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보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분들께
기차가 지나가는 산자락에 사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은 저녁마다 등불을 켜 창가에 얹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마을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위로를 얻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지난밤에 내린 봄비로 창 밖으로 보이는 공원도 땅도 나무도 촉촉하게 젖어있는 게 보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고 댓글로 격려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와 함께 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민을 얘기해 주시기도 하고 언제 시간이 나면 차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순간이면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영혼의 교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금새 그 생각이 바뀝니다. 그 분이 글을 통해서 보고 상상하는 나와 현실의 나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갑자기 40년 전 공부하던 해인사의 한 암자가 기억 속에서 떠올라 갔습니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 도착한 해인사 아랫마을은 한적했습니다. 이십대 중반에 이따금 마을로 내려와 갔던 ‘홍도다방’이 오랫동안 비워둔 채 겨울바람에 간판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손님은 저 혼자였습니다. 늙은 주인 내외가 동네목욕탕으로 가려고 하다가 저를 보고 산채비빔밥을 준비해 내왔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바래고 목에 골 깊은 주름이 보이는 주인 할머니 그리고 그보다 몇 살 더 되어 보이는 남편이 되는 할아버지와 과거를 떠올리면서 몇 마디를 나누었습니다. 주인할머니는 40년 전 이십대 때 해인사로 놀러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평생을 밥장사를 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그때 고시생이었으면 이제 세상일도 다 끝났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홍도다방도 오래전에 문을 닫고 비워둔 채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어르신’이었습니다. 어색하고 이상했습니다. 존중해 주려고 하는 것보다는 내 나이를 자각하게 하는 호칭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날 밤 근처의 조용한 모텔에서 나는 늙은이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제 개인의 주관적 의견으로는 고목껍질 같은 늙은이가 되면 가급적 남들 앞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탁월한 지혜와 연륜이 있는 분은 예외일 것입니다.
  
  어디서 나와서 얘기하라는 초청에 저는 거의 응하지 않습니다. 제 주제를 알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외는 속에 있는 성령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떤 메시지를 전하라고 강하게 명령할 때는 거부하지 못하고 나간 적이 있습니다.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사양했습니다. 스스로 내놓을 것이 없는 인간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외아들 증후군이 있었습니다. 내성적이고 남들과 사귀는데 미숙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도 동창회나 사교모임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인위적으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일거리를 따고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사건만 하겠다고 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물론 눈앞에 돈이 보이면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 더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바다를 눈앞에 둔 강물 속의 물 한 방울 같은 저는 요즈음 친했던 친구도 만나는 일이 뜸한 실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폐증상 비슷하다고도 느낍니다. 그러나 영혼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늙어서 읽는 경전과 고전 속의 수많은 인물과 뜨겁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저에게 댓글을 보내주시는 분께 바로 답을 보내드리지는 못하지만 그 댓글을 가슴속에 담고 하루 종일 음미하면서 영혼을 교류하는 날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차 한 잔 하자는 따뜻한 마음의 온기가 외롭고 쓸쓸한 저를 후끈 데워주기도 합니다. 더러 선물을 보내 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제가 블로그를 하게 된 동기는 책을 읽다가 늙은 한 노파의 행동을 보고서입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산자락에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이 외롭게 살았습니다. 그 할머니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저녁이면 등불을 켜서 창가에 얹어두는 것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마을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위로를 얻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릴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일어나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서 내면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하얀 모니터 위에 형상화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창가에 비치는 작은 촛불이라도 됐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조명을 받는 언론매체의 화려한 칼럼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작은 글을 쓰겠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댓글을 통해 저를 만나겠다고 하신 분들에게도 오시게 하는 게 아니라 인연이 되고 때가 되면 제 쪽에서 스스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런 적이 있습니다. 삼십대 때 법정 스님의 수필을 읽고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스님이 입적하고 조계산 자락에서 보라색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가 처음으로 찾아갔었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글을 읽고 그분이 잠들어 계시는 천안의 풍산공원에 노란 꽃 한송이가 심겨있는 화분을 들고 인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저와 글을 통해 영혼을 교류하는 분들께 제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드렸다면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며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2018-03-04, 18: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이위공문대    2018-03-06 오후 3:44
동끼호테님의 글 몇배 동감입니다.
   동끼호테    2018-03-05 오후 1:42
엄변호사님글을 빼지않고 꼬박읽는 팬입니다,
그러나 엄변호사님 글을 읽기전에는 대단히 원망했습니다,
왜냐하면! 몆년전 박원순시장아들 재판에서, 엄변호사님이 MRI 사진촬영에
입회해서 박시장아들 본인이라고 밝혔는데, 그건 엄변호사님도 속은겁니다,
병역브로커가 개입되면 촬영기사와 짜고 얼마든지 속일수있습니다,
그기에 변호사님도 속은겁니다, 뻔히 눈뜨고 속은거지요,
저는 처음에는 박시장과 한패거리인줄 알았습니다, 거기에는 조갑재선생님도
같이 속았다고봅니다, 제가괜히 이러는게 아닙니다,
한번예를 들어볼까요? 박시장아들의 전면에서 입벌린사진과(칼라사진) 법정에
제출된 흑백치아사진을 보면 치과의사가 아니라도 한눈에 다른사람의 치아라는걸
알수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두사진을 한번비교 보시기바랍니다,

두번째로 박시장아들이 영국유학간지가 4년이 넘었는데 아직 잠간이라도
다녀갔단 소릴 들어본적 없습니다, 왜그럴가요? 하도유명해져서 누구한테라도
들킬가봐 못오겠지요, 어느면에서 순진한 위두분을 박시장이 속이고 이용한거지요
나중에라도 진실이 밝혀지면 엄변호사님의 사과말씀이 있으리라 믿씀니다.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