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 ‘라이터(writer)’라고 새기고 싶은 사람
“제가 달이 뜬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헤맨 적도 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작가 ‘아서 밀러’를 찾기 위해서였죠."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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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서래섬 위로 부슬부슬 가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엷은 분말같이 내려오는 어둠과 납색의 강물에서 번지는 저녁안개가 부드럽게 스미면서 얽히고 있었다. 강가의 산책길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을 가진 잡지사 기자였다. 둘이는 근처의 찻집으로 갔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런던 북쪽의 작은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조지 오웰이 소설 ‘동물농장’을 구상한 곳이죠. 도중에 네비게이션이 중단될 정도로 외진 시골이었어요. 거기 가서 제가 느낀 건 절대고독 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 위대한 정신적 산물은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사십대 때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읽었다. 그리고 육십대인 지금 그의 작품들을 또 다시 읽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살아남는 고전들은 본질적인 것이 그 속에 들어있다. 그의 작품 ‘동물농장’을 읽고 전체주의 독재자가 어떻게 우상이 되어 가는가를 깨달았다.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단은 물론이고 일반 종교단체의 성직자들까지 제단 위에 올라 다른 존재로 변하는 속성을 우화로 알려주었다. 그는 사람들의 덮인 눈꺼풀을 열어주는 선지자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전과 함께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절감을 한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달이 뜬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헤맨 적도 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작가 ‘아서 밀러’를 찾기 위해서였죠. 처음에 갔을 때는 찾지 못하고 육개월 만에 다시 가서 그 묘비를 찾았죠. 자신의 묘비에 뭐라고 썼을까 궁금했어요. 가서 봤더니 소박한 바닥돌 위에 단순하게 ‘라이터(writer)’라고 적혀 있더라구요 그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그가 느낀 작은 감동이 내 마음에도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 같다.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다리의 한 단계라도 올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의 명칭을 비석에 남기고 싶어 했다. 화려한 비석에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쓰고 싶어 하고 장관을 쓰고 싶어 했다. 입던 군복에 별을 단 채 장군묘에 묻히고 싶어하기도 했다. 단순한 ‘작가’라는 소박한 묘비에서 왜 감동이 오는 것일까. 나는 그가 말을 계속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을 한 강가를 찾아가서 생각했어요. 뭐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하고 말이죠. 그렇게 틈이 나면 죽은 작가들을 찾아다니다가 저는 그들이 작품 속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들의 작품은 영원으로 통하는 걸 깨달은 겁니다.”
  
  앞에 앉은 그의 내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단순한 직업인으로서의 기자가 아니었다. 구도자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는 깡촌 출신입니다. 촌놈인 게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릴 적 자연과 대할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하고 있어요. 대학도 여러 번 떨어졌죠. 그 아픔과 열등감이 지금의 저한테 큰 밑천이 됐어요. 감사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십대 신문사에 들어가서 어느새 오십대 시니어가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에 조갑제 편집장 아래서 글을 배우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아리 기자 때는 조갑제 그 분이 싫었어요. 밥을 먹으러 가도 기사 얘기만 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러다 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가게 됐어요. 그 분은 이제 이 사회의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굳건한 반석이죠. 어떤 정치인도 그분의 위치를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정계나 어떤 자리도 탐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그렇게 지키기 쉽지 앉죠. 젊은 시절 그런 분을 모셨던 게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상관으로 모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림자처럼 지나가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고 보니 조갑제 씨는 ‘기자’라는 화두 하나를 평생 잡고 사는 분 같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가 다른 걸 탐내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나의 촛불이 비슷한 후배의 심지에 불을 붙여 또 다른 촛불이 되게 하는 것 같다. 그가 오십대 이후 자신의 희망을 이렇게 얘기했다.
  
  “예전에 신문사는 시니어가 되면 좀 쉴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젊은 기자들하고 똑같이 강도 높게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따로 책을 열 권 쓰는 게 저의 꿈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할까 하는 기로에 있습니다. 아직은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지만요. 저는 다른 오락은 손대지 않습니다. 저녁시간과 주말에 글을 씁니다.”
  
  그가 왜 한밤중에 작가인 아서 밀러의 묘비를 찾아가 ‘writer’이라고 쓴 걸 보고 감동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나라의 언론계에 그와 같은 프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나왔으면 좋겠다.
  
  
[ 2017-12-27, 10: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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