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청와대에 가서 도로공사 사장 지망서를 냈어. 그랬더니 여러 지원자가 서류를 냈다면서 청와대가 아니라 세종대왕 앞쯤 가서 기다려 보라는 거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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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말 대학 4학년 겨울이다. 얼어붙은 남한강가의 오두막 같은 방갈로를 빌려 지내고 있었다. 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시면서 다리 위로 지나가는 기차의 촉촉하게 젖은 기적소리를 들으면 영혼이 수채화의 물감처럼 부드럽게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대부분 어떤 기업에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였다.
  
  나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얼어붙은 강 위로 푸른 땅거미가 스며드는 걸 보면서 수도승처럼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보았다. 생각은 현실이 되는 것 같다. 지나보면 보이지 않는 내면 속의 깊은 존재가 스크린 같은 흰 막 위에 펼쳐진 나의 마음을 읽고 그렇게 몰아간 것 같았다. 세상의 권세나 자리를 탐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싫어졌다. 20대 중반부터 군사법원의 판사를 했었다. 판결을 내리는 양형기준만 머릿속에 있었을 뿐 한 사람 한 사람 부대의 철조망을 넘게 된 애절한 사연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독재정권 시절 총기를 들고 시내로 나와 여러 명을 인질로 잡은 채 사람을 죽인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험하게 세상에 저항했는지 볼 눈이 없었다. 그냥 기계적으로 주위의 의견에 편승해서 극형을 선고하는 데 관여했었다. 나는 판사는 해서는 안될 사람인 걸 깨달았다. 30대 초 검사 직무대리로 몇 달간 검사청을 구경한 적이 있다. 포승에 묶인 피의자가 빨간딱지가 붙은 사건기록과 함께 줄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 배당된 사건 기록을 보는 순간 나는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추악한 일들을 조잡한 문체로 엮은 3류 조서문학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화장실의 벽에서 보는 낙서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있었다. 인간사회의 시궁창 속을 묘사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수사기관은 사회의 쓰레기를 치우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같은 방에서 일하던 검찰서기에게 왜 검찰에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떤 높은 놈도 그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머리를 굽히는 그 맛에 있다고 했다. 파견된 경찰관은 내게 이렇게 자랑했다.
  
  “제가 경찰에서는 졸병이지만 말이죠. 그래도 거리로 나가 보세요. 경찰 신분증을 내밀면 모두 겁을 먹고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면서 눈치를 살펴요.”
  
  공무원을 하는 실질적인 이유인 것 같았다. 하바리 권력인 완장의 맛에 취해 몸에 시궁창 냄새가 밴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30대 중반 대통령 직속 사정기관의 공무원을 몇 년 해 본 적이 있었다. 대통령 앞에서 장관들의 눈이 민감하게 돌아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개에게라도 권력의 옷을 입혀주면 그 앞에 가서 굽실거릴 사람들이 많았다. 박근혜 의원이 한창 인기가 올라가면서 승승장구할 때였다. 사회에서 알게 된 정치를 지향하는 한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박근혜 치마꼬리만 잡고 따라다닐 거예요. 입후보해도 연설할 필요도 없어. 박근혜 녹음테이프만 선거구에 틀어놓을 거야. 그러면 당선이 틀림없을 것 같아요. 요즈음은 박근혜가 움직이는 때 따라다니는 기자에게 미리 잘 해줘요. 그러면 내가 박근혜 옆으로 다가서면 그 장면을 찍어서 보도에 나가게 하는 거야. 그러면 세상은 내가 박근혜 측근으로 아는 거지.”
  
  그는 잡초같이 강인한 인물 같았다. 그런 사람이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대사급이 되어 해외공관으로 나갔다. 나는 그를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학벌이나 스펙이 좋지 않은 집념가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 우뚝 고지에 서려면 그런 뻔뻔함과 집요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면의 영혼의 관점에서 그가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바른 삶의 방향일까 정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아는 도로공사 사장을 지낸 선배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있다.
  
  “청와대에 가서 도로공사 사장 지망서를 냈어. 그랬더니 여러 지원자가 서류를 냈다면서 청와대가 아니라 세종대왕 앞쯤 가서 기다려 보라는 거야.”
  
  “세종대왕 앞이라뇨?”
  내가 되물었다.
  
  “청와대 쪽이 아니고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앞까지 사장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섰는데 내 위치가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내가 도로공사 사장이 됐어. 서울공대를 나오고 해외 건설 공사장을 평생 돌고 대형건설회사 부사장까지 지낸 토목의 대가인 나를 대통령께서 알아 보신 거야. 그러다 임기가 끝나자마자 얼른 나왔어.”
  
  “그렇게 힘들게 들어가더니 왜요? 더 하지?”
  내가 말했다.
  
  “버티면 당장 모함하는 내용이 든 진정서가 밑에서 날아들고 수사를 한다고 달려드는 게 생리인데 뭘. 나 다음으로 할 사람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말이야. 얼른 나오지 않으면 다쳐.”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올 때도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30대 후반 권력이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의 소위 출세라는 걸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있을 곳은 경주트랙이 아니라 그 문을 나가면 펼쳐지는 넓은 초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뒷골목에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지난 30년간 성경을 보고 책을 읽고 모니터를 보고 작은 글을 쓰면서 살아왔다. 육십대 중반을 넘긴 지금은 앞으로 십년 정도 하나님이 이 생활을 더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젊은 시절 눈 덮인 남한강을 보면서 내가 소망했던 걸 모두 들어주신 것 같았다.
  
  
  
[ 2018-02-24, 16: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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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전독조    2018-02-25 오후 12:18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사색하면서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의 성추행에 대한 의견도 한번 피력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
   미트고트    2018-02-25 오전 12:47
변호사님 글을 늘 관심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가졌던 여러 인생의 의문에 대해 사색하시고 나름대로의 대답을 주셔서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요.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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