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국장의 증언
정보예산은 금액뿐만 아니라 사용처나 사용방법도 철저히 비밀입니다. 정보기관의 일들을 실정법의 잣대로 보면 모두 범죄가 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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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 4일 오전 10시. 방청석과 증인석 사이에 두꺼운 가리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재판장이 방청석의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국정원의 간부인 증인이 신분 노출을 꺼려서 차폐시설을 했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증인보호실에 있던 증인이 판사 출입문을 통해 조용히 나와 증인석에 앉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어디서 본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랬다. 내가 잠시 안기부에서 근무할 때 수사관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같이 공수부대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그가 국장까지 간 것 같았다.
  
  “증인의 국정원 경력은 어떻습니까?”
  내가 묻기 시작했다.
  
  “국정원이 안기부라고 불리던 시절 정보기관의 엘리트 코스인 정규과정으로 들어가 수사관으로 30년 근무해 왔습니다. 수사국장이 되어 이병호 원장님을 모시고 일을 했습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해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어떤 입장이었나요?”
  “지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던 2017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이병호 원장님은 신년사에서 후보진영별로 국정원을 정국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국정원 직원 누구도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프로의식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국정원이 정치관여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에 대해 그 기관에서 평생을 지낸 증인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순수한 정보전문가로 칠십 평생을 살아온 이병호 원장님이나 젊은시절부터 정보수사분야의 전문가로 살아온 저같은 사람에게는 조직원으로서 마음의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호 원장이 국정원 지휘에서 중점을 두었던 분야는 어떤 것이었나요?”
  “2015년경 북한의 핵 무력이 증대되고 국제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국정원은 미국과의 정보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수많은 정보현안을 처리하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원장님은 대북이나 해외분야 전문가시라 그 쪽에 신경을 많이 쓰시고 국내분야는 저같은 부서장에게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 시절 이병호 국정원장은 어떤 공작을 지휘하셨죠?”
  “보안사항이라 정확히 모르지만 북한의 김정은이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등 관영매체를 총동원해서 남쪽의 이병호가 북에 침투시킨 테러범 일당을 체포했다고 하면서 이병호를 북으로 넘기라고 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무렵 이병호 원장은 어떤 지시를 내렸습니까?”
  “국정원의 간부들 앞에서 북한과의 마지막 전투라는 민족적이고 역사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북한과의 최후의 결전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국정원은 정보수집의 차원을 넘어 북한체제를 찌르는 창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셨죠.”
  
  “국정원의 정보예산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정보조직은 세계 어느 나라나 포섭대상을 매수하기도 하고 또 범죄조직이나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고 은밀히 어떤 일을 시키기도 하는 특수공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사용되는 정보예산은 철저히 기밀로 되어 있고 금액뿐만 아니라 사용처나 사용방법도 철저히 비밀입니다. 이스라엘의 정보조직인 모사드가 가장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런 정보기관의 일들을 실정법의 잣대로 보면 모두 범죄가 됩니다.”
  
  “그래서 정보기관의 일들은 음지에서 이루어지고 국익을 위한 것이면 사법처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정보조직 내에서 그런 일이 더러 있었다. 나의 질문이 그의 정보기관원의 방어감정을 자극한 것 같았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내가 질문하는 취지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정보기관의 그동안의 불법을 들추어 내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30년 전 안기부 정보학교에서 배운 정보공작 이론이 떠올랐다.
  
  “증인은 30년 전 본 변호인하고 같이 정보기관 내에 설치된 정보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기억합니까?”
  “기억합니다.”
  
  “당시 정보교과서에 나와 있는 정보의 기본이론인데 모릅니까?”
  “30년 전 배운 걸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나는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대통령과 국정원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국정원의 국장이면 그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으시죠?”
  “안보공동체로서 대통령의 직속기관이 국정원입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입니다. 제가 몇 분의 원장님을 모셨는데 이병호 원장님은 국가 안보에 대한 열정이 가장 뛰어나셨고 직원들과 함께 아픔을 같이 했던 분입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이나 헌신은 대단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존경합니다.”
  
  
[ 2019-02-21, 10: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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