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의 변호사
변호사들이 法臺 위의 평화를 바라는 법원을 깨워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호해주는 사법부가 되게 해야 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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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 칼바람이 부는 1월 초순경이었다. 시장 통의 낡은 상가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박 변호사의 개인법률사무소가 있었다. 법률사무소는 어수선했다. 벽에 서류상자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고 노동자풍의 남자들 몇 명이 접이식 의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얼마 전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상영됐었다. 화면 속에서 주인공 변호사는 물병을 재판장에게 던지며 저항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작달막한 덩치의 박 변호사가 들어왔다. 그와 시장통의 음식점에 가서 부글부글 끓는 멸치찌개를 앞에 놓고 얘기를 시작했다.
  
  “재판을 하면서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법정구속을 당하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더라도 재판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으니까요. 변호사가 어떤 신청을 해도 받아주지 않는 거예요. 그게 재판입니까?”
  
  석궁 화살에 맞았다는 그 판사도 그런 불평을 받고 있었다. 변호사들이 요청을 해도 즉석에서 칼로 무를 베듯 기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 같았다. 배석판사도 판결문에서 인간에 대한 평가를 경솔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런 판사들에게 화살이 겨누어지고 물병이 던져지는지도 모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운동권 출신들이 법정에 가면 검은 고무신짝을 벗어 법대(法臺) 위로 던지곤 했다. 고시공부 시절 읽은 법률교과서가 교양의 전부고 판사의 검은 옷만 보이는 일부 판사들에 대한 항의였다. 박 변호사가 자신의 신산(辛酸)스런 삶의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광부의 아들로 컸습니다. 단칸방 하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어요. 아버지가 갱도에 두 번이나 매몰되어 한 번은 사흘 만에 그리고 또 한 번은 일주일 만에 구조되어 나온 적이 있죠. 그러다 어느 겨울 눈 속에서 돌아가셨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가스레인지 대리점 영업사원을 했었죠. 저 같은 영업사원이 대리점 물건을 파는 만큼 물건을 공급받는 게 아니라 재벌기업에서 물건을 강제로 떠넘기는 시스템이었죠. 대자본이 대리점을 착취하는 시스템이었지요. 한번은 제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갑질하는 기업의 부장에게 가서 빌고 오라는 지시를 했어요.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죠. 빌다가 보니까 이렇게 비굴하게 살다가는 아주 더러운 놈이 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법(法) 공부를 시작했죠. 실패하면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영업사원으로 다시 뛸 마음이었죠. 다행히 시험에 붙어서 변호사가 됐습니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까?”
  
  “변호사들이 돈에 팔리는데 너무 익숙해 있는 것 같아요. 돈에 집착하는 순간 자기 일을 망각하고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과 같이 뒹굴고 싸워나가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들 한 것 아닌가요? 저는 아직 차도 없고 집도 월세로 삽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만 살 수 있는 삶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제 손을 들어준 결정문을 가지고 회사로 간 적이 있어요. 법원의 결정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더 강하게 나오더라구요. 유혈사태가 벌어졌지요. 시위에 참여했다가 얻어맞아 입원을 하기도 하고 귀가 들리지 않아 지리산에 가서 요양을 한 적도 있습니다. 법이 소용이 없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억울한 피해자에게 분노하는 사회만이 정의를 이룰 수 있다. 법률사무소를 낸 인도의 간디 변호사는 런던에서 맞춘 양복을 입고 금시계를 찬 채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러다 기차에서 내쫓기고 마부에게 억울하게 얻어맞으면서 인권이란 개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돈에 영혼을 팔지 않은 변호사들이 자꾸 나와야 이 사회가 맑아질 것 같다. 변호사들이 법대 위의 평화를 바라는 법원을 깨워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호해주는 사법부가 되게 해야 한다.
  
  
[ 2017-12-26, 09: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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