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칸 속 나의 인생
찾아온 사람이 중요하지, 기도나 운동 같은 자기의 기계적인 일정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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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 일본에서 우연히 본 광경이다. 관광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늙은 운전기사가 자기의 조그만 수첩의 격자 칸에 작은 선을 긋고 그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숫자를 적고 있었다. 그날 자신이 운행한 거리였다. 그의 운전은 꼼꼼했다. 양손으로 핸들을 단정히 잡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앞을 보는 성실함이 그대로 그의 주변으로 향기같이 뿜어나는 것 같았다. 과속이나 오는 내내 급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았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삶이 느껴졌다.
  
  호텔의 화장실을 가면 시간마다 요소마다 체크를 했다는 점검표가 있다. 인간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정확히 일을 하려는 매뉴얼이다. 공사장에는 공사의 순간순간 공정표가 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사회나 개인이나 그런 게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수첩에 네모난 격자 칸을 만들어 놓고 감옥의 죄수가 하루하루를 달력에 엑스표를 쳐 나가듯 순간순간 내가 한 일을 재미로 표시해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신세계에 관한 독서를 하고는 빨간색으로 네모 칸에 사선을 그었다. 그 다음은 글쓰기였다. 변호사로서 법원에 낼 여러 종류의 서류였다.
  
  그게 없는 날은 수필과 소설을 썼다. 갑자기 머리에서 어떤 흐름이 흐를 때 순간 사진을 찍듯 그 흐름을 모니터 위에 찍어내는 게 내가 즉흥적으로 쓰는 수필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내가 취급했던 사건 중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모티브로 삼아 소설을 만든다. 사건기록을 살피며 그 당시의 순간을 돌이켜 보며 반성을 하기도 하고 당사자의 울고 웃던 광경을 떠올리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내가 처리한 사건은 단순한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가 된 나의 인생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것을 나는 기도행위로 간주했다. 그래서 글 쓰는 대부분 시간 옆에 촛불을 켜 두었다. 촉촉한 서정이 배인 문학적지향이 아니라 성령이 나의 영혼에 명령하는 것을 대신 기록하게 해 달라는 마음이었다. 글쓰기와 함께 독서와 시나 문장공부는 파란색으로 네모 칸에 금을 그었다.
  
  문장 공부란 별 게 아니다. 독서를 하다가 좋은 문장이나 깨달음이 있는 부분은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왔다. 빈 시간이면 음악을 틀어놓고 단어 암기하듯 그걸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외국어를 암기하는 사람도 있고 바둑의 사활의 묘수를 그렇게 외우기도 한다.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 이름이나 산 이름을 반복 암기하는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일 것이다.
  
  재판이나 상담 그리고 일은 검은색으로 그리고 영화나 바둑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이나 가족과 식사 등 나름대로 즐거운 일들은 녹색으로 선을 그었다. 네모 칸 하나의 기하학적 선이 다 쳐지면 두시간반 정도 걸렸다. 네모 한 칸마다 숫자를 부여했다. 오십대 중반에 시작한 게 육십대 중반의 나이가 되니까 이제 그 칸이 만개가 되었다. 따지고 보니까 사십대도 삼십대도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중학입시가 치열하던 초등학교 때도 나름대로 하루의 일과표를 나름대로 작성해 그렇게 진행해 나갔다.
  
  옆에서 지켜본 아내는 나의 행동을 보면서 숨이 막혀 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숨구멍을 열어두었다. 성경 속의 아브라함이 기도하는 시간에 사람이 찾아왔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꿀 같은 기도시간을 방해하는 그 방문자가 못마땅했다. 그러다 곧 생각을 바꾸었다. 찾아온 사람이 중요하지 기도나 운동 같은 자기의 기계적인 일정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매뉴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게으르지 않은 충만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십대 고시공부를 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능력이 부족한 나 자신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읽었던 책에서 열매를 따려 하지 말고 매일 성실히 물을 주라는 말을 봤다. 그러면 어느 순간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다. 나는 공책에 네모 칸을 만들고 매일 무심히 법서(法書)를 일정량 정해 읽어나갔다. 그게 쌓이고 쌓이니까 어느 날 합격통보가 온 면이 있다. 물론 그때도 질주하지 않고 나름대로 숨구멍을 만들었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늦은 밤 시간에 조용히 생각해 본다. 요양병원에서 정신이 혼미한 채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거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삐걱거리는 건강이 받쳐 준다면 그래도 십년 정도의 시간은 하나님한테서 선물로 받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뭐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제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살기로 마음먹어 본다. 순간을 사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일도 찾아오는 이웃을 돕는 일도 놀이로 해야겠다. 보고 싶던 사람을 찾아가 맛있는 밥을 사야겠다. 영화를 보고 바둑을 두고 세계 일주를 하는 배를 타보는 꿈을 꾸어야겠다. 즐거움의 단위마다 네모 칸에 금 하나를 그을 것이다. 시작은 있고 끝이 없어도 좋다. 그게 인생이니까.
  
  
  
[ 2018-02-16, 06: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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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피리1    2018-02-16 오전 8:35
엄 변호사님! 매번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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