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의 항변: “법의 잣대로 재면 정보기관은 마비되고 맙니다”
“북한의 자생적 저항집단 도와주다 ‘최고존엄’ 해치려는 테러리스트가 됐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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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마당에 외롭게 서 있는 한그루의 나무가 무성했던 잎을 다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인간도 어쩌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잎으로 무성하던 나뭇가지에서 새가 울고 꽃이 핀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잎을 다 털어버리고 빈 가지만 쓸쓸하게 남는다. 이윽고 겨울이 오면 눈이 오는 숲속에서 허공을 향해 빈손을 든 공허한 나무가 되는 것이다. 나이 여든의 이병호 국정원장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남없이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의 끝에 있는 사람은 다 비슷할 것이다. 그게 섭리가 아닐까. 교도소 사동의 맨 끝 벽 쪽의 유리박스 8호실에서 이병호 원장을 만났다.

“검찰 측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정보기관의 속성에 대해 너무 모르고 법이라는 잣대만 가지고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촘촘한 법의 잣대로 재면 정보기관은 마비되고 맙니다.”

“검사나 판사들이 비밀에 싸여있는 정보기관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들이나 국민들의 인식에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을 겁니다. 그게 원인이 되어 이렇게 감옥에 계시는 게 아닐까요?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로 불리던 시절과 제가 지휘하던 국가정보원시절은 전혀 달라요. 엄 변호사가 보시던 예전 정보기관에 대한 인식을 저한테 적용하면 맞지 않아요. 저는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고 순수정보기관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에게 정보기관의 원죄에 대해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평생 그곳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게 있을 게 틀림없었다.

“역대 정보기관장이 왜 거의 다 정치에 관여했었죠? 선거에도 개입하고 여당 야당 외에 거대한 제3당이라고 불릴 만큼 정치 그 자체였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역대 정보기관장 34명 중에서 대선캠프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으로는 제가 최초입니다. 대선캠프에서 일한 인물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는 자체가 정치라는 생각입니다. 임명된 후부터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제가 국정원장이 돼서 보니까 국회에 파견된 요원이 수시로 국회의장이나 의원들의 동향을 보고하는 거예요. 제가 당장 그 직원을 잘라버렸죠. 국정원의 정보업무란 정치인을 사찰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정치에 오염된 국정원 직원들이 정보기관 고유의 목적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더라구요. 자신들의 정체성이 확립이 되지 않은 거죠. 저는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해외정보 전문이었기 때문에 세계 정보기관들을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동안 국정원장으로 온 사람들 자체가 정보업무가 뭔지 정보기관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상식조차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검사를 하다가 오거나 군인이 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정보기관의 본질에 대해 알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국정원장으로 계시던 지난 몇 년간도 조직 속에서 국내정보를 파악하게 하고 보고를 받으시지 않았나요?”

“그건 그랬죠.”

“간첩들과 관련된 국내보안정보만 해야 하는데 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 국정원 요원들이 정보를 수집합니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건 세상을 위축시키는 사찰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예를 들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요즈음은 여러 경비회사들에게 빌딩이나 회사의 안전을 맡깁니다. 그러면 경비전문회사에서 먼저 하는 일이 뭘까요? 그 회사의 내부구조를 철저히 파악하는 겁니다. 그리고 취약한 요소에 CCTV를 설치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원을 배치하기도 합니다. 먼저 지켜야 할 대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게 선결문제입니다. 국가 정보원이 사찰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닙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 잠재해 있을 국가안보의 위해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정치 경제 사회의 현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전제되는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예요.

국정원이 경제 분야의 각 첨단기업의 시설과 인원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죠. 첨단기술정보가 흘러나갈 수 있는 취약한 지점이 어디인가를 파악하기 위해 시설보안을 담당하기도 하고 뇌물에 약한 인간을 알아보기도 하는 겁니다. 경제를 사찰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그건 정보업무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보기관으로서의 본질은 국내정보가 아니라 우리의 적인 북한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정보기관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리의 타켓인 북한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북한 내부의 단체나 개인의 기밀을 알아내는 겁니다. 알아낸다고 하지만 사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훔치는 일이죠. 그런 기밀을 훔치기 위해 북한주민을 포섭해 고정 스파이로 박아놓기도 하고 그들의 사이버 통신을 감시하기도 하고 도청과 감청 인공위성이나 드론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방법이 동원됩니다. 국정원은 북한 내부의 상황을 손바닥위에 올려놓듯이 봐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북한의 권력층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우리사람으로 만들기도 해야죠. 예를 들면 태영호 같은 고위층출신 인물들은 많은 도움을 줬죠.”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북한의 김정은이 발표했던 성명이 떠올라 물었다.

“김정은이 이병호라는 이름을 대면서 북으로 꼭 넘겨달라고 조선평양방송부터 시작해서 각 매체를 통해 발표하고 처단할 것을 선언했는데 왜 그렇게 김정은의 공격대상이 되셨죠?”

