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정원장의 항변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터리 나라라면 국정원장이 세금을 횡령해서 대통령에게 주느냐고 제가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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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장이었던 이병호가 증언석에 앉았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했던 정보기관이 법의 심판대 위에 오른 셈이었다. 변호인들도 그늘 속에 있던 정보기관에 대해 호의적은 아닌 것 같았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기자들이 참석한 공개 재판이지만 할 말은 해야 하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검사가 묻기 시작했다.
  
  “국정원 간부들에 대한 인사안을 민정수석실로 보내고 이후 대통령의 결재를 거쳐 확정되죠?”
  “그렇습니다.”
  
  “간부들의 인사안을 청와대측에서 변경하도록 요구한 사실이 있나요?”
  “그 말에 꼭 답변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있습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답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에서 매일 청와대로 보고하는 내용에 기업들의 애로사항 및 문제점등이 포함되어 있는 게 맞나요?”
  “기업들의 애로사항 그런 것은 안합니다.”
  
  “국내 경제동향은 있었나요?”
  “국가안보와 관련해서 경제적으로 문제점이 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지, 일반적인 경제동향은 안합니다.”
  
  “증인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1억 5000만 원을 전달한 사실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국정원장인 증인에게 나오는 특별사업비에서 준 거죠?”
  “그렇습니다.”
  
  “특별사업비는 대북공작, 해외공작, 대 테러비용 등 특수사업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 질문에 대해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국정원의 임무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국정원은 먼저 정보활동을 통해 국가의 안전을 지켜나가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국정원만 국가안보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부도 있고 외교부도 있고 통일부도 있고 국가안보실도 있고 그 모든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국정원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홀로 업무를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안보부처와 끊임없이 연동되어서 유기적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서, 국정원이 해야 할 해외 정보활동이 있습니다. 그 해외 정보활동은 외교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북한문제, 북핵문제는 국방부와 연결되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공수사 문제는 경찰과 검찰이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업무는 단독플레이가 아니고 모든 국가의 안보기관과 연동되어서 유기적으로 작동합니다. 국가 안보활동에서 국정원은 어떤 경우에도 빠질 수가 없습니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해외정보와 대공수사에 한정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검사님께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국정원이 동원되어 실시하고 있는 남북교섭 업무가 있습니다. 남북교섭 업무는 따지고 보면 외교업무입니다. 동시에 국가 전체의 안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정원이 개입한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이 있었습니다. 그 소탕작전의 배경은 국정원에서 소말리라 해적들 간의 통신을 잡았습니다. 그것을 해군과 연락해서 진압작전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때 돈을 많이 썼습니다. 그게 정보나 수사에 한정되게 국정원의 직무를 좁게 해석하면 그때 쓴 돈들이 모두 국고손실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국정원의 업무를 국정원법 제3조에 나와 있는 것에 한정해서 해석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청와대에 지원한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는 국가 안보예비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국정원을 지휘합니다. 그 지휘권에는 인사나 조직 예산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산과 관련된 것은 지휘할 수 없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지원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안보활동의 일환으로 저는 봅니다.”
  
  “대북교섭에 국정원 자금이 쓰인 것과 대통령에게 매월 1억 원을 준 행위가 같은 성격이라는 건가요?”
  검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이나 대북교섭은 특정현안에 관해 그렇게 쓰인 것이지만 청와대에 특별사업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같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내가 신문의 허락을 얻었다. 내가 자리에서 마이크를 앞에 가까이 당긴 후 묻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국정원 자금을 보내라고 할 때 그 돈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어땠나요?”
  “저는 정확히 감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대하는 자리에서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매달 오천만 원씩 지원하라고 할 때 대통령의 그 돈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 같았습니까?”
  “그것도 제가 추정해서 답변하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형식을 바꾸어서 물어보겠습니다. 뇌물이라 뭔가 떳떳하지 못하게 쭈뼛거렸을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당당하고 담백하게 말했습니다.”
  
