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기조실장과의 법정 공방(攻防)
그는 법정에서 검찰에서의 진술을 대부분 번복했다. 그가 말한 것의 어떤 것을 믿을까 무엇이 진실일까 그 선택은 법원에 있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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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들이 모두 구속됐다. 뿐만 아니라 문고리 3인방 비서관과 정무 비서관 등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던 사람들이 감옥으로 갔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담장이 높은 곳이라 쉽사리 그 비밀을 볼 수 없는 곳이다. 뭔가 약점을 잡힌 국정원의 기조실장이 검찰에서 다 불어버렸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변호사로서 검찰 측 증인인 국정원장 비서실장과 논쟁을 하게 됐다. 변호사를 해 오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이 질타를 하듯이 법정에서 당당하게 그곳에 증인으로 나온 인물들을 신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은 공개주의가 원칙이었다. 방청석에 그 누가 와서 구경을 해도 상관없다.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정 농단의 핵심이 최순실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고손실죄의 핵심 증인이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신문을 앞두고 있었다. 신문을 하기 전에 국정원의 기조실장이 어떤 위치에 있고 임무가 무엇인지 정보기관 출신 사람들로부터 알아보았다. 국정원은 조직은 물론 사업이나 예산 등 모든 게 비밀이었다. 조직원들은 목숨보다 비밀을 더 중요시하도록 교육받고 있었다. 국정원의 은밀한 활동의 배후에는 공작비가 있었다. 정보예산인 공작비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극비사항이었다. 비밀공작 자체가 폭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핵을 개발하기 위해 첨단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하자.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가 막혔을 경우 국정원 요원이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에서 그걸 빼내올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의 과학자를 매수할 수도 있다. 북한의 스파이망을 형성하기 위하거나 김정은의 암살을 위해 비밀 정보예산이 사용될 수 있다. 탈레반이나 소말리아의 해적이 대한민국 국민을 납치한 경우 뒤로 은밀히 협상자금이 오가게도 할 수 있다. 공작비 내지 특활비라는 이름의 정보예산은 흐름 자체도 철저히 비밀이었다. 흐름이 노출되면 당장 낌새를 채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자금의 흐름을 위장하기 위해 여러 단체이름의 통장을 사용하기도 하고 국정원의 예산 자체도 위장단체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보관했다. 예산 자체 역시 예비비 형식으로 숨겨놓기도 했다.
  
  국가의 그런 정보예산을 총괄하는 인물이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다. 기조실장이 기밀을 털어놓으면 더 이상 정보기관은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대통령의 비밀 국정수행자금과도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수사기록을 보았다. 국정원의 기조실장이 검사에게 정보기관의 많은 부분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그것이 기록에 남았다. 수사기록은 비밀이 아니다. 복사되어 얼마든지 세상에 공개될 수 있는 서류들이었다. 2017년 10월 24일부터 국정원 기조실장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사가 그에 대해 작성한 조서를 보고 분석하는 것이 신문을 앞둔 변호사의 직무였다.
  
  “국정원의 특수 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했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이미 검찰은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가는 돈을 상납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뇌물이라는 의미가 스며 있었다.
  
  “국정원의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원장이 돈을 청와대에 주었습니다. 이병호 원장 때는 제가 현금을 007가방에 넣어 문고리 3인방중 하나인 안봉근 비서관에게 청와대 인근 도로가에서 은밀히 전달했습니다.”
  은밀히라는 표현에서 검찰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는지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정상적인 예산의 지원이라는 데 사전에 쐐기를 박는 표현이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언론에서 문제가 될 때는 상납을 잠시 중단했었죠?”
  “예 안봉근 비서관이 저에게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해서 청와대 내부가 복잡하니까 잠시 중단하자고 했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걸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검사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병호 국정원장 시절 어떻게 상납하게 됐나요?”
  질문이 핵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2015년 3월 이병호 원장님이 취임하고 바로 청와대에 매달 돈을 가져다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3월 하순에는 청와대 옆 골목길에서 안봉근 비서관의 차에 올라 돈 가방을 전달했고 4월에는 감사원 앞길, 5월에는 헌법재판소 부근에서 안봉근에게 주었습니다. 겁이 나서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전달했습니다.”
  이병호 원장은 바로 추악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이병호 원장의 취임 이틀 후인 2015년 3월 19일에 2억 원이 불출됐는데 무슨 돈인가요?”
  “1억 원은 청와대에 가는 돈이고 나머지 1억 원은 매월 초 원장님이 가져가는 활동비입니다.”
  
