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 윤과 윤항기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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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씩 TV 다시보기를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본다. 각광받던 스타들이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평범한 아파트에서 보통사람 같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당연한 것인데도 그렇다.
  
  토크쇼 사회로 유명하던 자니 윤씨가 백발의 노인 환자가 되어 미국의 요양병원에서 침대위에 있는 혼자 있는 모습은 쇼크였다. 돌보아줄 가족도 돈도 없는 것 같다. 뇌경색에 뇌출혈이 겹친 그의 뇌리에는 화려한 과거도 망각 속으로 가 버린 것 같았다. 몇 년 전 대통령선거를 도운 그를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보랏빛 새벽 여명이었고 중년은 밝음이었던 것 같다. 그는 노년의 기슭에서 어두움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 운명의 인과관계는 타인이 알 수 없다. 다만 십년 전에 이혼한 전처는 인터뷰에서 그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성격을 잠시 언급했다. 침대 위의 그는 연예인이 선거에 참여하고 공기업의 감사라는 외도가 자신을 무너뜨렸다고 모호한 말을 더듬거렸다. 성격과 욕망이 그의 운명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비슷한 또래의 노인이 된 가수 윤항기씨의 인생길을 전해주는 프로를 보았다. 그가 멤버였던 그룹사운드 키 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라는 곡은 젊은 시절 우리 세대의 마음속을 파도로 출렁이게 했다. 대학시절 레코드 가게마다 다방마다 나이트클럽마다 울려퍼지던 젖어 흐르는 듯한 그의 노래들은 삭막했던 우리들의 내면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노인이 된 그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무릎 위의 손자의 셔츠 속에 손을 넣어 등을 문질러 주면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악극단 단장이었고 어머니는 가수였지. 내 동생 윤복희는 여섯 살 때부터 무대 위에 올라 춤추고 노래할 정도로 끼가 있었지. 그런데 우리 남매가 열 살도 되기 전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무대 위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거야. 갑자기 천애고아가 된 우리 남매는 엄마 아버지가 묵던 여관을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했어. 동생 복희는 여자아이니까 그래도 빨래하고 잔심부름을 시킬 수 있으니까 여관에서 받았어. 그런데 나는 나가라고 하는 거야. 어린나이에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었겠어? 거지들이 우글거리던 청계천 다리 밑으로 갔지.”
  
  “거기 빈민들이 모여 판자 집을 짓고 살았죠?”
  인터뷰를 하는 피디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빈민도 못되고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다녔어. 얼어붙은 겨울이었는데 한번은 동생인 복희가 여관에서 빠져나와 시장통에서 구걸하는 나한테 왔는데 그 옆이 꿀꿀이죽을 끓여 팔고 있었어.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에 물을 붓고 끓여서 한 그릇에 얼마씩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팔 때였지. 거기서 더러 이쑤시개도 나오고 담배꽁초도 나왔지. 배를 곯았는지 동생 복희가 너무 먹고 싶다고 퍼질러 앉아서 우는 거야. 마음은 아프지만 내가 거지인데 사 줄 돈이 있나? 그런데 바로 우리 뒤에서 꿀꿀이죽을 사가지고 가던 여자가 바닥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꿀꿀이죽이 사정없이 내 머리를 덮은 거야. 나는 뜨거운 건 아랑 곳 없고 흐르는 꿀꿀이죽을 깡통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얼핏 나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의 뇌리에는 그들 남매의 화려한 무대만 떠올랐다.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열창을 하던 이십대 윤복희씨의 예쁜 모습이 나타나고 이어서 사이키 조명 속에서 흰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던 환상 같은 윤항기씨의 모습만 슬라이드 영상같이 나타났다. 추운 겨울 고치 속에서 오들오들 떨던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금가루와 은가루를 세상에 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온 사람들이었다. 윤항기씨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앞에서 세상을 향해 고백하기 힘든 과거를 공개했다. 이미 그의 영혼은 완전히 치유된 것 같아 보였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어두움에서 나와 어두움으로 사라지는 인생들이 많았다. 도중에 빛이 보여도 그들은 빛으로 나가는 걸 거부했다. 분노나 탐욕은 사람들을 어둠으로 끌어들이는 길잡이였다. 반면 어떤 존재는 어둠 속에서 헤매며 자기를 찾는 사람들의 영혼에 빛을 비추어주며 그를 끌어올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의 문을 모두 활짝 열어젖힌 노 가수 윤항기씨의 얼굴에서 사랑 자체인 하늘에 계신 그분의 빛이 반사되는 것 같은 걸 본 느낌이었다.
  