“그건 비밀이기 때문에 제가 전모를 말할 수는 없어요. 정보기관은 수동적으로 방어를 하는 군대와는 달라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남북의 정보전에서 북한을 뒤흔들고 압박해야 하는 겁니다. 정보기관이라면 그런 일에 올인 해야 하는 거예요. 국내정치나 정보에 국정원장이 신경을 쓸 틈이 없어요. 나는 국정원을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정보기관다운 정보기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2006년경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후계자 문제가 거론 됐어요. 장남인 김정남은 평소부터 중국식 개방경제로 나가자고 아버지한테 정책건의를 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죠. 고모부인 장성택을 배경으로 중국의 권력층과도 연결되어 있었어요. 고난의 행군시절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굶어죽는 것을 보고 김정남이나 장성택은 더욱 중국식개방을 강하게 주장했죠. 그런데 그 아버지 김정일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들인 김정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면서 절대 피붙이는 죽이지 말라는 게 그의 유언이었습니다. 권력 내부에서의 일어날 피 냄새를 서전에 맡았는지도 모르죠.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은 장성택 계열을 모두 숙청했습니다. 의심스런 군부의 지휘관들도 숙청했죠. 6.25전쟁 때도 인민군 사령관들을 그렇게 없앤 적이 없는데 말이예요. 김정은에게 아부하는 무기력한 장성만 살아남은 현재 북한의 군대는 대한민국을 쳐들어올 능력이 없어요. 형 김정남까지 암살했죠. 북한내부를 보면 자유진영의 문화나 정보가 들어가면서 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졌어요. 김정은 독재에 반발하는 기류가 생긴 거죠. 국정원이 그들을 지원하는 건 당연합니다. 자생적인 그런 저항집단을 도와줬는데 그런 시도가 중간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제가 북의 최고 존엄의 생명을 해치려는 테러리스트가 된 거죠.”

“국정원장으로 가까이서 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리한 그의 시각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제가 보기에는 여성이라도 역대 다른 대통령이 가지지 못한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어떤거죠?”

“개성공단의 폐쇄 같은 거죠. 당시 관계 장관이나 사회여론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안 된다는 게 대세였어요. 그런데도 혼자 단호히 결론을 내렸어요. 대북제재를 하는 국제정세에 손해를 보더라도 맞추자는 강한 의지였어요.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린 거지 주위에 있는 최순실 말 듣고 그렇게 할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또 전방에서 북괴가 설치한 목함지뢰에 우리 병사가 다쳤을 때만해도 그래요. 당시 남북한 군사고위급 회담이 상당히 진척됐었는데 전화로 연락해서 전부 철수하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쉽지 않은 대통령의 결단입니다. 그걸 보면 카리스마가 대단하다니까요.”

“일부에서는 내공이 쌓이지 않았다느니 무능하다느니 하는 말도 들리는데 옆에서 지켜보니까 어떠셨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한번은 텔레비전에서 안보와 외교에 대해 발표하는 상황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방송 한 시간 전에 그 분야의 전문가 스무명 가량이 이소리 저소리를 하는 겁니다. 각자 그 기회에 잘 보이려고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경향도 있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그 말들을 침묵하고 들으면서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방송이 시작됐는데 말하는 걸 보니까 아주 핵심을 정리해서 잘하는 거예요. 그건 탁월한 능력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 내에서 친박과 비박의 공천갈등이 심했던 일 잘 아시죠? 그런 정치적 배경이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의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공천 갈등 때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관여하지 않았나요? 예전 같으면 주도적으로 깊숙이 들어갔을 텐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저항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정보기관을 통해 주저앉히기도 하고 약점을 잡아 혼을 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정보기관은 채찍의 역할을 한 적이 많았다.

“저는 처음부터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공천이나 선거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시 정무비서관의 증언을 들어보면 대통령이 정무수석과 둘이서 공천에 관한 문제들을 처리한 것 같던데요.”

“글쎄말이예요. 비서실장이던 이병기씨는 사실 정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예요. 그에게 맡겼더라면 비박과의 그런 감정대립 없이 잘 해결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정무수석은 건달같이 좀 설치는 성격 이예요. 비서실장을 제껴놓고 정무수석만 데리고 공천에 관한 걸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병기 비서실장이 더러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했어요. 그 다음부터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부르지 않고 배제했어요. 아마 비서실장을 할 때 힘들었을 겁니다.”

“원장님께서는 여론 조사비용을 청와대에 제공했다고 지금 국정원장의 정치관여죄로도 기소되어 있잖아요? 정치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분이 그 죄로 법정에서 심판을 받고 있으면 제일 더럽게 된 거 아닙니까? 정말 실상은 어떤 겁니까?”

“실상은 간단해요.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국정원장의 특활비를 청와대에 고정적으로 준다고 회계를 맡은 기조실장이 보고해서 그러면 그렇게 해라한 거죠. 또 박근혜 대통령이 전화나 만났을 때 지시를 했었죠. 법을 보면 우리는 대통령직속기구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조직이나 예산에 대한 지휘권이 있다고 저는 생각한 겁니다. 여론조사비용의 지원문제도 그래요. 기조실장이 그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저는 대북보고서에 빠져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기조실장 보고는 건성으로 들었어요. 청와대에 여론조사비용을 줘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한 거죠. 청와대에서는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를 당연히 할 수 있죠. 비용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주라고 한 거죠. 만약 기조실장이 여당 내 공천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는데 그 비용을 준다고 했다면 그거 법적으로 문제없겠냐?고 물었을 겁니다. 삼십 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그렇게 한 게 다예요. 사실 특활비의 청와대 지원에 대해서 기조실장이 검찰에서 내가 뭐라고 지시했다고 이말 저말 했는데 제가 구체적으로 한 말이 없어요. 부하를 믿고 다 맡겼는데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다음 증인이 국정원의 방첩국장이던데 정보기관의 본질이나 특활비문제를 그를 통해 진술을 받아내면 어떨까요?”

“국정원 예산을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으로 검찰이 아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다른 변호사가 신청한 거죠. 그 친구 아는 게 저의 없을 걸요. 기대하지 마세요.”

“다음번 법정에서는 이병호 원장님도 할 말은 하게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구치소 접견실에서 이렇게 주고 받는 말은 증언이 되지 않아요. 법정에서 신문절차를 통해 녹음이 되고 기록으로 남아야 합니다.”

[ 2019-02-20, 10: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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