  “국정원의 예산에 대한 지휘권이 대통령에게 있습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장을 하면서 원장에게 나오는 특별사업비의 사용은 어떻습니까? 직접 가지고 실질적으로 사용했습니까? 아니면 시스템화 된 면이 있습니까?”
  “사실상 시스템화 되어 있었습니다. 국정원장의 재량에 의해 실질적으로 쓴다는 것은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구체적으로 조각조각 쓰는 용도가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매달 고정적으로 청와대에 갔고 국정원 내부에서는 각 차장과 기조실장에게 일정액이 갔습니다. 저에게도 기조실장이 매달 일정액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조실장에게 위임해서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돈을 가져다준다는 보고도 관례적으로 그렇게 해 왔다는 말로 들렸고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어디에 썼다는 걸 국정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세히 보고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관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휘관인 원장의 입장에서 기조실장을 신뢰했고 굉장히 훌륭한 공직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맡겼습니다.”
  
  “그런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는 굉장히 고급비밀 아닌가요? 예를 들어 제3국의 인물이 김정은과 친한 사이라면 그를 매수할 때 드는 돈이 다 특별사업비에서 나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특별사업비의 사용 자체가 고급비밀이겠네요?”
  “맞습니다. 오전에 증언을 한 방첩국장도 원장의 특별사업비 자체에 대해 모르지 않습니까? 제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 사건은 굉장히 특수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사업비라고 하는 게 비밀을 요하는 정보예산입니다. 정보예산은 어느 나라든 존재 자체도 국가 극비기밀입니다. 이렇게 정보예산이 노출된 경우는 전 세계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보활동을 법의 잣대로 엄격하게 재면 맞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보활동은 그 자체가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습니다. 국가를 위해 매수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합니다. 그런 어려운 일을 하도록 디자인 된 게 정보기관인데 거기에서 하는 일을 법의 잣대로 재면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보활동의 특성을 법률적 잣대로 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정보를 얻으려고 외교부에 예산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죠? 정보수사 업무에 사용하지 않고 왜 외교부를 지원하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이론적으로 맞습니다만 그 사례에 대해서는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국방부에 예산을 지원해서 북한정보를 얻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국정원의 정보수사업무에 쓰지 않고 왜 국방부에 예산을 지원했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남북의 정보전을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기밀이면 재판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총론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서 통일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 헌법가치를 구현하는 데 군이 있고 정보기관이 있습니다. 군은 전쟁방지를 위한 현상유지가 임무입니다. 저는 평화통일의 여건은 정보기관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치열한 정보전을 벌였습니다.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전을 국민들은 모릅니다.”
  
  “기조실장은 청와대에 돈을 가져다 줄 때마다 국정원장에게 보고를 하면서 여러 얘기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어떻습니까?”
  “저는 특별사업비의 일반적인 배분에 대해 기조실장에게 전부 위임했습니다. 저는 기소된 내용같이 그 자금이 청와대에 지원되는 일년 사개월간 그와 관련해서 기조실장과 대화한 건 단 1분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조실장이 ‘가방주러 갔습니다’, ‘갔다 왔습니다’ 그 보고 이외에는 지시를 한 바도 없고 보고를 받은 바도 없습니다. 정례적으로 그 돈을 청와대에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솔직히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시스템화 된 관행으로 기조실장이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케이 스포츠나 미르재단 사건이 터져 청와대 지원이 중단됐는데 당시 기조실장이 미리 보고하고 상의하지 않았나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기조실장이 와서 ‘청와대에서 중단한다고 합니다’라고 해서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중요한 사실은 기조실장이 먼저 국정원장에게 와서 보고를 하고 결심을 받아야 하는 사항 아닌가요?”
  “글쎄요, 저는 기본자세가 청와대에서 요청이 오면 주고, 요청을 안 하면 안주고 그런 자세였습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국정원장이 준 돈을 뇌물이라고 보는데 어떠십니까?”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터리 나라라면 국정원장이 세금을 횡령해서 대통령에게 주느냐고 제가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의 주장은 대통령이 보내라고 해도 국정원장은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알아야 하고 그 돈이 함부로 쓰이지 않도록 방지하는 노력을 하고 그 돈의 사용에 대한 소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나라 정치문화 속에서 안보공동체의 수장인 대통령과 국정원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쓴다는 걸 알아 본다 따진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는 초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보공동체라는 개념은 뭡니까?”
  “원래 안보공동체라는 것은 미국에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국가안보는 어느 부서가 단독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부서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개념입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원, 국방부, 안보실 이런 것들이 전부 안보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정원 예산이 대통령에게 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안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국정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대통령의 판단 영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에 자금요청을 하겠다는 판단을 해서 한 것입니다.”
  