  “그렇게 돈을 상납하는 게 빠진 적은 없었나요?”
  “그런 적이 한두 번 있었습니다.”
  
  “그런 때면 다음 달에 그 돈을 가져다 줬나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게 공식적인 청와대 경비라면 빠진 달의 돈을 보내 달라고 요구해야 맞지 않나요? 안봉근 비서관이 요구하지 않는 걸 보면 그 돈이 청와대 비용으로 사용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데 어떤가요?”
  검사 질문의 칼 끝이 문고리 3인방 쪽으로 가고 있었다.
  
  “안봉근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이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검사님 말씀대로 청와대 경비 등 공식적인 용도였으면 매달 주던 돈을 특정한 달에 주지 않았다면, 펑크가 났을 것이고 요청이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사용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2015년 추석 무렵 이병호 원장님이 저를 불러 청와대에서 돈 쓸 일이 많이 있을 테니까 더 주라고 하셔서 2015년 추석과 2016년 설에 별도로 안봉근에게 1억 원씩을 더 주었습니다.”
  검사의 요구에 화답을 하는 듯 한 답변 기록이었다.
  
  “대통령에게는 소액일 수도 있는 일억 원을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위험하게 직접 받을 걸로는 보이지 않는데 어떤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돈을 안봉근 비서관이나 문고리 3인방이 받는 거는 아니었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확인하지 않아서 딱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매달 돈을 주는 걸 한두 번 건너 뛴 적이 있다고 했죠? 그 돈을 대통령에게 가져다주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돈을 건너뛴 저의 행위는 제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기는 합니다.”
  기조실장의 대답이 횡설수설 꼬이기 시작했다.
  
  “본인 행동을 묻는 건데 본인이 이상하다고 하는 게 무슨 말인가요? 그게 말이 되요?”
  기조실장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외로 안봉근 비서관에게 돈을 준 적은 없나요?”
  “안봉근 비서관을 만나 식사를 한 후 지갑을 털어서 돈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 돈은 어떤 돈인가요?”
  “국정원 기조실장의 업무추진비에서 마련해 간 돈이었습니다.”
  “왜 줬습니까?”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원활한 업무협조를 위해서 줬습니다.”
  “원활한 업무협조란 무슨 의미죠?”
  “당시 국정원의 정보국장이 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전파하고 있다는 말을 수차 들었습니다. 제가 인사 등에 불이익이 있을까 염려했고 그에 대해 안봉근 비서관을 통해 정보국장이 퍼뜨리는 말이 사실과 다르므로 저에 대해 인사에 불이익이 없게 해 달라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에게 잘 건의해 주고 신경 써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그 외 청와대의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나요?”
  “취임 후 3개월 정도 지난 후라고 기억하는데 이병호 원장이 저에게 일부 수석과 비서관들에게 돈을 준다고 했습니다. 원장이 많은 특활비를 혼자 개인적으로 쓰는 것으로 제가 오해할까봐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청와대의 어떤 수석실인가요?”
  “정무수석실과 홍보수석실로 짐작했습니다. 정무수석실은 대국회 업무를 하니까 국회에서 국정원 얘기가 나왔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홍보수석실은 언론인을 상대하니까 국정원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가 안 나가도록 협조요청을 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2016년 4월 13일 실시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관련하여 정무수석실에서 실시한 사전 여론조사 비용을 국정원의 예산으로 지원한 적이 있나요?”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신동철 비서관이 요청해서 제가 이병호 원장님께 보고하니까 반만 지원하라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이헌수는 조사가 끝난 후 검찰청을 나와 이병호 원장에게 전화로 “원장님을 배신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사실이 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배신했다는 의미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지 비밀을 지켜야 할 것들을 폭로했다는 것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그를 내부 고발자로 한 수사가 그렇게 성공했다. 9회에 걸친 국정원 기조실장의 조서를 보면 그가 아가미에 낚시가 꿴 물고기 신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약점을 잡혀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을 받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권의 국정원장 세 명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등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범죄인이 됐다.
  
