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시대'를 엿보며 현재를 생각하다
당시 왕실의 보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조선 조야(朝野)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親日이냐 친러냐 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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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李完用)은 원래 배일친로(排日親露)파였다. 일본을 배척하고 친러시아 세력에 합류하여 고종을 옹위하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갔다.(아관파천·1896년) 친일파였던 총리대신 김홍집은 광화문 앞에서 군중들에 의해 참살당했다.
  
  인터넷에서 인물 평전을 찾아보면 김홍집은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로, 이완용은 '구한말의 친일 매국노'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가 있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김홍집은 개화파이고 이완용은 친일파라 하는 것은 왜곡이 있다. 당시 개화와 친일은 함수관계였다.
  
  당시 왕실의 보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조선 조야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친일이냐 친러냐 둘 중 하나였다. 아관파천으로 영향력이 일시 유보되었지만 역시 대세는 일본이었다. 1904년 '한일 의정서'가 체결되면서 한-러 간 체결되었던 모든 조약과 러시아인에 양도하였던 이권도 모두 폐기한다고 선언하였다. 反日에 눈이 멀어 한-러 조약이말로 한-일 조약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질 불평등 조약이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요 시대의 흐름이다. 힘센 나라가 식민지 목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인도,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대부분 나라들이 외세에 함락된 상태였다. 여기서라도 조선 조정과 백성들이 뭉쳐 일치단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것이다.
  
  한일 의정서가 체결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끊이지 않고 조정이 시끄러워지자 이완용 등 조약을 주도한 대신들이 고종에게 상소했다.
  
  "국내에 진실로 저 무리들처럼 충성스럽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마땅히 그 때에 쟁집(爭執:다툼)했어야 했고 쟁집해도 안 되면 들고 일어났어야 했으며, 들고 일어나도 안 되면 죽어버렸어야 했을 것인데 일찍이 이런 의거를 한 자를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습니다."(고종실록 46권)
  
  일본은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일으키면서 '한국의 독립과 영토와 주권을 보호하는 것'을 명분의 하나로 내세웠다. 이를 터무니없는 구실로만 볼 수가 없다. 조선 최초로 유럽기행문을 쓴 유길준이 순종에게 올린 상소문을 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대체로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화재가 나면 불은 번져서 함께 탈 것이고 같이 탄 배가 바람을 만나면 서로 물에 빠지게 됩니다. 저 나라(일본)는 자국을 보위하는 방도에서 우리나라의 완전 독립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찌감치 실력을 갖출 것을 원하고 우리나라가 빨리 실적을 올릴 것을 바라며 우리나라를 근심하기를 자기 나라를 깊이 근심하는 것처럼 하고 우리나라를 아끼기를 자기 나라를 절절이 아끼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순종실록 1권)
  
  일본이라면 자다가도 경기 일으킬 사람들이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이야말로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근본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국을 보위하는 방도'라고는 하지만 일본은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한국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보는 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국민들은 미개했고 마음은 닫혀있었다.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서 외교나 치세를 논할 처지가 못되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하나에서 열 가지를 다 이해시키며 가르쳐야 될 상황에서 마음은 열리지 않고 있으니 차라리 병합하고 자신들이 끌고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한일합병까지 가게 된 이유로 봐야 할 것이다.
  
  율곡의 외세 침략에 대비한 10만 양병 주장을 무시하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참혹한 지경을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지 못한 나라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청나라가 손을 들고 러시아까지 손 든 마당에 한국이 무슨 수로 일본을 대적한다는 말인가? 근대화 물결이 휘몰아치는 국제정세 속에 왕실 보전이 가장 우선이었던 신하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니었던가 여겨지기도 한다.
  