  “검찰은 특별사업비의 실질적 사용에 대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국정원장을 회계 관계 직원으로 보았습니다. 또 정보수사에 준하는 업무에 사용해야 하는 특별사업비를 청와대에 보낸 것은 특별사업비의 남용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빈번이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관행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저는 국정원장으로서 회계행위를 한 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국장들이 와서 저에게 회계에 관한 보고도 한 적이 없습니다. 회계는 전문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데 저는 회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런 저를 법에서는 왜 회계관계 직원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청와대에 가는 돈이 남용이라고 하는 데에 대해서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정원의 업무는 국가 안보 전체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국정원이 빠지면 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법적 잣대로는 정보와 수사업무에 한정해서 돈을 쓰게 되어 있는데 국정원장의 소신으로는 국정수행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인식은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행위는 국정수행이고 안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정원에 자금을 요청하는 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대통령의 지휘권에 기한 것입니다.”
  
  나의 신문이 끝나고 검사가 묻기 시작했다.
  
  “말씀하시는 취지를 보면 국정원이 다른 기관과는 다른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들리는데 어떤가요?”
  “국정원법 2조에 나와 있듯이 대통령 소속의 직속기구이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정보기관은 어느 나라나 다 국가원수를 위해 존재합니다. 국정원의 존재 이유는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의 안보책무를 수행하는 데 보좌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조금 전에 대통령의 지시에 거부하거나 용도를 물어본다는 것은 초현실적인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너무 자명한 것 아닙니까?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 정치문화 자체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왜 당연한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정치문화 안에서 국정원장이 어떻게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그건 왜 그러냐고 따질 수 있을까요?”
  
  “거부하거나 어떤 용도로 쓰느냐고 물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나요?”
  “검찰총장이 지시하는 걸 검사님이 일일이 따질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데 법 위에 기관이나 개인이 있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거야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보기관이나 정보활동의 특성은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국정원은 활동하는 데 법을 준수하면서 합니다. 예를 들어 감청을 할 경우 반드시 영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약간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국정원이 정보활동을 위해 NGO에 돈을 주고 여건을 마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의 잣대로 왜 거기에 돈을 주느냐면서 국고손실이라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입니다.”
  
  다음은 김대휘 변호사가 물었다.
  
  “국정원 직원의 행동수칙은 법보다는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 충성이 더 우선 아닙니까?”
  “그건 아니죠”
  
  “법원 검찰과 같이 법의 지배를 엄격히 하는 기관과의 차이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국정원도 법을 지킵니다. 법을 지켜야 하구요. 법보다 충성이 먼저다 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정원은 국가 안보의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 소명을 하면 됩니다.”
  
  “만약 대통령이 위법한 지시, 예를 들어 누구를 손 좀 봐줘라 하면 거부할 수 있습니까?”
  “불법적인 일이 확실하다면 예를 들어 누구를 납치해 오라고 하면 그것은 완전히 거부해야죠.”
  
  “그 이전의 정권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불법이 명백하면 거부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불법이 명백하면 거부해야죠”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국정원장으로 임명도 안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아무런 정치적인 인연이 없었습니다. 저한테는 로열티 그게 아니었습니다.”
  
  ​
[ 2019-02-22, 11: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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