  2018년 9월 4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서관 312호 법정. 국정원 기조실장이 증언석에 앉아 있었다. 변호사인 내가 그를 신문할 차례였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기밀사항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 사항들이 노출되면 정보기관이 상처를 받고 공작사업들도 지장이 있죠?”
  “그렇습니다.”
  “기밀 중에서도 속칭 VIP라고 불리는 대통령에게 가는 돈은 더욱 외부누설이 금지되는 고급 기밀사항이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나름대로 국가를 위해 포섭할 사람들이 있어 비용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증인은 북한의 김정은이 여기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성명을 발표한 사실 알고 있죠?”
  “알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평화무드로 전환되는 최근에도 김정은은 국정원장이었던 이병호만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보낸 사실을 알죠?”
  “압니다.”
  “그 배경은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대북 특수공작사업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증인은 국정원에서 특수사업 예산 총괄책임자이고 결재까지 하는 지위에 있는데 당시 대북공작에 사용된 특수사업비 내역을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나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습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김정은에 대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 김정은과 친한 제3국의 인물을 포섭하기 위해 특별사업비를 사용한 걸로 아는데 어떻습니까?”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내역을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습니까?”
  “비밀이라 곤란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질문의 방향을 돌리죠. 안보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가는 특별사업비는 간다는 그 자체만 해도 대북공작보다 훨씬 기밀사항이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보는데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대북공작이나 이런 것보다 훨씬 기밀이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밀을 지켜야 한다는 게 뼈에 박힌 국정원에서 평생 근무한 증인은 왜 그 기밀을 지키지 못했나요?”
  “저도 안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배경이 있길래 기밀을 지키지 못하고 폭로했습니까? 고문당했습니까?”
  “폭로라고 하지 마세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폭로라는 말에 그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 잠도 자지 못하고 23시간씩 조사받았어요.”
  “조사를 받고 검찰청을 나와 이병호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원장님을 배신했습니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뭡니까?”
  “여기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배신했다고 전화한 사실을 검사에게 다시 말했는데 그건 왜 그랬죠?”
  “그 얘기를 한 것 때문에 긴급구속이 될 뻔했습니다.”
  “조서를 보면 증인은 당시 검사에게 청와대에 간 돈을 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이 먹었을 것 같다고 적혀 있는데 그렇게 말한 적이 있나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결론으로 가고 있었다.
  “검사는 증인에게 뇌물의 청와대 상납이라고 했는데 그 개념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원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에서 그가 한 말과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변호인단의 다른 변호사가 그에게 물었다.
  
  “국정원에서 외부로 돈이 나가더라도 소정의 절차를 밟으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재정법상 예산전용 이용절차를 거치든지 국정원 내부에서 원장의 결재를 받아서 예산의 세목 사이에 내부적인 이전절차를 거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국정원장들이 청와대에 돈을 준 것은 공적인 예산지원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인 증인을 통해 한 것이 아닐까요? 사적인 뇌물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저도 원장님들이 사익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지원했죠?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전두환 대통령시절부터 직원들 간에는 청와대 냉장고까지 챙긴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국정원에서 지원을 계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재판장의 관심을 끌은 것 같았다. 재판장이 나서서 물었다.
  
  “냉장고까지 챙긴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청와대 냉장고 안에 들어가는 음식이나 물까지 국정원에서 마련해 준다는 얘기입니다.”
  이때 배석 판사가 재판장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배석판사가 국정원 기조실장에게 물었다.
  
  “과거 안기부 시절 김영삼 정권까지 돈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노무현 정권에서는 어땠나요?”
  “청와대 전체 다는 아니지만 일부 비서관들에게 정례적으로 지원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정원이 예전으로 회귀되는 모습이나 심해졌다고 하는 소리가 있는데 정권의 변화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느끼는 체감 정도라는 게 어떤가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모시던 국정원장들과 법정에서 마주한 그의 표정에는 원인 모를 고뇌가 스며 있었다. 그는 법정에서 검찰에서의 진술을 대부분 번복했다. 그가 말한 것의 어떤 것을 믿을까 무엇이 진실일까 그 선택은 법원에 있었다
  
  
  
  
[ 2018-12-05, 11: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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