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에 강하고 전체에 약한 민족
한국인은 대체로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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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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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01116(고려 현종 1) 거란의 성종이 고려의 목종을 폐위한 강조(康兆)의 죄를 묻는다며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고려의 실세, 강조는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기다리다가 초전에 몇 번 승리하자 바둑을 두는 여유를 부리며 대회전(大會戰)으로 적을 일망타진할 야망에 불타올랐다. 그러나 경계에 소홀하다가 그만 본진을 기습당하여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사로잡혀 버렸다. 고려의 30만 대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거란의 성종은 상승장군 양규(楊規)의 흥화진은 내버려두고, 곧장 개경으로 폭풍처럼 내달렸다. 이제 18살 애송이 왕 현종의 무릎만 꿇리면 11세기 동아시아의 패권 전쟁은 끝! 문무를 겸한 고려만 복속시키면 양자강을 단숨에 건너 문약한 송()의 명줄을 끊는 것은 시간문제! 그때까지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빛난 당나라보다 큰 대제국을 세우는 것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거란의 성종이 천하제패를 달성할 일보 직전에 무산시킨 사람이 있었느니, 그가 바로 강감찬(姜邯贊)이다. (정확한 발음은 강한찬인데, 잘못된 발음이 굳어짐.)

 

혼비백산한 고려 조정은 항복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때 묵묵히 지켜보던 사람이 홀로 반대하고 나섰다. 무신도 아닌 문신, 병부도 아닌 예부의 정4품 시랑(侍郞) 강감찬이었다. 못생긴데다가 키도 몽당빗자루만한 63세 늙다리 예부시랑은 흐리멍덩한 뭇 눈 속에서 홀로 아테네 여신의 눈을 반짝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냉정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랑캐가 원하는 것은 강조의 목숨입니다. 그들은 일차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호들갑떨며 크게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중과부적이라 저들을 당할 수 없습니다. 개경을 내 줍시다. , 조용조용! 임금이 살아 계시면 얼마든지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생각이 짧은 오랑캐라 수도를 함락시키는 것으로, 마음껏 약탈하는 것으로 목표를 100% 달성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顯宗元年契丹主自將攻西京 我軍敗報至群臣議降 姜邯贊獨曰 今日之事罪在康兆非所恤也 但衆寡不敵當避其鋒徐圖興復耳 遂勸王南行(고려사 열전 강감찬편)

 

(현종 원년에 거란의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서경을 공략했다. 아군의 패보가 전해지자, 뭇 신하들은 항복을 논의했다. 강감찬 홀로 말하길,

 

오늘의 사태는 강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단 중과부적이라 당할 수 없으니까, 그 예봉을 피했다가 서서히 후일을 도모하면 됩니다.”

 

마침내 왕을 설득하여 남쪽으로 피신하게 했다.)

 

1227일 현종은 변장하고서 불과 50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곳곳에서 산적과 건달에게 시달리며 멀리 나주까지 피신했다. 현종이 떠나자마자 11일 설날에 개경은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1018년 거란이 또 쳐들어왔다. 소배압의 10만 정예 대군에 맞서, 상원수(총대장) 강감찬이 그 사이 현종을 도와 20만 대군을 양성하여 빙그레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가, 저 유명한 귀주대첩을 비롯하여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10만 대군 중 불과 몇 천 명만 살려 보냈다.

 

 

문무겸전의 강감찬은 거란과 송과 고려, 3국 중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일개 문관에 지나지 않았지만, 웅대한 전략으로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 버렸다. 거란의 성종이 양규의 흥화진을 우회하여 바로 개경까지 쳐들어간 것은 멋진 전략이었지만, 그 전략 위에 강감찬의 귀신 곡할 전략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거란은 고려조 최대의 현군 현종과 11세기 세계 최대의 전략가 강감찬이 버티는 고려를 더 이상 넘보지 못했고, 뒤통수가 서늘하여 끝내 송을 멸망시키지 못했다. 거란의 세계제패 꿈은 후일 징기스칸의 몽골이 달성하게 된다.

 

부분보다 전체에 강했던 고려의 장점은 거란()의 뒤를 이은 여진() 시대까지 이어졌다. 강감찬에 이어 윤관이 나타난 것이다. 1170년 무신란 무렵부터 고려는 더 이상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지 못한다. 부분에 집착한 자들이 득세한 탓이다.

 

조선의 태조, 태종, 세종, 세조는 부분보다 전체에 강했던 왕들이다. 세종이 처가의 억울함을 끝내 풀어주지 않은 것이나, 세조가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을 돌본 것은 대표적인 전략적 사고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이 전략(strategy)에 무지한 자들이 사소한 전술(tactics)에 집착하다가 호되게 당한 대표적인 비극이다. 율곡과 충무공은 전략적 사고가 탁월했으나 지극히 예외적인 인물이었으므로 생전에 강감찬처럼 높이 등용될 수가 없었다.

 

일제시대와 6.25의 고난을 거치면서 한국에도 마침내 부분을 뛰어넘어 전체를 조망하는 세계적 영웅이 나타났다. 그가 바로 이승만과 박정희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은 조선의 양반으로부터 부분에 목숨 거는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한국에서는 배움이 적은 사람들이 오히려 부분보다 전체에 강하다. 미소(美蘇) 초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상황에서 부분에서는 약한 면이 있었지만, 이승만이 스탈린과 트루먼을 상대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매우 드물다.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등소평은 아는 사람이 정작 등소평의 스승 박정희는 모른다. 박정희가 소련의 괴뢰로부터 끝없이 시달리면서 국가 예산의 절반을 미국으로 보조받던 거지 나라를 오늘날의 WTO에 해당하는 GATT 체제에 기막히게 편입시켜 세계 5위 제조강국의 기틀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한국의 지식인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체의 맥락 없이 그의 부분적인 측면을 물고 늘어지는 데서 지적 우월감과 도착적(倒錯的) 애국심과 오이디푸스적 쾌감을 느끼고 자랑하고 맛보는 것이 대다수 한국 지식인의 평생 직업이다.

 

더군다나 북한 문제에 이르면, 이건 청맹과니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보다 심하다. 300만 굶겨 죽인 것이 초등학생에게 따끔하게 회초리 대는 것보다 사소한 문제다. 북핵은 댓글 3개보다 사소한 문제다. 땅굴은 막강 권력의 축첩보다 사소한 문제다. 국가 정책에서도 5개년 개발시대 같은 전략적 사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와 복지를 내세우면, 만사가 입씨름 늪 속으로 빠져든다. 상대적으로 작은 영향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외교와 안보에서는 더 심각하다. 10년 집권 경험이 있었던 야당을 보라. 일본은 손안의 공깃돌 취급하고, 중국은 선한 사마리아로 확신하고, 미국은 세계 평화의 주적이요 남북통일의 방해 세력으로 간주한다. 아마 그들의 눈으로 보면 개경을 내 주자고 주장한 강감찬은 악질 친일파보다 못한 민족 반역자에 해당할 것이다.

(2013. 10. 19.)

 

언론의 난
[ 2017-11-13, 10:49 ] 조회수 : 88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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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17-11-14 오전 9:37
역시 선생님의 글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한가지 찬성허기 어려운 점은 말로는 개인이 강한듯 하나
실재는 개인도 비겁한 쪽에 가깝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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