  
[ 2018-02-18, 09: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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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공!    2018-02-18 오후 11:14
무학산, 나이든 님의 멘트는 좀 아쉽다. 그 글은 자신의 인격인데. 엄변호사님의 글은 그 개인의 견해로 존중받으면 안되는 것인지. 점쟎으신 무학산 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니 많이 아쉽네.
   정답과오답    2018-02-18 오후 10:29
엄상익 같은 분이야 말로 배우고 싶은 분입니다
선생 같은 분이 한국인이라는것에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철딱서니 없는 민족 막되먹은 인간들사이에서 빛을 발하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글 아름다운 이야기 고맙습니다
   證人    2018-02-18 오후 4:27
잘 읽었습니다. 윤항기 씨의 사연은 처음 접하는데 그랬었군요.
사람 한세상 삶이 화려하든 처절하든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갈 수 있는 운명은 최고의 행운인 듯 싶고요.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 한 때 주일에 교회나 성당에 나가 회개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가증스럽다고나 할까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게 아니라 죄를 짓지를 말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면서 저절로 회개하는 마음이 생기는군요. 아직도 교회 문턱을 넘지는 못하고 있읍니다만.
   naidn    2018-02-18 오후 4:08
나이든 내가 한 마디 해야 하겠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있다고 자부하겠지만 유수한 愛國의 귀한 조갑제 場에서 이런 류의 글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의미한 시간 낭비의 글이라고 평하고 싶다.
더 나아간다면 우리 청소년들의 가치관 형성, 인격형성에 해가 되지않을까 충고하고 싶다.
아래 무학산의 글에 공감하는 바 많다.
엄상익 군은 신념이 있는가 ?
愛國이 뭔 지 아는 가 ?
엄 군은 愛國의 글을 쓸 줄도 아는 가 ? 고 묻고싶은 심정이다.
시국이 이렇게 危重할 때 엄 군 같은 지식인들의 애국의 글이 있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미쁠까 ?
엄 군은 뉴욕의 미꾸리 반 가 하고 많이 닮아 보인다.
   지유의메아리    2018-02-18 오후 2:11
윤항기씨는 그냥가수가 아니였고 목사님이세요 어디가 달라도 다르겠지요 엄 변호사님 이 글의 결론은 무었입니까 과연 우리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하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요 제말이 좀 과했나요 인생철학이나 종교와 마주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살아져 가겠지요 감사합니다
   무학산    2018-02-18 오전 11:52
엄변호사님의 글은 좋다.
좋은 점이 많기도 하지만 세상이 다 인정하는 좋은 점을 여기서 또 칭찬하면 낯 간지러운 찬사이겠기에 여기선 비판만 하겠다

엄변호사의 글에서는 엄씨 자신은 항상 도통한 자세를 보이는 듯하다 세상사에 달관을 해도 보통 달관을 한 자세가 아니다. 훌륭한 글인데도 독자를 끌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자나 가수가 한때 인기가 있었던 것을 "화려했다"고 쓸 것 까지는 없다. 그러지도 못한 소시민들이 주로 읽는 글에서 그들의 화려함을 말하면 소시민들은 뭐란 말인가? 소시민의 기를 죽이는 글이자 불쾌감을 돋구는 글인 것이다 엄씨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화려한데 구태여 엄씨까지 거들 이유는 없다

반반한 연예인치고 쟈니 윤이나 윤항기만큼 못한 사람도 없다
그런 데에 비하면 화려하다고 말할 군번이 못 된다. 물론 엄씨의 눈에는 화려할 지 모르지만 말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남의 화려했던 과거와 지금의 불행을 대비시켜 놓고
자신은 그런 것에 초연한 듯이 말하면 독자는 물론 그 연예인들마저 기분나빠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주제로 엄변호사 님의 이번 글을 논박하는 글을 써 올리고 싶었지만,
회원토론방에 글쓰기가 안 되는 바람에 댓글에만 그치고 만다 엄변호사에게는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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