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반으로 줄이세요
“일이 벅찰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하지 않아요. 이번 달 잡지는 그래서 내지 않았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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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홀로’ 잡지를 만드는 칠십대 김 목사 부부가 나의 집으로 놀러왔다. 책을 만든 후 인터뷰를 계기로 알게 된 부부였다. 남편은 질문을 하고 아내는 사진을 찍었다. 서울 외곽의 18평의 낡은 주공아파트가 그들의 집이자 일터였다. 김 목사는 열심히 취재하고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쓴다. 아내는 잡지 편집을 하고 인쇄소나 서점과 연락을 하는 일을 맡고 있다.
  
  바닷가를 가면 작은 배에 부부가 타고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농촌에 가면 늙은 부부가 사과밭을 함께 가꾸기도 하는 광경을 본다. 그들은 함께 작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김 목사 부부와 집 근처의 음식점에서 국수와 전으로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와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김 목사가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낡고 좁은 집이지만 나의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창고같이 으쓸한 화장실부터 개조했어요. 타일을 구해다 바르고 벽에 모조품이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걸었어요. 그랬더니 기분 좋은 장소가 되더라구요. 을지로에 갔더니 유행이 지난 데코타일을 싼 값에 가져가라고 하더라구요. 그걸 사서 아파트에 깔았더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구석의 방 한 칸을 제 집필실로 만들었습니다. 저의 성역이자 천국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그는 부자였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아파트 주변에는 좋은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도서관이 있어요. 어떤 책이든 빌려다 볼 수가 있습니다. 늙은이가 살기에 얼마나 좋은 환경입니까? 제가 사양을 했는데도 주위에서 저보고 노인에게 주는 보조금을 타라고 강권하는 거예요. 단지 늙었다는 명목으로 지하철 요금도 공짜고 생활비도 지원받습니다. 아파트도 ‘행복 론’이라고 해서 3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매월 일정액씩 내면 자기 소유가 되는 겁니다. 매월 내는 돈이 임대료 수준밖에 안돼요. 그렇게 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가 나의 소유가 되는 거죠. 저는 늙어가면서 천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해서 이 나라를 원망한다. 비판기능을 가진 언론이 만드는 그늘 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비난하고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이 걱정을 한다. 대학을 나오고 기대치가 높아서 사람들은 실망하는 것일까. 김 목사의 경우 그는 명문고를 나오고 신학대를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미국 유학을 갔다 와서도 초대하는 교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출판사를 하다가 망하고 젊은 시절 방황도 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63세부터 '나 홀로'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남들은 인생의 일들을 마칠 때 저는 시작한 셈이죠. 저는 그때 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젊어서의 실패는 저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었죠. 일자리가 없어 출판사를 했던 것도 제가 글을 쓰게 하려고 만드신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제가 나이 먹었다고 하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같이 나이 70을 확보하지 못했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내가 나이가 먹은 게 아니라 이만한 세월을 확보한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살아보지 못한 날들을 저는 확보한 거죠.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나서서 말했다.
  
  “저는 젊어서 광고회사에 다녔어요. 카탈로그나 팜플렛 브로셔를 만들었는데 매일 밤 야근이 보통이었어요. 글자 하나만 틀려도 전체 반품이 들어오는 바람에 피가 말랐어요. 인쇄에 넘겼는데 그 때 오탈자가 발견되면 정말 앞이 깜깜했죠. 뒤늦게 남편의 잡지 만드는 일을 돕게 됐어요. 광고회사를 다닐 때 경험이 있고 새롭게 편집기술을 배워서 남편과 잡지를 만들게 됐어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니까 얼마나 일이 즐거운지 몰라요. 혹시 오탈자가 생겨도 그래 내 잡지인데 내 책임이지 누가 뭐래 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나이 먹고 남편과 둘이 호흡을 맞추어 하는 일이 그냥 즐겁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매월 잡지를 내는 게 벅차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나는 김 목사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벌써 세상일에 피곤을 느끼곤 한다. 30년 동안 하던 변호사 일을 접고 인생 후반부에 변화를 모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일이 벅찰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하지 않아요. 이번 달 잡지는 그래서 내지 않았어요. 매달 꼭 내겠다고 자신을 속박하는 건 젊었을 때의 일이죠. 이제는 그렇게 묶이지 않아요. 힘들면 쉬면서 가요.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요. 우리가 미리 돈을 받고 잡지를 파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는 다른 잡지와 경쟁도 하지 않고 댓글도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요. 엄 변호사도 이제부터는 하던 일을 반으로 줄이세요. 그게 늙어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젊은 날 매일 계획을 세워놓고 나를 속박했다. 문득 어떤 책에서 본 한 광경이 떠올랐다. 어떤 아이가 무거운 돌을 들고 힘겨워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어른이 그걸 보고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그렇게 하면 큰일이 난다고 하며 돌을 계속 들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그냥 들고 있던 걸 내려놓으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말이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아닐까.
  
  
  
  
[ 2018-01-05, 13: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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