  선택의 순간 '그릇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그릇된 일인지 옳은 일인지는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당시 일진회장 이용구가 100만인 서명으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을 한번 엿보자.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청나라에 망하지 않은 것이 어찌 천황(天皇)의 덕이 아니며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먹히지 않은 것이 또한 어찌 천황의 인덕으로 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왜인(倭人)을 배척하는 기풍이 없어지지 않고 있어서 매번 은덕에 원망으로 갚으면서 일본을 배척하는 것만 일삼고 있으니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어찌 짐승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순종실록 3권)
  
  
언론의 난
[ 2017-09-13, 19:42 ] 조회수 : 1393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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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월하인   2017-09-14 오후 1:56
일본은 한국을 키워주어야 일본에 이익이 된다고 본것입니다. 즉 큰 도둑질을 한것이지요. 속된말로 키워서 먹을려고 했지요. 그러나 키우기도 전에 2차대전 패망으로 본전도 못 찾고 철수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도적과 같이 막되먹은 강도로 몰아가고 있지요. 그래야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 나쁜 일본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해야 우리가 보다 떳떳해진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2말3초   2017-09-14 오전 1:24
대학교에서 한일 근대사를 공부하다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더군요..
왜 일본은 1910~1920년대..이렇게 막대한 돈을 조선에 투자했을까????
물론 나중에 가져간것도 많지만,,,
애초에 들였던 자금이,,나중에 약탈해간것보다 훨씬 더 많음에 놀라게 됩니다.
철도,공장 같은 사회 직간접시설 뿐만이 아니죠..

수많은 학교 건립비용,많은 양질의 일본인 교사들을 파견하고,,
행정체계의 기틀도 일제시대에 성립됐구요..

뭐,,위와같은 정보들은 굳이 대학 안가고도,,,<국사 교과서> 이외의 역사책에서는 쉽게 찾아볼수 있는거랍니다..
1926년에 경성의 조선인 고교생들이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다는 기사도 지금도 동아일보 검색해보면 나오고..

분명히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고,,한국이 일본의 도움을 많이 받은 역사적 사실들이 있는데,...그런것들은 철저히 숨겨지고,,
오로지 일본이 우리에게 잘못한것만 과장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니,,
감정적인 친일파만 잔뜩 만들어지는거죠..
  onoda74   2017-09-13 오후 9:44
유길준의 상소문 내용은 여전히, 아니 오늘날에 더 유효하다 싶습니다.

일본은 국교정상화 이후
지극 정성이라 할 만큼 남한을 도왔습니다.

국교 정상화 당시 차관부터 시작해서,
현대 삼성 포철 등에 대한 수많은 산업 기술 지원,
소양감 댐, 고속도로 등 인프라 공사 지원,
전두환 나카소네 40억달러 경협차관(공로명 증언에 의하면, 우리 정부보고 그렇게 요구하라고 시킨 것도 일본인),
아이엠에프 때 지원 용의 표명,
88서울 올림픽 아이디어도 일본인이 먼저 제공,
2002 월드컵 공동 개최 수용
통화스왑 체결...

사람보내, 돈보내, 기술보내, 아이디어 보내
지속적으로, 그리고 남한이 위태로워 보일 징조를 보이면 더욱
그들은 대한민국에 힘을 보태왔습니다.

그 모든 것은
너희(남한)가 번듯하게 살아서 버텨줘야
대륙세력이나, 북한에 안 먹힐 것이고
그래야 우리가 안전하다
그뜻이었지요.

우리가 이런 수준으로 살수 있게 된 건
우리가 노력해서인 것도 있지만
남한에 대한 일본의 '과보호'가 더 크게 기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언제나 위태로운 땅 한반도
그런 일본인들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꼬...
  정답과오답   2017-09-13 오후 7:56
조선 조정과 백성들이 뭉쳐 일치단결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가요
합방이 무산 되었을 거라 생각 하시는건 아니시죠

아마 그리 되었다면 무수한 인간이 도살 되었을 겁니다
임금이고 대신이고 일반 백성들 까지도 그 희생이 끔찍 했을 것이나
그래도 역사는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합방은 진행 되었을 거고 민족은 죽음의 킬링필드 조선땅을
구현 했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설사 그것으로 일본의 합방이 저지 되었다 해도
민족의 국가는 가능성 없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속국 정도 겟지요
이거 망하는 겁니다
최악의 씨나리오 지옥의 대한민국을 예상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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