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합숙소 풍경
“서울역 앞 광장에서 어떤 사람이 일을 조금 해 주면 담배값이라도 주겠다고 해서 이름하고 주민등록 번호를 알려줬어요. 그랬더니…"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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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서울역 앞 노숙자 합숙소를 들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을 먹는데 아내가 내게 말한다.
  
  “길거리 군고무마 장사가 입는 낡은 파커를 입고 가요. 노숙자를 만나려면 노숙자같이 하고 가야 돼요. 옷을 제대로 입고 가면 변호사님 하고 법률상담을 받는 그들이 대접을 해 줄 거 아니야? 그러면 노숙자 합숙소로 다가가는 아무 의미가 없지. 그들과 마음이 흐를 수도 없을 거구 말이야.”
  
  이제는 아내가 한 술 더 뜬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산 싸구려 바지와 낡은 파커에 동네 기원에서 기념품으로 준 값싼 마후라를 둘렀다. 그만하면 노숙자가 입는 옷보다 더 못한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사 구석에 노숙자 한 명이 수염을 길게 기른 채 혼이 나간 듯 서 있다. 찬바람 때문에 땅 속 구석에 있는 것 같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노숙자 합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노숙자들이 일층에 들어차 있었다. 대합실 광경 같았다. 줄지어 있는 의자에 그들은 침묵하면서 앉아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 시선을 던지며 시간의 바다 위에서 부유(浮游)하고 있었다. 그 구석에서 한 중년의 여자가 가위를 들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은 노숙자의 머리를 깎아 주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티내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그렇게 와서 조용히 천사 노릇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층의 무료급식소로 올라가려고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안 돼. 못 올라가. 왜 왔어?”
  육십대 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입구를 막아서며 나를 제지했다. 그 안에서 질서를 잡는 노숙자 같았다. 부리부리한 눈이 나를 살피고 있었다.
  
  “저 법률상담…”
  내가 분위기에 맞게 약간 위축된 소리로 말을 꺼내려고 하자 “아, 법률상담 받을 거면 저기 가서 줄서서 기다려요.”라고 그가 약간 누구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법률상담을 하러 왔는데요.”
  “법률상담을 하러요? 변호사세요?”
  그가 나를 살피는 눈초리로 물었다.
  
  “그런데요.”
  “그러세요? 얼른 올라가지죠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그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는 쌀 봉지, 라면박스, 헌옷들이 쌓여 있었다. 사회단체에서 기증한 것 같았다.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것 같다. 그들이 굶어죽지 않고 얼어죽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온정들이 끊임없이 흐른다. 이층으로 들어섰다. 길다란 장방형의 식탁이 놓여있고 그 구석의 칸막이 안에서 거리의 변호사인 젊은 김 변호사가 노숙자 한 사람을 앞에 놓고 법률상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의 접이식 의자에 조용히 앉아 그들의 상담내용을 듣기 시작했다. 얘기를 하던 노숙자가 본능적으로 나를 살피면서 묻는다.
  
  “누구세요? 변호사세요?”
  “맞아요. 나는 늙은 변호사, 옆에 있는 분은 젊은 변호사.”
  
  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넓은 이마에 어울리지 않게 콧등에 굴곡이 있다. 그가 젊은 김 변호사에게 얘기를 계속했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어떤 사람이 일을 조금 해 주면 담배값이라도 주겠다고 해서 이름하고 주민등록 번호를 알려줬어요. 그랬더니 인부를 소개하는 업소에서 내 이름으로 불법 체류자나 다른 사람들이 인부로 나가게 하는 거예요. 담배값도 받지 못하고 이름만 도둑맞았어요.”
  
  “그렇게 해서 구체적인 피해가 있으신가요?”
  김 변호사가 묻는다.
  
  “구청에 가서 거기서 매달 주는 생계비를 받으려고 했더니 담당자가 안된대요. 일을 한 기록이 컴퓨터에 뜨기 때문에 이제 생계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거죠. 그것 때문에 노숙을 해도 구걸은 면했었는데 이제 큰일 났어요. 정말 억울해요.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하죠?”
  
  내가 옆에서 끼어들어 물었다.
  “그 인력소개소에 가서 담당자에게 왜 그렇게 했나 한번 물어봤어요?”
  
  “그 인력소개소가 가까이 있어서 가서 물어보려고 했더니 노숙자라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요. 나는 심각한데 담당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웃더라구요.”
  
  노숙자라는 건 무의식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인간 종류로 전락한 것 같았다. 길거리에 버려진 강아지를 보면 사람들이 내남없이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노숙자들은 말한다. 이틀 동안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도 누구 하나 말 한 마디 걸어주는 사람이 없더라고.
  
  “어떻게 노숙자가 됐어요?”
  내가 물었다.
  
  “공사장 인부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어요. 돈을 벌지 못하니까 집에 들어가기도 미안하고 그러다가 노숙자가 됐어요.”
  
  일거리가 떨어진 한계상황에 이른 사람들이 떨어지는 골짜기가 노숙자인가 보다. 그를 보면서 내가 김 변호사에게 말했다.
  
  “그 인력소개소에 전화를 걸어 거리의 변호사라고 하면서 왜 그런지 물어보지. 그리고 항의하는 내용증명을 일단 보내고 그 반응에 따라 다음 조치를 해 보자.”
  “그러죠.”
  
  김 변호사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쵸코파이와 비닐팩 속에 든 배즙을 앞의 노숙자에게 주었다. 그가 그걸 받아들고 공손히 인사하고 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숙자 합숙소의 3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찜질방 수면실에 놓는 이층침대가 줄지어 있고 군데군데 노숙자들이 누워 벽이나 천정을 보고 있었다. 모든 걸 희망까지도 잃어버린 인간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되는가 보다.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온도가 높아지면 고약한 냄새가 심하게 떠돌기 때문에 조금 춥게 온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어느새 노숙자 합숙소의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이 공부방에 갈 시간입니다.”
  
  젊은 김 변호사가 말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젊음이 좋은 것 같았다. 그와 지하철역에서 헤어져 나는 집으로 향했다. 붉은 빛을 띤 저녁노을이 납색으로 흘러가는 겨울 강물 위에 붉은 띠를 만들고 있었다.
  
  
[ 2017-12-31, 14: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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