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大韓民國은 後朝鮮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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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大韓民國은 後朝鮮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고의 위인은 누구라고 할까.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이순신 장군이라 함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비록 대놓고 큰소리를 하지는 않지만 일본이 임진왜란 패전의 변명을 위해서 이순신을 뛰어난 명장이라고 치켜세웠다는 설이 하나이고 또 박정희 군사정권이 군사문화를 강조하게 위하여 이순신을 높였다는 설이 하나이다.

세습군주를 최고의 위인으로 받들고 본받으라?

그래서인지 지난 대선에서의 후보토론에서도 확인되었고 요즘 가장 존경하는 위인을 꼽으라면 세종대왕이 대세이다. 하지만 이토록 세습군주를 최고의 국민적 위인으로 모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그 삶을 본받으라는 것은 현대 민주사회의 관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내에서의 세종 받들기는 이미 오래되었다. 세종로에는 원래 세종像이 세워지려 했으나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이순신像이 세워졌다. 이에 따른 ‘세종추종자’들의 세종복권(?)노력도 그동안 매우 집요하게 진행되어 왔다.
세종상은 덕수궁에 있었는데 일부러 입장을 해야 하는 곳이니 많은 사람들이 와서 참배하기에는 부족했다. 이후 한 때 여의도광장이 인파가 늘고 여의도가 서울의 중심으로 부각될 듯하자 당시 조순시장을 부추겨 여의도광장을 없애고 공원을 만들어 세종상을 세웠다. 그러나 공원화 이후 먼저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결국 다시 오세훈시장을 부추겨 기존의 이순신상과의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에 또 세우도록 하여, 지하도를 통해 광화문광장으로 진입하는 시민이 절로 참배의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이렇게 세종대왕을 민족의 우상으로 세우는 노력은 실로 집요했던 것이었다.

세종은 전형적인 王朝초기의 君主에 불과

어느 왕조시대이건 개국군주는 그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업적을 남긴다. 태종 때까지는 권력싸움의 와중에 있었고 세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선의 건국과 정비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세종은 <漢陽五百年歌>에서의 역대 국왕 서술에서 보아도 그저 평온한 집권기를 보낸 보통군주였다. 그러나 현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숭앙됨은 물론 은연중에 진정한 우리민족의 역사를 시작한 군주와 같이 추앙을 받고 있다.
물론 세종 하면 한글창제의 공로를 들어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민족은 어쩔 뻔 했느냐는 反問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한글창제는 세종 당시 북방의 비한자문화권 여진족을 우리 한반도국가에 편입함과 함께 몽고문자를 본떠 만든 것으로서 이성계의 출신이 몽고군벌이라는 설을 참조하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전에도 한반도의 우리민족은 고유어의 문자표기에 불편이 없었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세종 이전의 우리민족을 미개민족으로 규정하는 행위이다.

漢字와 漢字語를 우리글과 우리말로 인정 않는 것은 세종이후 편입된 非한자문화권민족의 입장

이렇게 우리민족에 대한 해석의 관점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기존의 단일민족주의 관념을 깨뜨리면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주류백인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역사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시작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흑인의 입장에서는 링컨의 노예해방 이후가 진정한 미국의 역사이다. 그리고 미국인디언의 입장에서는 미국인과 미국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종 이전까지 이천년 가까이 우리 땅에서 全的으로 통용되었던 漢字와 漢字語를 우리글과 우리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세종이후 우리역사에 편입된 북방 비한자문화권의 특정민족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다.

조선은 중국의 元淸과 같은 북방민족에 의한 점령국가

조선의 건국은 중국역사에서의 원나라와 청나라의 건국과도 같은 형태이다. 몽고지역은 본래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으나 몽고족이 중원을 점령한 이후부터 원나라의 발원지인 몽고지역은 중국의 영토가 되었고 두지역의 경계선상의 지역인 北京이 중국의 수도가 되어 이후 계속 중국의 수도로서 승계되었다. 만주지역은 본래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으나 만주족이 중국을 점령한 이후부터 청나라의 발원지인 만주지역은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 한반도의 대륙인접지역은 본래 고려의 영토가 아니었으나 함경도 등 이 지역의 세력이 고려를 점령하게 되어 이후 한반도의 국가는 이 지역을 영토에 포함하게 되었다. 중국처럼 변발(辮髮) 등의 풍습전래는 있지 않았으나 온돌 등 편리한 풍습은 반도에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성계가 여진족이라는 설도 있으나 전주지방에서 함경도지역으로 망명을 가서 그곳의 여진족을 다스려 왔다는 기록을 믿어도 다를 것은 없다. 여하튼 이성계의 전기에 나오는 퉁지란 등을 비롯해 여진족이 조선건국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태종 때까지의 권력쟁탈시기를 넘기고 난 후 조선의 실질적인 건국군주라고 할 수 있는 세종은 조선건국에 관한 여진족의 공로를 잊지 않고 사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진족을 통합하여 조선의 백성으로 하였다. 링컨이 노예를 해방하여 흑인이 당당한 미국의 국민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기에 흑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듯이 여진족을 편입한 세종은 그들을 한국인으로 자리 잡게 한 은인으로서 여진족의 후예들로부터 숭앙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조선건국에 기여하고도 귀족대접 받지 못한 여진족의 恨

