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된 것을 훈장으로 생각하면 안돼
우리는 젊은 세대에도 인격적인 언어와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하며 그들의 주장을 경청할 준비를 해야 한다.

월명(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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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에게서 투표권을 박탈했으면 좋겠다.' 이 내용을 인터넷 공간에서 읽은 일이 있다. '노인'이라는 호칭은 오히려 점잖은 표현에 속한다. 어떤 곳에서는' 늙은이' 또는 '냄새 나는 xxx'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노인들을 경멸하는 언어들이 횡행하게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 달 전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노인 보는 시선, 급속도로 싸늘해지고 있다'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노인을 혐오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기자는 '세대 간 경제·정치·사회적 이해관계가 날이 갈수록 매섭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경제. 정치.사회적 이해 관계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키는지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일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기자의 원인 분석 가운데 '노인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 인식은 일자리·복지비용 등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라는 대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노인들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인들이 차지하는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청년 세대가 기피하는 직종들이다.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고급 일자리가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사실상의 정년 연령인 55세 이상들이 직장에서 쫒겨나는 현실에서 어느 노인들이 청년들과 고급 일자리를 놓고 경쟁한단 말인가.
  
  복지비용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국가 재정은 고려하지 않고 제 돈으로 인심 쓰듯 복지 공약을 남발해온 더불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니었던가.
  
  사실상 노인이 노인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들에 의하면 노인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뇌는 정보를 입수하면 프로세싱을 하는데, 한 사람의 일생 중에서 20대 중반에 가장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한다고 한다, 처리된 정보는 뇌에 캐비넷에 저장을 하듯 기억 장치에 저장되는데 치밀하게 organize하지 않으면 돌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행동에는 시행 착오가 많이 일어난다.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고 이를 잘 처리하여 합리적 사고를 하도록 돕는 기억 장치가 균형적으로 작동하는 연령은 40대 중반에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20대 이후 하루에 몇천 개씩 뇌의 기억 세포가 사멸되는 데다 새로운 정보와 변화를 거부하다 보면 어느새 노인들은 아무도 꺾지 못하는 고집 불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노인에게 고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축적된 경험은 엄청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과거 지식과 경험일 뿐 새로 펼쳐지는 미래의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대처하는 해결책이 되기에는 제한적이다.
  
  필자가 보는 한국의 노인들에 대한 시각은 복합적이다. 오늘날의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누가 뭐래도 오늘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다. 그같은 진단은 거시적 안목으로 보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노인들이 경제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하게된 동인(動因)은 가족주의다. 가족에 대한 충성심과 가족의 번영에 대한 열망이 지도자의 국가적 차원의 근대화 열망과 맞물려 빚어낸 결과가 오늘의 번영된 한국이다. 이 노인 세대는 이같은 자신들의 업적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자부심이 경제적 측면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노인들이 존경을 받아야 할 콘텐츠는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노인들은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고 자녀들을 일류 학교에 진학시키고 사회적 계층 상승을 목표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녀들이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책임과 의무에 대한 교육에는 소홀했다. 그들 자신이 이같은 교육을 할 만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그만큼 이 노인 세대가 지나온 현대사는 질곡과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일차적인 관심사였다. 가족을 위해서는 이기심과 부정과 불의도 용인하고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대였다. 거시적 안목을 벗어나 동 시대를 살아온 개인으로서 느꼈던 노인들에 대한 시각은 별로 존경스럽지 못한 측면도 많다. 물론 일반화될 수 없는 체험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이다.
  
  1970년 필자는 월남전 파병 병령을 받았다. 12사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혹한 지역을 방어하는 야전 사단이었다. 1월 20일경으로 기억한다. 구정 전후였던 그 날의 혹한은 평생 경험하지 못한 추위였다. 사단 본부 의무 중대가 있는 곳에 집합하여 파병 군인들은 신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모두 상의를 벗고 팬티만 입고 밖에서 신체 검사를 받기 위하여 4열 종대로 집합했다. 그 추위에 30분이 지났는데도 신체 검사는 시작도 되지 않는 것이다. 추위 정도가 아니라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모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눈치 빠른 한 친구가 약을 쳐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했다. 그 당시 상병 봉급이 45원 정도 되었나? 하여간 우리들은 군복에 감추어 두었던 50원씩을 꺼내 얼마인가를 거두어 의무 중대 막사로 들어갔다. 거기 의무병들은 난로에 둘러앉아 난로에서 풍겨 나오는 화기(火氣)에 얼굴이 벌개진 상태에서 노닥거리고 앉아 있었다. 거기서 리덕 격으로 보이는 어느 군인에게 병사들이 거둔 얼마의 돈을 건네자 그들은 함박 웃음을 띄우며 우리들을 당장 막사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너희들 춥지" 하며 난로 가까이에 오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신체 검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장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은 분노가 치밀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의 푼돈을 뜯어먹는 파렴치했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 동사무소에 주민등록 초본이라도 발부받으려면 신탄진 담배 한 보루라도 건네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담배 한 보루 건네면 일사천리로 일이 처리되는 것을 필자는 체험했다. 군대 보직, 배치 모두 백이 아니면 돈이었다. 관가에서나 군대 내에서의 진급도 모두 연줄 아니면 백 아니면 돈이었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았다. 그들이 세월이 지나 노인이 된 것이다. 이 노인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것은 가치나,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경제적인 풍요뿐이다. 지나친 단순화일까. 그러나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는 노인이라는것을 훈장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는 가족에 대한 충성을 하느라 사회의 보편적 윤리와 도덕과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등한시 하면서 살아 왔다. 이것은 노인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기 반성적인 생각이다. 경제적 풍요를 물려 줬으니 우리는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일방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도 인격적인 언어와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하며 그들의 주장을 경청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는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글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사양한다. 이 글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우리 노인 세대를 되돌아보는 글이다. 노인도 노인 나름이다.
[ 2018-11-02, 06:10 ] 조회수 : 68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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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사람    2018-11-02 오후 12:11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삼성등 일부 기업, 일부 예체능계 인물들의 활약은 선진국 수준인 점은 인정한다. 한편으로 문씨, 주사파, 광우병에 흔들리는 민심, 세월호사건, 홍위병의 촛불난동, 정치범 양산, 법치의 실종, 통계조작, 여론조작, 치매기가 있는 대표, 등등 4류국가에서 볼수 있는 현상이 너무 많소.
   지유의메아리    2018-11-02 오전 10:04
월명님께서는 어느 세대인지는 알수없으나 저는 지금 84세로 확실히 노인이 올시다 선생은 말미에 노인도 노인나름이다라고 하셨는데 아마 모름직이 혹여 이 글에 노인을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글이 있어도 그 시비에서 멀직암치 비껴서 있으려는 뜻이 담겼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져 하는 말은 노인은 어쩌고 젊은이는 어쩌고 이련 세대간의 불편한 이야기는 삼가거나 아예 않하는게 좋습니다 이제 100세시대지만 벌서 일부에서는 150세시대를 논하고있던데 현재의 늙은 사람들에 관하여 이렇쿵 저렇쿵 하는것은 도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의늙은이가 바로 젊은 당신들의 내일임을 생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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