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달라는 선지자(先知者)들
담임목사의 입에서 하나님과 성령(聖靈)이란 단어가 없어지고 입만 열면 ‘돈’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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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 다니는 팔십대의 한 노인이 내게 하소연을 했다. 교회 목사가 북한을 돕고 시골의 가난한 교회를 지원해 주고 라오스의 가난한 사람에게 우물도 파주고 노숙인에게 밥과 돈을 주자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걸 할 수 없는 자신이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고 했다. 죄의식마저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자기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늙은 서울 근교도시의 월세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 한 달 앞날의 삶이 막연한 가운데 투석치료까지 받고 있었다. 자기 우리 안에 들어온 병든 양은 그 목사가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아내가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리아 난민촌에 작은 교회를 하나 세워주면 안될까?”
  
  몇 년 전부터 아내는 전쟁지역에 나가 봉사하는 선교사에게 얼마씩 돈을 부치고 있었다. 친정언니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권해서 꽤 많은 금액의 돈이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전쟁지역 난민촌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강당을 세워 준 것이다. 그런 아내를 이해했다. 6·25전쟁 때 태어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살았던 나는 외국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수시로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전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는데 통닭 몇 마리 사가지고 갈 돈도 없다는 호소였다. 그런 요구들이 회초리가 되어 아내의 영혼을 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났다. 육십대 중반의 아내는 생활도 부양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다면 내가 부담하라는 것이다. 선교사의 눈에 변호사라는 직업은 단순한 돈줄로 보이는 것일까.
  
  작은 법률사무소를 하면서 간신히 먹고 살면서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성경 속의 베드로는 성전(聖殿) 문 앞의 거지를 보면서 돈은 없지만 그가 가진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사도 바울도 스스로 노동을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했다. 그걸 보면서 나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은 소명을 주신다고 믿었다. 내게 찾아오는 가난하고 힘없는 의뢰인들 중에 혹시 예수가 없나 조심했다. 나의 일터가 성스러운 곳이고 법정이 선교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노동이 나의 기도이기도 했다.
  
  소금이 되어야 할 현실의 종교인들이 그 맛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자신들만 선(善)과 진리를 독점하는 것 같이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속으로 일반교인은 그들의 숭고한 선행에 돈만 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노숙자 봉사를 하는 종교단체를 도운 일이 있다. 처음에는 순수했다. 그러나 단체가 커지고 그럴듯한 건물까지 세우게 되자 그들의 마음속의 성령이 떠나가고 그 자리에 돈이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담임목사의 입에서 하나님과 성령이란 단어가 없어지고 입만 열면 ‘돈’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돈이 급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성자(聖者) 취급을 받게 된 그는 한 단 높은 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입술로는 부인해도 속사람은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얼마 전 그 단체에서 일한 목사가 퇴직금 소송을 하겠다면서 법률상담을 하러 왔다.
  
  “평생 봉사하고 선행을 했다고 착각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좋은 일자리를 얻어 받을 품삯 다 받고 존경받고 사신 거 아닙니까?”
  
  나는 그에게 한 마디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알콜 중독과 범죄로 사회에서 낙오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런 단체의 덕으로 신학교에 가서 그 단체의 목사가 되고 칠십이 넘게 살아온 분이다. 내가 덧붙였다.
  
  “진짜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은 구두를 닦으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한 달에 단돈 만 원이라도 소리 없이 봉사한 분들 아니겠습니까? 그 돈이 없으면 자원봉사를 나와서 밥을 퍼 준 분들이 더 존경받을 분 아닙니까? 하나님이 목사라는 직책을 주고 지금까지 먹여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게 맞으십니까?”
  
  퇴직금 소송을 의논하러 온 그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많은 종교인들이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을 부리고 있다. 그들은 앞에 금 깡통을 놓고 돈을 구걸하는 걸인 같기도 하다. 그들이 파는 관념적인 진리와 정신적 허영이 깃든 선행이 과연 얼마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교리를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관념적 용어로 만들어 파는 사기꾼도 많다. 거짓 선지자들이 날뛰는 시대다. 양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 2019-03-09, 10: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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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즈    2019-03-09 오후 3:43
종교는 마약이다. 중과 목사, 신부 따위가 너무 많아. 세금은 왜 안내는거야. 세무서장은 뭐하고 앉아 있는거야.
   정답과오답    2019-03-09 오후 3:04
원체 거짓이 보편화 된 한국인지라
목사님들 까지도 진실과는 거리를 두고
거짓에 물든 분들이 있군요

허기사 저도 종교인한태 된통 당한적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선생님같은 분들까지도 실망을 주다니
아무튼지 좋은 글로 배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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