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중놈 쫓아주세요"
절이나 교회나 모두 그 안에 때 묻은 세상이 들어가 있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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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전 내가 공부하던 절의 주지스님이 찾아왔다. 당시로서는 참 깊은 산골이었다. 합천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높은 산자락에 나사같이 나 있는 흙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갔다. 차창을 통해 얼어붙은 강가의 모래톱도 보고 잎이 떨어진 황량한 겨울 나뭇가지들도 보았던 기억이 어제 일 같이 재생됐다. 그 절은 서까래가 가라앉고 기왓장이 떨어진 곧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음산한 절이었다. 거기서 아궁이에 낙엽을 때면서 그해 겨울을 보냈었다. 그 절의 주지가 된 스님은 당시 절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의 아는 형이었다.
  
  “그래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는 법률문제를 가지고 먼 길을 온 게 틀림없었다.
  
  “나보다 열 살쯤 어린 중이 내가 있는 절로 흘러들어왔어요. 절에서 묵으면서 불법공부를 하고 참선수행을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혼자 쓸쓸하던 참이라 내가 옆에 새로 지은 선원에서 지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도 약정서를 써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별 생각하지 않고 써 줬죠. 그랬더니 이 중이 그 다음부터 점점 행동이 엉망이더라구요.”
  
  “어떻게 엉망인데요?”
  “요새는 우리 같은 절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아침에 직접 공양을 지으면 이놈이 내려와서 내가 지은 밥을 얻어먹더니 어느 날은 갑자기 개밥보다 못하다고 불평을 하는 거예요. 갑자기 피가 얼어붙는 것 같더라구요. 중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 다음날부터는 직접 해 드시라고 했죠. 그랬더니 다음날 진주에 가서 무쇠솥을 하나 사와 선원 앞에 걸고 마을에서 뼈를 사오더니 곰국을 끓이는 거야. 절에서 키우는 개들이 모두 그 냄새를 맡고 몰려들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같이 개판인 거예요. 아침에 예불을 드리지 않아요. 그래서 나가달라고 했더니 약정서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소송을 하기 위해서 여기 왔어요.”
  
  절이나 교회나 모두 그 안에 때 묻은 세상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법은 종교 안에도 점차 들어가 일을 처리해 주고 있다. 법률상담을 해 주면 나도 진리를 한 마디쯤은 얻어 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물었다.
  
  “산골 절에 그렇게 혼자 있으면 귀신이 나올까봐 무섭죠?”
  법당과 산신당의 음음한 분위기가 뇌리에 떠올랐다.
  
  “죽은 귀신이야 중을 어떻게 하겠어요? 산 귀신이 더 무섭지. 어떤 때는 남자 몇 명이 탄 차가 한밤중에 절 앞마당에 쓱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런 때 강도일까 봐 등골이 서늘하죠. 일하는 사람도 없이 달랑 나 혼자 있는 절이니까.”
  
  “같이 수행을 하는 도반은 그 모양이고 혼자 살다 다치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나이 칠십이 가까운 저는 일을 아주 조심하면서 천천히 해요. 어제 아침도 예초기로 풀을 베는데 하루면 할 걸 사흘로 잡고 느리게 했어요. 욕심을 내면 기계에 풀무더기가 걸려서 잘리지 않거든요.”
  그는 느림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저녁노을 같은 나의의 인생인데 스님은 일생을 살아보니까 어떻습니까?”
  “모든 게 헛되죠. 바람 한번 불면 재산도 생명도 다 날아가 버리는 건데요. 저도 사회생활을 하다가 철저히 망한 후 중이 됐잖아요? 그런데 이 중이 되어 보니까 참 편하고 행복해요. 돈을 쓸 일이 있나 세상 고뇌를 짊어질 일이 있나 아침에 차 한 잔 마시고 명상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 중이 되고 사바세계의 인생들을 보니까 죽을 때까지 자기가 뭔지를 깨닫지 못하고 시궁창의 구더기처럼 욕심이 가득차서 좀더 올라가려고 바글바글 끓다가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스님은 순간 자기가 입고 옷 먹물옷을 쳐다 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사실 내가 입고 있는 이 먹물 옷이나 신부들이 입는 옷 그리고 목사들이 입는 가운 같은 거 다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진리를 전달하는데 그게 뭐 필요해요? 일반인들에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그렇게 연출하는 거지. 뭐. 종교의 본질은 다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성스러운 체 하지 않고 화끈하게 마음의 창을 열어서 좋았다. 사무실에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한테서 진리를 배우는 나는 행복했다.
  
언론의 난
[ 2017-05-18, 08:10 ] 조회수 : 2112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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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대가리   2017-05-18 오후 4:57
승복을 입은 사람, 돈 탐하는 사람 참 많지요, 그런데 저스님에겐 진정 때묻지 않은
정서가 흐르네요, 지금 법정스님 같은 분. 눈 씻고 찾아도 없군요.
  정답과오답   2017-05-18 오후 1:02
시궁창의 막나가는 자와
채면이 뭔지 아는자가 싸우면

막돼먹은 자가 이기게 되는게 대한민국 같습니다
헌대 정치까지도 그리 되는거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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