그러나 비록 북방지역의 세력자가 점령지의 군주가 된 것은 중국의 경우와 공통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북방지역의 점령군을 이루는 민족이 점령지의 지배계급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평화가 찾아오자 무력에 강한 족속들의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세금면제 이외에는 혜택이 없었다.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에서 몽고족과 만주족이 백성으로부터 정해진 상납을 받는 등 최고귀족계급으로서 많은 혜택을 누린 것에 비교할 때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결국 정착하여 생산에 종사하기에 서투른 그들은 유랑하며 천민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천민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은 천민을 불쌍히 여겨 배려한 것이 아니다. 세금을 안내도 되는 특별배려를 받은 집단이 천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조선은 건국에 기여한 그들을 토사구팽한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원한이 풀리지 않았기에 한반도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여진족 후예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처럼 사대부계층을 누르고 비한자문화권 민족문화가 다스리는 새로운 조선을 다시 세우고 싶은 것이다.

大韓帝國과 大韓民國은 동양문명의 嫡統國家 자처

王朝는 북방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나라를 운영한 주된 세력은 남방 등의 지식인 계층이었던 것은 중국역사에서도 많은 형태이지만 중국에서는 건국에 기여한 북방인의 신분을 보장해주었던데 反해 조선은 건국이후 계속 사대부계층 위주의 국가로 변화되었고 이것은 조선 말기에 이르러 중화주의에 따른 국명의 대한제국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明과 淸의 교체기에 淸의 편에 서려했던 광해군은 쫓겨났고 淸이 통일한 뒤에도 조선은 외교상으로는 청에게 맞추면서도 스스로는 中華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수백년간 明의 연호를 유지하였다. 十九세기 세계의 격동기에 조선은 청으로부터 독립하여 明의 영광을 부활하고자 중국의 전통적인 국명 작명방식을 따라 大韓帝國을 세웠다. 본래 單字(단자)의 國名은 秦(진)나라 이후 天子의 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청이 쇠약해지자, ‘이제까지 힘에 눌려 잠자코 있었지만 너희들은 오랑캐에 불과하고 진정한 중화문명의 嫡統(적통)은 바로 우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조선은 小中華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大韓帝國의 건국은 북방에 근거하여 건국되었던 조선이 비로소 중원문화의 국가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 大韓民國은 이를 계승한 국가이지만 애초에 북방 여진족세력의 희망과는 맞지 않는 국명이다. 북한은 다시 북방세력 국가인 조선을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大韓民國이냐 後朝鮮이냐 결정해야 한다

일제시대에 이르러 그전까지 한반도국가를 다스렸던 사대부계층이 몰락한 뒤로 여진족세력은 조선패망의 책임을 과거의 지배계층으로 돌리고 새로이 세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 기반은 언어관념의 변화였다. 漢字 및 漢字語를 중국의 것으로 돌리고 漢字로 쓰지 않는 언어만이 진정한 우리말이라고 국민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도 티벳 위구르 몽고 등의 漢字문화권밖의 민족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볼 때 漢字문화권여부로 국가를 나누는 것은 애초부터 모순이다. 세종의 여진족 병합 이전에는 우리역사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들이니 우리가 이천년 써왔던 漢字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글이 아닌 것은 맞다. 국민의 이름 거의 전부가 漢字이고 地名의 대부분이 漢字인데 漢字語는 우리말이 아니고 漢字로 못쓰는 것이 (순)우리말이라는 뜬금없는 관념이 심어진 것은 그들의 ‘새로운 조선’ 다지기에 따른 것이다.
여진족의 세력강화가 추구하는 목표는 대한민국이 여진족이 편입할 당시의 세종이 개국한 조선의 재건국 즉 후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미 그들의 영향력에 의해 미국이 건국대통령의 이름을 딴 워싱턴시를 건립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조선시대의 연장으로 만드는 목적으로 세종시를 건립한 바 있다. 世宗市는 시내의 모든 지명을 이른바 순우리말로 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이것은 非한자문화권의 여진족이 지배하는 나라의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렇게 지금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보다는 조선건국時의 ‘초심’이 이어지는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데 있어 세종대왕은 그 구심점이 되고 있다. 大韓民國은 後朝鮮이 아니다. 이제 한반도의 각 분파세력은 의도를 솔직히 털어놓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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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13, 00:23 ] 조회수 : 121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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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나라   2017-09-13 오전 10:01
옳은 말씀입니다.
나는 조선인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망한 조선이 그렇게 좋은 지 온통 조선이네요.
거리 동상이며 화폐 등장인물이며.
TV,영화도 조선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드는 모양이네요.
북조선도 아직 살아있으니 남조선 하자는 건가요?
이상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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