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즐거운 인생
"평생 출퇴근하면서 차를 몰았는데 운전이 제일 쉬울 것 같아서 핸들을 잡은 겁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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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쪽에서 점심에 모임이 있어 서초역 네거리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의 뒤통수에는 장마가 지나간 강변의 수초처럼 흰머리가 몇 오라기 부스스하게 나 있었다. 대충 육십대 중반쯤은 된 것 같다. 출발한 택시가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백밀러로 슬쩍 뒤쪽의 나를 보는 기사와 눈길이 마주쳤다.
  
  “손님 죄송하지만 한 말씀 여쭤 봐도 될까요?”
  택시기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 앉아서 핸들을 잡고 있는 그는 말이 하고 싶은 사람 같았다.
  
  “하시죠.”
  기사들의 하소연 속에서 나는 종종 세상을 구경했다.
  
  “저는 공대 기계과를 나오고 큰 회사에서 공장장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정년퇴직을 했는데 제가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밖으로 나가 여자들과 어울려서 놀러 다녔죠. 그랬더니 어느 날 아내가 말하더라구요. 예전의 존경스럽던 남편이 이제는 실망스럽다구요.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이렇게 택시를 몰게 됐습니다. 그래도 평생 출퇴근하면서 차를 몰았는데 운전이 제일 쉬울 것 같아서 핸들을 잡은 겁니다.”
  
  “힘들지 않으셨어요?”
  내가 되물었다. 대기업 임원을 하다가 퇴직을 하고 택시운전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갑자기 하루 열 시간을 좁은 공간에 갇혀서 매연을 마시면서 운전하면 눈이 빙빙 돌고 다리가 휘청거린다고 했다. 반말을 하면서 괴롭히는 승객도 있다고 했다.
  
  “운전을 시작할 때 서울 지리를 몰라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좋은 사람들이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나쁜 사람은 극히 일부였어요. 그런데 더러 차별의식을 가진 사람은 있었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제 앞에서 재산자랑을 막 하다가 마지막에 ‘어 이런 자랑을 택시기사 앞에서 하면 안되는데’ 하더라구요. 택시기사는 한 계급 낮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도 3층 건물도 있고 자식들도 다 잘됐는데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화가나더라구요.”
  
  직업에 따라 사람들이 가지는 고정관념이 우리 시대에는 심했다. 광화문에 있는 프레스센터에서 내려 19층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대학 동창들이 모여 있었다. 한때는 잘나가던 친구들이 많았다. 재벌그룹 부회장도, 사장도 있었고 고위관료나 은행장을 지내기도 했다. 세상의 지위는 잠시 입었던 옷에 불과했다. 대부분 정년퇴직을 하고 이제는 자연인이 되어 있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동네에 젊은 청년이 하는 음식점이 두 군데 있어. 하나는 피자집이고 다른 한 집은 스테이크집이야. 가보면 항상 사오십 명씩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긴데도 사람들이 그걸 당연한 걸로 알아. 음식을 잘 만드는 것도 하늘이 내려준 축복인 것 같아. 우리가 자랄 때는 높은 관직에 오르거나 재벌회사 사장이 돼야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야. 요즈음은 간장게장을 잘 만들어서 월 몇천만 원씩 버는 그런 청년이 용인 것 같아.”
  
  가치관이 바뀌었다. 요즈음은 한류스타가 국제적으로 인기고 연예인이면 모두들 우러러본다. 예전에는 광대라고 무시하던 시절도 있었다. 음식장사를 낮게 보고 기피하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친구가 또 이런 말을 했다.
  
  “내 처남은 건설회사에 있다가 나와 고기집을 차렸는데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사람들이 오지 않아 매상이 들쭉날쭉 했어. 그러다가 사업을 바꿔서 필리핀으로 가서 방사능이 막아지는 비닐을 생산하게 됐는데 그게 때를 만나 날개 돋힌 듯 팔리게 된 거야. 성공한 거지. 내가 거기 가서 필리핀 현지 사람들 사는 모습을 봤어. 없어도 내일 걱정을 하지 않고 살더구만. 한 달 몇십만 원을 가지고 만족하면서 사는 모습을 봤지. 천주교의 영향으로 산아제한을 하지 않고 아이가 생기는 대로 출산을 해. 미국은 식민정책으로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놔두었어.”
  
  삼십대 때 회사에서 나와 칼국수와 만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던 친구가 아직도 국수국물을 만들고 있다. 사업을 크게 하던 친구가 노년에 일본에서 팥소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와 도넛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교수를 하던 친구가 지방에 작은 모텔을 얻어 열심히 청소를 하면서 손님을 받기도 한다. 인생 후반부에도 각자 자기 일을 찾아 성실하게 사는 것 같다. 즐거운 인생이다.
  
  
  
  
[ 2018-01-02, 09: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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