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影幀) 속의 친구
살아있을 때 찍었던 사진들인데도 그게 영정사진이 되는 순간 亡者의 혼이 그 속에 들어 가 마지막 그의 감정을 알리는 것 같았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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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정사진 속에서 친구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겉은 웃는데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친구는 겸연쩍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닥친 자신의 죽음을 의아해 하는 느낌이 들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사진과 마주 대할 때마다 원인모를 느낌이 다가오곤 했다. 어떤 사진은 처량하게 울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사진은 허탈해 하기도 했다. 살아있을 때 찍었던 사진들인데도 그게 영정사진이 되는 순간 망자의 혼이 그 속에 들어 가 마지막 그의 감정을 알리는 것 같았다. 문상을 마치고 접객실로 갔다. 퇴직 후 쓸쓸하게 살던 친구의 상가는 한적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아들이 내게 다가와 상 앞에 앉았다.
  
  “네 달 전에 아버지가 폐암 말기인 게 발견됐어요. 병원에서 그동안 항암치료를 받다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직전에 돌아가신 겁니다. 아버지는 친구 누구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 친구 한 분이 우연히 찾아왔는데 아버지는 자는 척 눈을 감고 모른 척 하시더라구요. 병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갑자기 폐에서 피가 끓어 올라오면서 돌아가셨죠.”
  
  그와 함께 했던 소년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알게 된 동네 친구였다. 한참 호기심이 많던 그 시절 친했던 친구 네 명은 그중 한 명의 집에서 몰래 가져온 담배를 으슥한 골목길 아무도 없는 곳에서 피워봤다. 기침을 하기도 하고 연기를 마신 후 머리가 휭 돌아 어쩔 줄 모르기도 했다.
  
  우리 동네 친구 네 명은 저녁이면 항상 몰려다녔다. 고교 시절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연탄 화덕을 만든 선술집에서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마셔보기도 하고 호기심에 다방도 기웃거렸다. 우리들은 영원한 우정을 상징한다면서 은반지를 맞추고 거기에 ‘四松(사송)’이란 글짜를 새겨서 나누어가졌다.
  
  대학을 가면서부터 각자 헤어져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중 두 명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해병대를 지원해 갔다 온 그는 늦깎이로 대학생이 됐다. 그는 대학졸업 후 중소기업체에 들어가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찍 퇴직을 했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렸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
  
  어느 날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가 청계천의 낡은 빌딩에서 경비원을 한다는 얘기를 했다. 자존심 강한 그는 자신을 은폐하고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불쑥 그를 찾아갔다. 그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모습이었다. 늙어가면서 그는 몇몇 빌딩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대충 빌딩의 소유주들은 아버지에게 빌딩을 물려받은, 과시하기 좋아하는 허영 많은 방탕한 자들이었다. 돈 때문에 그런 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운명을 서글퍼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그가 대학입시를 앞에 둔 아들을 보낼 테니 좋은 말을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의 아들이 나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나는 그 아이를 근처의 경양식집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그 아이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아버지에 대한 자랑이었다. 아버지의 의협심 많았던 소년시절을 얘기해 주자 아들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친구는 육십이 넘으면서 경비원 자리를 그만 두었다. 그는 서울을 떠난 것 같았다. 할 일이 없게 되자 집에서 무료하게 세월을 보낸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정해진 코스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오십대 중반 회사에서 나왔다. 30년을 기계같이 반복하던 생활이 달라지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들인 내게 취직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만두장사를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집에만 있던 아버지는 더 할 일이 없자 육십대 중반에 훌쩍 이 세상도 퇴직을 하고 말았다. 친구도 그런 궤도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간 것 같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영정사진 앞으로 갔다. 그와 함께하던 소년시절이 떠오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정 속의 그가 이번에는 싱글거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인생이 별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좀더 아이들과 함께 밥도 먹고 바다도 보고 밤하늘의 별도 볼걸. 이보게 친구 이 세상 별 게 아닌 것 같아. 함께 해서 즐거웠어. 잘 있게’
  
  그는 윤기가 남은 채 가을바람에 먼저 떨어지는 낙엽이었다. 그 떨어진 낙엽 옆에 소리 없이 내가 낙엽이 되어 내려앉을 지도 모른가. 우리는 모두 대지의 뿌리로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그 깊은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집으로 향했다.
  
  
[ 2017-12-17, 17: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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