 정치인들에게 ‘왜 후보로 나서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자기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라고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말들을 요약하면 ‘다른 사람(국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한다’일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
 
‘자기를 희생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왜 굳이 나서려 하는가?’하는 모순적인 행태의 동기를 찾자면, 한편으로는 남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명예욕에 의한 만족감은 반드시 원초적 의미의 행복추구라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명예와도 상관없이 남을 위한 봉사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엄존함을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 삶의 목적이 자기 자신의 행복추구라고 할 수 없음은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삶 자체가 목적인 다수의 사람들과 타인을 위한 봉사의 삶이 그 목적인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타인을 위한 봉사의 삶은 고되고 힘들다. 하지만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그 직분을 맡은 자는 고통을 감수하며 해내고 있고 그 결과로 더러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기도 한다. 사실 그들이 없다면 자기의 삶 자체가 목적인 다수의 사람들은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장애인은 타인의 행복을 떠받치는 봉사자
 
흔한 얘기지만 행복의 느낌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신체의 건강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질환자(疾患者)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신체의 온전함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장애인들의 상대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역할의 분담을 이미 태어난 이 세상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출생이전의 관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확률적으로 생겨나는 장애는 일정한 사람들에게 배당될 수밖에 없으며 장애인은 바로 그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짐을 몸소 대신 지어준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을 일반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짊어졌어야 할 운명적 직분을 대신 맡아준 자로서 인정되어지고 일반인은 장애인의 삶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제 장애인에게는, 동정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한다는 캠페인에서 더 나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로서의 예우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좌파, 장애인이 전혀 불편 없이 살아야 하는 사회 추구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단지 美辭(미사)로서 누구에게나 불편함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에 관한 논의 또한 이념의 잣대로 분석하다보면 마냥 人情(인정)과 편안함만으로 일관하기는 어렵게 된다.
좌파는 장애인이 전혀 불편 없이 살아야 하는 사회를 추구한다. 더 나아가 필자의 위와 같은 주장을 실천하여 국회의원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할당하는 등 앞서나가고 있다.
장애인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은 분명 좋은 세상이다. 더구나 신체 등 탄생조건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영계나 천국에 가까워지려 하는 진보주의로서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특히 좌파는 소수를 위하여 다수가 얼마간의 양보를 해야 하는 미덕을 강조한다. 외국의 학교 등에서 한 사람의 장애인을 위하여 건물을 고쳤다 등의 이야기는 美談(미담)으로서 자주 강조된다.
이미 정착된 지 오래된 公共(공공) 장애인용 화장실은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소수를 위한 다수의 양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사용빈도가 현저히 낮은 장애인화장실 설치를 건축주는 부담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동시사용의 상황이 거의 없음에도 장애인은 수치감도 없단 말이냐는 항의를 하여 남녀 각각의 장애인화장실에 큰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앞서나가는 조치에는 건축업계 측의 영향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전용 주차공간도 일반국민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실제사용자는 대다수가 가족과 인척의 자격을 빌린 일반인이지만 장애인을 향한 불평은 惡(악)이라는 서슬에 눌려 누구도 감히 반항하지 못한다.
국민일반에게 알게 모르게 불편과 세금부담을 늘리면서 이렇듯 장애인관련 정책이 초과하는 것은 518 유공자 세월호 관련자 등에서 보는 듯이 경쟁을 통하지 않은 특혜계층 형성을 합리화하는 좌파정책의 일환은 아닐 것이다.
 
보수, 인간의 태어남의 상황 존중해야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아직도 인간은 자기의 탄생조건과 운명을 통해 자기영혼의 수련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상황조건은 누구나 그 의미를 존중받아야 할 것이니 장애인의 상황도 그것을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돌리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아공의 장애인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일반인 경기에도 참가하고 여러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보면 그의 영혼본성은 매우강한 활동성을 가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칭송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애인살해사건으로 추락했다.
그가 매우 활동적인 본성을 가졌음에도 적합한 육체를 갖지 못했음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의 前生(전생)들은 지나친 활동성이 난폭함으로 이어져 많은 문제를 惹起(야기)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生에서는 난폭한 성격을 절제하여 영혼을 순화하고자 장애를 갖기를 천상에서 自請(자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각종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기며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는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수련할 기회가 많지 않게 된다. 더구나 그 활동성이라는 것도 과거의 생에서는 敵(적)과의 격렬한 살육 전쟁이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敵을 향한 폭발적인 공격성도 거의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평소 좋아하여 보유하고 있던) 총기로 범행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의 지상에로의 태어남에 의미를 찾고 영적구원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로서는 세상의 걷잡을 수 없는 慈善(자선) 인플레에도 때로는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2017-04-14, 16: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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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즈    2017-04-14 오후 5:53
교통법규를 어기다가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경우, 안전작업 규정을 무시하고 일하다가 장애인이 된 경우, 본인의 잘못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 이런자들은 장애인의 특혜를 아무것도 주면 안된다. 이런자들에게 혈세를 탕진하면 안된다. 그들은 인과응보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정의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정신차려 똑바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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