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며칠 동안 꿈을 꿀 때는 즐거웠어.”
바닷가나 숲 속의 아름다운 삶도 내가 자연인으로 그만한 노동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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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툭 꺼냈다.
  
  “얼마 전 내가 암에 걸린 병원 이사장 기도해 주러 갔잖아? 정말 너무 아파하더라. 의사인데도 자기 병은 어쩔 수 없나봐. 그 이사장 재산도 많고 남부러운 게 없었는데 말이야.”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의사는 병원경영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았다. 그가 이사장인 의료재단 산하에 몇 개의 커다란 병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 소유한 바닷가 저택 안에는 요트선착장까지 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죽자 상속문제를 두고 불꽃이 튀었다. 그 법률상담을 해 준 적이 있었다. 아내가 말을 계속했다.
  
  “여보, 이사장이 살았을 때 바다낚시를 하려고 남해의 바닷가에 지어 놓은 건물이 있대. 포구의 선착장 바로 앞에 지은 집이래. 앞에는 요트가 있고 일층은 예쁜 카페를 만들 수 있대. 위는 방 몇 개를 넣어 주인이 자기도 하고 없을 때면 팬션이나 모텔처럼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했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처럼 그런 바닷가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때때로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를 팔면 그 바닷가의 집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와 의논했다.
  
  “이사장이 죽고 가족 중에 그 바닷가에서 살 사람도 없고 관리도 귀찮아 할 테니까 흥정을 해볼 수 있을 걸. 내가 주소를 받아둘께. 일단 한번 가 봅시다.”
  
  세상살이에서 밀려난 이제는 살던 곳을 떠나 숲 속이나 바닷가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퇴직을 한 많은 친구들이 서울을 벗어나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노년에 둥지를 틀 곳을 찾아 남해의 바닷가와 장성의 편백나무 숲을 돌아보는 여행길에 올랐다. 남해대교를 건너 조선시대의 소설가 김만중이 귀양을 왔다는 섬 ‘노도’ 옆 해안도를 지나 작은 포구마을로 들어섰다.
  
  아직 찬바람이 부는 이월의 포구는 쓸쓸했다. 포구 끝에 장방형의 건물이 보였다. 빈 건물은 문이 잠긴 채 괴괴한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건물 옆 빈터에는 주인 잃은 요트가 절망한 듯 웅크리고 있었다. 포구마을은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아내와 내려온다고 가정해 보았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노동을 안해 본 나는 그 집을 관리할 능력도 배를 운전할 기술도 없었다. 어부들만 몇 집 사는 쓸쓸한 그곳에 끼어들어가 융화하기에는 이미 너무 나이가 먹은 것 같았다.
  
  다음날은 장성의 편백나무가 가득 찬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귀촌을 한 열 가구와 원주민 열 가구 합쳐서 이십 가구 정도 사는 마을이었다. 우리 부부가 묵은 숲속 팬션의 여주인이 아침 산책길에 산 위에 있는 황토로 지은 오두막 한 채로 안내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들어찬 산꼭대기에 버섯같이 지은 본채와 마당 끝에 작게 지은 황토구들방이 있었다. 그 집을 보면서 법정스님이 살았던 깊은 산 속의 오두막이 떠올랐다.
  
  “여기 와서 혼자 사시던 남자분이 몇 달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이제는 빈 집이죠. 집 안은 그 분이 살던 모습 그대로예요. 한번 들어가 보시죠.”
  
  나는 그녀를 따라 황토로 만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보다는 넓은 공간이었다. 살던 사람은 산 속의 오두막 안에 나름대로의 천국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흙으로 빚은 벽난로가 있고 그 앞에는 미니 당구대가 보였다. 벽에는 앰프시설이 있고 엘피판이 가득 나무선반에 들어차 있었다. 기둥에는 이런 글이 세련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시작하는 방법은 그만 말하고 이제는 행동할 때’
  
  간암에 걸린 오십대의 그는 몇 년 전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와 자기 손으로 황토 오두막을 짓고 산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했다. 나는 옆에 보이는 그의 작은 침실을 보았다. 침대위에 얇은 이불이 그대로 덮여있고 옆의 옷걸이에는 그가 살았을 때 입었던 셔츠와 바지들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아내가 아니라 나 혼자라면 그렇게 산 속에서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의 오두막 주변 산 길 아래로는 죽은 남자가 심어둔 작은 삼나무들이 보였다. 이제 그 주변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울창한 삼나무 숲이 될 것 같았다. 편백나무가 가득 들어찬 그 마을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한 남자의 헌신과 희생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며칠 동안 꿈을 꿀 때는 즐거웠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바닷가나 숲 속의 아름다운 삶도 내가 자연인으로 그만한 노동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익숙한 대로 도심의 구석에 살면서 평생 내가 하던 일을 하다가 죽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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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황혼의 꿈|작성자 엄상익
[ 2018-02-27, 05: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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