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학 교수와의 대화
“언제가 가장 행복합니까?”…그가 잠시 생각하는 진지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외에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십년 전이다. 월남한 어머니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십자사에 오래 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직접 인편을 통해 북한의 가족을 찾아보기로 시도했다. 통일부의 허가를 얻고 북경에서 김일성대학 교수를 지냈다는 사람과 만났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학을 연구했고 차관급 관료로 남북 회담 때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묵었었다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 어느 정도는 눈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참, 드라마 ‘주몽’을 봤는데 주인공인 탈렌트 송일국 사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시 송일국이 여기자를 폭행했다는 허위보도가 나고 있었다.
  
  “당 간부가 남쪽 드라마도 봐요?”
  “필요할 때 인터넷을 통해 조금씩 봅니다.”
  
  잘사는 한국민의 모습이 담긴 드라마들은 그들의 영혼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소련이나 동구권이 해체된 것도 가난한 소련시민이 자유분방하고 풍요한 자유세계의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장교로 순찰을 돌던 전방 지역의 인민군 사단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했다. 그가 군 시절의 상황을 말했다.
  
  “그때 우리 인민군 고지에 대형스피커 시설이 있었어요. 국방군 쪽도 그랬죠.”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해 방송을 하던 시절이었다.
  
  “맞아요, 나는 북쪽의 왕왕대는 정치선전을 듣기 싫어서 가수 송창식의 노래를 볼륨을 높여 틀라고 했었어요. 눈 덮인 전선 전체에 그 노래가 흘러나갔었는데.”
  
  “아 그 퇴폐주의적 반동노래 말입니까?”
  그가 쓰는 용어가 귀에 낯설었다.
  
  “북에서 당신 정도 위치면 사는 형편이 어떻습니까?”
  “국가에서 주는 조금 넓은 아파트에서 애들하고 그냥 사는 거죠. 아이들에게 컴퓨터 공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참 남조선에서 오셨으니까 혹시 다음에 볼 일이 있으면 영어책과 사전 그리고 책들을 좀 구해줬으면 좋겠어요. 평양에 있는 우리 애들 공부시키려구요.”
  
  “일반 책들은 어떤 게 필요합니까?”
  “고골리의 ‘어머니’나 ‘강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같은 러시아 소설이나 모택동 사상 같은 중국 서적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북조선이 러시아하고 멀어진 후에는 러시아 서적이 다 없어졌어요. 또 중국하고 멀어지면 중국 서적들을 볼 수 없구 말이죠.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기본이지만 우리는 솔직히 잘 몰라요.”
  
  나는 그의 내면을 알고 싶어 에둘러 이렇게 물었다.
  “언제가 가장 행복합니까?”
  
  그가 잠시 생각하는 진지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외에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갑각류처럼 그들은 껍질만 단단할 뿐이었다. 속은 의외로 단순하고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 고교시절까지 포스터를 그릴 때면 북한을 악마로 묘사했다. 북은 남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거지만 득실거리는 피착취 사회로 묘사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평화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젠 서로 시각이 바뀌어 미래의 한 지점을 향해 함께 가는 시대가 도래 했으면 좋겠다.
  
  
[ 2018-05-13, 19:44 ] 조회수 : 266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